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글 Dec 30. 2023

12월 31일

항상 연말은 늘 그랬듯 고요했고 한적했다. 적당히 외롭고 적당히 한적하며 적당히 고요했다. 복잡 미묘한 감정들이 늘 그랬듯 익숙했고 편안했다.


유독 그런 날들이 있다. 꾹꾹 눌러 담아왔던 감정들이 물밀듯이 몰려오는 날. 지난 시간들과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를 때면 어떻게 그 시간들을 버텼을까. 새삼 기특하기도 하면서 그때의 내가 한없이 가엾게 느껴지는 날들이 있다. 언제나 나의 감정이 우선순위가 아니었던 지난날을 떠올릴 때면 눈시울이 붉어지게 된다.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견뎌 준 스스로에 대해 감사함과 고마움을 전하며 연말을 조용히 지내본다.


30대의 중간을 지나고 나서부터 12월 31일에 대한 의미를 두지 않게 되었다. 11개월 동안의 나의 노력보다 그 한 달의 시간들로 모든 것을 평가하기보다 온전히 하루하루를 수고했다고 말하는 습관을 들였다. 그저 우리는 12월 31일도 11월 30일처럼 한 달의 마지막 날을 지나고 있을 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을 바꾸고 나서부터 나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나이에 대한 허무함도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우린 그저 하루하루를 묵묵히 잘 살아내고 있기에 12월 31일이 지나간다 해서 인생 10권이 끝나고 인생 11권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 계속해서 이어지는 날을 보내고 있는 것일 뿐. 허무함을 느낄 필요도, 특별한 연말을 보내지 않았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깨닫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작가의 이전글 함께한 시간과 관계의 깊이는 비례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