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게 결혼생활이겠지, 뭐. ep.1
결혼 전부터도 나는 '아이쇼핑'을 싫어했다.
사지도 않을 물건을 보러 굳이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도, 사지도 않을 옷을 입었다 벗었다 하는 것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귀찮은 행동이었다.
내 쇼핑 스타일은 충동구매였다.
길을 걷다 눈에 '내 스타일'이 눈에 띄면 그때 사는 식.
취향이 확실했고, 고민도 짧았다.
정답이 분명한 객관식 문제를 고르듯 보기 중 하나만 탁 고르면 끝이었다.
결혼 후, 쇼핑은 갑자기 '필수코스'가 됐다.
지금처럼 온라인 쇼핑이 활발하지 않던 2010년.
결혼 초 코스트코와 이마트가 집 근처에 있었고 우린 냉장고를 채우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 종종 마트에 들렀다. 주말엔 사람이 너무 많아 가끔 퇴근 후에 가곤 했는데, 그게 화근이었다.
지치고 배도 고픈 퇴근길, 남편의 쇼핑은 1시간 30분을 훌쩍 넘겼다.
"저기 1+1이야" 하며 뛰어가고, "이거 타임세일이래" 하고 흥분했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나면, 나는 이미 발바닥에서 피로를 끌어올리며 짜증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아니, 지금 안 사도 되는 걸 왜 사?"
"그냥 필요하면 사면되지, 왜 여기저기 비교를 해. 그렇게 해서 언제 사게?"
그땐 퇴근 후 쇼핑이 곤욕 그 자체였다.
직업적인 차이도 한 몫했다. 남편은 주로 앉아서 일하고, 나는 외근이 많았다.
쉽게 지치는 쪽은 나였다. 살림을 직접 하면서 조금씩 쇼핑의 재미를 느끼게 됐고
그제야 남편의 쇼핑 스타일도 이해하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
남편과 나는 쇼핑 스타일이 완전히 다르다.
남편은 예쁜 걸 좋아하고, 나는 실용적인 걸 좋아한다.
남편은 브랜드를 추구하고(비싼 건 아니지만, 본인취향의 브랜드가 굳건하다) 나는 가격표와 용도를 본다.
남편은 디테일에 진심이고, 나는 대충도 상관없다.
남편은 후기까지 다 읽고 한참을 비교하지만 나는 '그게 그거지' 하는 쪽이다.
자연스레 지름 포인트도 다르다.
남편은 '갖고 싶다'는 마음에 흔들리고,
나는 '필요하다'는 확신이 있어야 움직인다.
결혼 7년 차쯤이었나.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에피소드가 있다.
나의 결혼 7년 차는,
'신혼생활의 설렘은 일찌감치 보내고
싸울 만큼 싸우고, 다름을 인정하고,
포기 타이밍이 한층 빨라졌던 시기'였다.
물론, 다름을 받아들였다는 말이 '이해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2017년 어느 날 점심시간.
밥을 먹고 있는데 남편한테 연락이 왔다.
"모나미 한정판 나왔대... 사쟈!"
... 응?
뭐라고?
'한정판' '모나미' '사자'
이 묘한 조합에 순간 헛웃음이 났다.
예전 같았으면 "그런 상술에 놀아나지 마" 라며 한마디 했을 나지만...
그땐 이미 어느 정도 포기할 줄도 알게 됐고, 살짝 호기심도 발동했다.
'한정판이면 나중에 가치가 오르는 건가?' 하는 근거 없는 기대감도 살짝 있었다.
그렇게 퇴근 후 강남역에서 만났다.
목적지는 교보문고 핫트랙스
모나미 153 한정판이 눈에 띄는 자리에 진열되어 있었다. 깔끔한 화이트와 블랙 디자인, 메탈 바디.
꽤 고급스러워 보였다.
가격표를 보는 순간... 나는 그야말로 '뜨악'했다.
하나에 18,000원. 두 개 사면 36,000원.
당시 내가 아는 모나미 볼펜은 300원이었다.
문구점 한편에서 여러 개 꽂혀있던, 국민 볼펜..
그걸 18,000원을 주고 사다니...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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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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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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샀다. 모나미
했다. 미친 짓.

집에 와서 바로 써봤다.
묵직하고 잘 써진다.
손에 감기는 느낌도 좋다.
모나미 답게 볼펜 똥도 나온다.
뿌.듯.하.다...
내가 이런 미친 짓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날이 오다니.
결혼은 미친 짓이라더니, 미친 짓도 닮나 보다.
고개를 돌려보니 남편은 아직도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내가 흰 걸 쓸까, 검은 걸 쓸까"
볼펜 디자인 색상을 신중히 고르는 남편을 보며
조용히 한마디를 건넸다.
"아무거나 써라. 둘 다 검정 볼펜이다."

결혼 15년 차,
나는 쇼핑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무언가를 살 땐 후기를 꼼꼼히 읽고 비교하는 시간도 늘었다.
남편은 예전보다 "대충 이 정도면 됐지" 라며 실용성에 무게를 두는 일이 많아졌다.
그렇게 닮아가는 듯 하지만, 여전히 "잰 뭐지?" 싶은 순간은 종종 찾아온다.
다만, 예전만큼 "왜 너는 나랑 똑같이 '가위'를 안 내?" 하고 따지기보단, 피식 웃고 넘기는 일이 많아졌다.
서로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건, 꼭 이해하겠다는 뜻이 아니다. 때론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이는 '포기하는 능력'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걸
고작 '쇼핑 스타일'도 '맞춰야 하는 일'이라는 걸.
그 단순한 사실을 알기까지 우리에게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