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외국 드라마가 제법 많다. 접하기 쉽지 않은 나라의 드라마가 보이면 저절로 플레이를 누르게 된다. 스웨덴의 어느 출판사를 배경으로 소피와 막스의 기이한 연애스토리가 펼쳐지는 러브 &아나키는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많은 드라마다.
북유럽의 모던함이 느껴지는 도시와 건물, 책을 다루는 출판사, 아름답고 젊은 성공한 ceo 소피, 매력적인 외모의 찌질하지만 따뜻한 막스. 출판사 직원 프리드리시, 론뉘.
시즌1의 엉뚱하고 충격적인 설정과 몇몇씬들은 문화충격을 느끼게 하고 다소 공감하기 힘들었다. 시즌2에서는 그런 실험적인 시도는 줄어든 대신 공감이 가는 스토리가 펼쳐져서 개인적으로 보기가 더 편했다.
시즌2에서는 소피와 막스의 연애에만 포커스를 맞추기보다 소피의 감정선과 출판사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아빠의 갑작스러운 자살에 혼란을 느끼는 소피가 아무렇지 않은 척 일상을 이어갈수록 슬픔은 커진다. 원나잇 상대에게 '난 서툴어요. 누군가 날 끌어줘야 해요.'라는 말은 가까운 사람에게는 쉽게 꺼내지 못한 그녀의 진심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워 아픔을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는 그녀를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막스였다. 둘의 사랑은 이제 단순한 오락이 아닌 아픔을 나눌 줄 아는 깊이가 더해진 느낌을 준다.
출판사는 업계의 변화에 발맞춰 하이브리드로 나아가고자 하지만 프리드리시는 이에 반대하고, 1인 출판사 예거스테드를 만든다. 출판에 있어서 현대화와 옛 방식 그대로를 지향하는 비 현대화가 맞서는 구도가 흥미롭다. 어느 작가의 신작 출판을 앞두고 문학적 가치를 높일 것인가, 드라마로 각색해서 돈을 많이 벌게 할 것인가 에이전트와 실랑이하는 장면에서 프리드리시의 신념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시류에 적응 못하고 고집만 부리는 도태된 자라고 할 테지만 작가의 열정과 작품 자체의 가치를 높게 여기는, 진지하게 문학을 대하는 그의 태도가 멋있다.
시즌 1에서 막스가 부모의 폭력 같은 무관심에 저항하기 위해 입던 옷을 다 벗어던지며 탈출구를 찾았다. 시즌2에서는 소피가 숨기기만 했던 아빠와의 관계성을 인정하고, 자신의 슬픔을 온전히 드러냄으로써 탈출구를 찾아간다. 그 과정에는 막스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인정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시즌1, 초반엔 유부녀와 젊은 남자의 비도덕적인 불륜이 특이한 형태로 그럴싸하게 포장된 드라마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회가 진행되면서 인물들의 상처가 드러나고 점차 그들에게 몰입된다. 특히 소피역을 맡은 이다 엥볼의 섬세한 연기는 이 드라마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다. 당차고 쿨함이 그녀의 본모습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누구보다 여리고, 겁 많고 상처투성이인 존재다. 아빠의 죽음 뒤 공황 상태에 빠진 어린아이 같은 그녀를 꽉 안아주고 같이 슬퍼하며, 다독이고 싶었다. 시즌2 마지막 화에서 스스로를 가둔 틀을 깨고 마음이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 그녀에게서 해방을 마주한 한 인간의 희열을 볼 수 있었다. 체면과 거짓을 벗어던진 찰나의 소피는 빛난다. 스스로를 찾아낸 그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
" 지금 난 아빠 때문에 너무 슬퍼. 난 미치지 않았지만 슬퍼하지도 못하게 하면 미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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