오랜 친구들과 실컷 수다를 떨었다.
중학생 때부터 이어진 인연들.
오랜만에 만나면 늘 그렇듯, 과거 이야기로 흠뻑 빠져든다. 기억의 문이 열리면, 나조차 잊고 있던 조각들이 술술 흘러나온다.
오늘도 그랬다.
아빠에게 바둑을 배워 한창 재미있게 두다가
그만둔 이야기,
어른이 되어 기타를 열성적으로 배우다가
역시 그만둔 이야기…
내 입을 통해 나간 말은 다시 내 귀로 들어왔다.
또다른 ‘하다 만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쳤다.
잠시 혼자만의 세상에 잠겼다.
‘그치. 나는 흥미가 막 오를 즈음 그만둬버려.
끈기가 없는 것도 맞지만 이상하단 말야.’
이상하게도, 그만두는 시점은 늘 흥이 붙기 시작할 때다. 싫증이 나서가 아니라, 오히려 더 재미있어지려는 찰나에 스스로 멈춘다. 뭐지?‘
새삼스럽게 질문을 던지고 나만의 생각에서 빠져나왔다. 친구들과 즐거운 시간을 마저 보내기 위해서..
그리고 잊어버렸다.
저녁 무렵, 집에 돌아오니 남편이 말했다.
“<전참시> 보는데 당신 생각나서 같이 보고 싶었어.”
우린 취향이 워낙 비슷해서 ‘내가 재밌으면 너도 재밌을 거야’라는 이상한 공유 습관이 있다.
오늘은 미니어처 재료로 요리하는 유튜버 ‘미니오브닝’이 출연한 회차였다.
예전 우리 둘 다 미니어처에 빠졌던 적이 있어서, 가볍게 보기 시작했다.
손재주가 대단했다.
작은 재료를 구하고, 스스로 만들었다. 진짜 재료로 요리까지 하는데 너무 신기했다.
한참 푹 빠져본 후, 왠지 한숨이 나왔다.
나: 저런 거 보고나면 왠지 마음이 허탈해.
말없이 있다가, 나도 모르게 말을 쏟아냈다.
“오늘 친구들이랑 얘기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거든. 왜 나는 항상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 그만둘까? 오늘따라 뭔가 찝찝했는데 저 사람 보니까 조금 알겠어. 자기가 재밌다고 느끼는 걸 계속 하면서 실력을 쌓은 거잖아. 나였으면 저게 재밌다고 느꼈어도 중간에 그만뒀을텐데.
나는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걸 하찮게 여기니까.
순간 나도모르게 내뱉은 말에 놀랐다.
그렇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던 거구나.
비생산적인 무언가에 깊이 빠져 몰입할 때면,
종종 불안이 따라온다.
‘이걸 해서 뭐가 남을까’,
‘시간 낭비 아닐까’ 하는 의심들이
마음속 브레이크를 건다.
그렇게 멈춘 선택이 순간엔 현명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쉬움으로 남는다.
절제를 잘하는 성격이 장점이라 여겼지만, 돌아보면 그 절제가 너무 이른 순간 나를 끌어낸 건 아닐까. 단순히 끈기가 없어서라는 1차원적 문제가 아니라, 필요 없는 제동을 너무 잘 건 탓일 수도 있다.
조금 더 달려도 괜찮은 순간, 나는 멈춰버렸다.
그 절제는 어쩌면 나를 지키기보다는 나를 막는 방향으로 작동했는지도 모른다.
한참 듣던 남편이 “가뜩이나 복잡한 마음인데, 내가 더 복잡하게 만든 건가?”하고 멋쩍게 웃었다.
“아니야. 마침 그런 의문이 들었는데 좀 풀렸어.
이제는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걸
시간 낭비라고 여기지 않아봐야겠어.
아쉬움이 남았던 것들…그걸 하나씩 시작해볼까 해.
다시 이어붙이고 싶어.”
한참을 쏟아내니 속이 후련했다.
사실 대화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깝다.
나는 말로 생각을 정리해야 하는 사람이다보니 종종 남편은 희생양이 된다.
오늘도 고생했어...
긴 인생이다.
코로나 시기를 지나며 생각했다.
집 안에 갇혀 무료한 일상을 보내는 부모님을 보며 안타까웠지만, 문득 이런 바람이 생겼다.
“늙어서도 즐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으면 좋겠다.”
나는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사람이다.
그에 비해 능력은 부족하다고 느낄 때가 많고,
그 괴리에서 힘들었던 시간도 많았다.
하지만 아직, 인생은 길다.
작고 자주 피어나는 호기심들이 실보다 득일 수도 있는 세상..
오랫동안 끈기 없는 나를 자책했지만,
어쩌면 그건 절제라는 또다른 얼굴이었는지도 모른다.
스스로 낙인 찍은 단점으로 괴롭히지 말고,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사라지는 잦은 호기심도 흘려보내지 말고, 그렇게 긴 인생을 살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다.
나를 세상에서 제일 잘 아는 그 날이 어서 오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