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멈추게 했던 문장들에 대하여
"계속 써야 더 중요해지는 거야"
영화 <작은아씨들>(2019)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사였다. 자매들의 삶을 다룬 소설을 출간한 조는 그런 소재가 당대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그저 별 볼일 없는 것이라며 자조한다. 이에 대해 그녀의 여동생 에이미가 말한다. 계속 쓰면 그것이 중요한 이야기가 되는 거라고, 계속하면 중요한 것이 된다고 말이다.
-책 <우리는 글쓰기를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중-
책을 읽다가 정전처럼 멈췄다.
머릿속에서 그 문장이 반복 재생됐다.
글쓰기 책을 읽고 있었지만, 정작 나를 멈춘 건 영화 속 대사였다.
'아, 이게 지금 나한테 필요한 말이었구나'
몇 번이고 되새기며 읽었다.
마치 주문처럼.
스스로를 세뇌하듯이.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이상하리만치 공기가 정지된 듯 느껴졌다.
문장 하나가 내 안에서 울리는 순간 나는 조금 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종종 무심코 되뇌는 문장이 있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은 단어이거나,
한 때 나를 붙잡았던 구절.
그 말들은 마치 주문처럼 떠오른다.
꼭 거창한 명언이거나 철학적인 문장이 아닐 때도 많다. 영화 속 대사일 수도 있고, 길을 걷다 마주친 광구 문구일 수도 있다. 혹은 내 상황에 너무도 적확해서 직접 만들어낸 말일 수도 있다.
'다 괜찮아질 거야'
흔한 말이지만 어떤 날엔 그 문장이 마음 한가운데로 스며든다.
어릴 적에는 말의 힘을 믿지 않았다.
세상에 나오는 수많은 조언이나 명언들이 그저 누군가의 말장난처럼 여겨졌다.
그 말들은 너무 멀게 느껴졌고, 내 마음에는 좀처럼 와닿지 않았다.
생각을 바꾸고, 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말 앞에서 그냥 지나쳤다.
마음도, 생각도 움직이지 않았으니까.
어느 날, 지하철에서 책을 읽다가 한 문장을 만났다.
"네가 멈칫하는 곳에 너의 마음이 있다."
-다자이 오사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도 모르게 책장을 덮고 고개를 들었다. 창밖으로 흐릿하게 스쳐가는 풍경들이 낡은 필름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외면하려 했던 질문들, 미뤄두었던 고민들이 그 한 문장으로 밀려왔다.
마음이 찌르르했다.
그제야 알았다.
말은 단지 의미가 아니라
감정과 고민을 꿰뚫는 순간에 진짜 살아난다는 것.
그 후로 나는 문장 앞에서 '멈칫하는 순간'을 주의 깊게들여다보게 되었다. 어떤 말이 내 몸을 멈추게 하는지, 어떤 문장이 마음에 스며드는지.
그 순간이야말로 내가 가장 필요로 하던 답이었다.
책 속 구절일 수도, 누군가 무심코 던진 말일 수도 있다길거리에서 들려온 노랫말, 라디오 속 대사일 수도 있다.
그 말들이 당장 나를 180도 바꾸진 못해도,
일시적인 변화를 이끄는 힘은 분명 있다.
옷을 입고 운동을 하러 나간다든지,
지금처럼 미뤘던 글을 다시 쓰게 된다든지,
작심삼일일지언정, 새로운 계획을 적어보게 된다든지.
그건 아주 작은 변화지만 나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다.
무엇보다 외면했던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질투나,
감당하지 못할 것 같은 두려움이나,
평소엔 외면하고 지나쳤던 감정들이
말 한 줄 앞에서는 빼꼼히 얼굴을 드러냈다.
나를 멈추게 하는 말,
그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일 때
비로소 그 의미를 알게 된다.
말은 그렇게 불쑥 들어와 나도 모르게 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는다.
그게 왜 그토록 와닿는지 설명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 순간은 분명히 있다.
마음이 찌르르하고
몸이 멈칫하고
숨이 잠시 느려지는 순간,
결국 나도 모르게 알게 된다.
그 말은 '지금' 나를 향한 말이었다는 걸.
아주 오래전부터 내 곁을 맴돌고 있었던 말이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