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십년은 넘은 옛날 얘기지만, 그래도 오늘의 나에게 그때의 흔적은 남아있다. 고소공포증도 그중의 하나였다. 갑작스런 혈압으로 인해 얻었던 뇌경색으로 인해 남아있는 후유증이다. 산에서 뛰어다니던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그저 한쪽이 낭떠러지인 길에서는 머리가 아파오고 다리에 더욱 힘이 빠지는듯한 현상이 나타난다. 그랜드캐년의 절벽가에 서는 건 이제 옛날 얘기일 뿐이다. 나에겐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헤치헤치 저수지를 향해 들어가는 길은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에게는 좀 어지러웠다.
1900년대 초반, 샌프란시스코 사람들의 식수원을 만들기 위해 165마일 떨어진 요세미티의 깊은 계곡의 물을 막아 만든 헤치헤치저수지. 지금도 이 물이 샌프란시스코의 식수원이 된다니, 어떻게 그 옛날에 그런 생각을 해서 만들었을까? 참 대단했다는 생각이 든다.
댐에 도착을 해보니 지난 겨울의 많은 비로 인해 7월말의 댐에서 떨어지는 물은 힘차기 그지없다. 저멀리 보이는 wapama 와파마 폭포까지 걸어갔다 오려한다.
예전에도 걸었던 곳이기에 함께 걷는 지인들에게 얄팍하나마 설명도 해주고 길을 시작한다.
주차장을 출발해서 댐을 건너면 만나는 터널 길은 어둡고 긴 길 끝에 출구가 보였고 공기는 시원하지만 어둠은 터널길 내내 끈적이며 침침케 하였다.
터널을 벗어나자 헤치헤치 저수지의 바닥이 보이는 맑은 물이 길곁을 함께 한다. 서너 사람이 걸어도 넉넉한 트레일은 첫 오르막을 올라설 때까지 이어지다가, 갈림길 표시를 지나면서 한사람도 빠듯한 소롯길로 바뀌었다. 폭포까지 이어진 길은 오르막 내리막을 반복하는 바위길이었다.
폭포에 이르기전에 보이는 높은 바윗절벽을 떨어져 내려오는 폭포는 오늘의 목적지는 아니지만 길내내 눈앞에 그 모습을 보여주었고 폭포 직전 그 떨어진 물을 건널 때에는 잠시나마 더위를 식혀주었다.
출발한지 한시간여 만에 와파마 폭포에 도착했다. 폭포에서 떨어지는 물에 압도되었다. 굉음에 가까운 그 소리는 귀를 멍멍하게 했고 바람에 흩날리는 물방울들은 땀에 적신 옷을 흠뻑 적시었다. 예전 1900년도 초반 댐이 만들어지기전의 사진에도 웅장한 자태를 보여주었던 폭포는 지금도 그 물을 저수지를 향해 끊임없이 힘차게 뿜어내었다.
떨어지는 폭포가에 앉아 물 한모금으로 휴식한 후 돌아오는 길은 중천에 오른 햇살에 더욱 더웠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이 돌아가면 힘든 길이 끝난다는 기대가 등을 밀어주었다.
1900년대 초반 댐이 만들어지기전 헤치헤치. 댐이 없었다면?
주차장을 떠나 캘리포니아 120번으로 돌아 나오는 계곡길은 구불구불 낭떠러지를 구비돌으며 올라갔다. 어지럽긴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