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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라아제 Jul 09. 2023

전 회사 상사를 만났다.
"죽 쒀서 개 줬네"라고 했다

짧은 봄이 지나가고 더위의 시작을 예고한 5월, 나는 전 직장에서 나의 은사님 같은 전 상사 두 분과 저녁 자리를 했다. 작년 겨울에 회사를 퇴사하기 전 좋은 사람들과의 헤어짐 때문에 많이 망설였는데, 나를 고민하게 했던 사람들 중 두 분이었다. 개인적인 성향도 잘 맞고 회사를 떠나서 나를 인간으로서 좋아하고 지지해 주셔서 그들과의 따뜻한 순간이 아직까지도 기억에 많이 남는다. 호기롭게 내가 하고 싶은 분야와 맞는 회사를 찾겠다며 나갔기 때문에 나에게 좋은 직장을 찾기 전까지는 찾아가지 않으려 했다. 한 3개월이면 충분할 줄 알았으나 오랜만에 주어진 자유와 시간은 나로 하여금 그 시간을 2배나 늦췄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학창 시절 많이 듣던 노래를 들으면 그 순간의 향기가 느껴지듯 그들을 보니 열심히 함께 일하고 놀던 기억들이 나에게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서로 안부를 묻고 내가 새로 다니게 된 회사에 대한 질문들이 시작 됐다. 업무 관련 얘기를 하며 나의 역할, 성장 그리고 미래에 대해 설명을 하니 그들은 나를 실실거리며 쳐다봤다. 벌써 겉멋이 들었다며 나를 놀려댔고 나는 그 상황이 웃기기도 하고 우리가 이런 자리를 가지며 웃고 떠드는 상황 자체로 행복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공적인 이직을 하고 그들과 만날 수 있음에 6개월 동안 맘 한편에 눌려있던 것으로부터 해방된 느낌이었다. 백수로 살면 마냥 행복할 줄 알았는데 무직자가 어떤 인간관계에서든 취할 수 있는 포지션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회사 초기부터 같이 일해온 추억을 회상하다 한 분이 한숨을 푹 쉬고는 "에휴 죽 쒀서 00 줬네"라고 하셨다. 나의 첫 정규 직장이었던 탓에 나는 0부터 시작해 정말 많은 도움과 경험을 겪으며 성장해 왔다. 그런 성장을 겪은 인원이 나가는 것은 회사입장에서도 손해고 아까운 인재라고 인정해 주는 듯한 그의 말은 나를 기분 좋게 해 줬다. "으휴, 다 나갔네..."라며 그는 혀를 끌끌 찼으나 그럴수록 나는 아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회사에서 나간 것이 그들에게 아쉽다는 것은 내 능력을 인정해 준다는 것으로 느껴졌다. 면접에서 합격만을 바라던 내가 이직을 겪으며 작지만 사회에서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간 느낌이었는데 그들의 반응은 공식적으로 나의 한 발짝만큼의 능력을 인정해 준 느낌이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사회 선배들의 인정은 말 그대로 행복한 순간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던 분들의 덕담이라 앞으로 열심히 나아갈 정신적 버팀목이 생긴 기분이었다. 


그렇게 맛있는 시간을 보내고 나는 계산대에 카드를 내밀었다. 회사에 있을 때 밥이며 가르침이며 많이도 얻어먹어서 좋은 회사에 들어가면 꼭 대접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 마음을 아시는지 흔쾌히 잘 얻어먹겠다고 하셨고 나는 계산을 마쳤다. 그들은 "많이 컸네!" 라며 장난기 섞인 목소리와 함께 자랑스럽게 등을 두들겨 줬다. 그러고 우리는 아쉬움을 뒤로한 채 헤어졌다. 각자 갈 길을 가겠지. 잘 살겠지? 그들의 길에 더 이상 내가 함께하지 않는 것이 서운하다는 어린 생각과 함께 지하철에 탔다.


집에 가면서 생각이 많아졌다. 사회생활에서 다음 챕터로 넘어간 것 같은 기분이어서 좋기도 하고 걱정도 많이 됐다. 그러나 첫 회사에 들어올 때 걱정이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또 5년 뒤 다른 챕터의 내가 지금 이 순간의 고민을 되돌아본다면 별 거 아니라고 말해줄 것 같아 불안한 걱정을 멈췄다. 지금 내 옆의 지하철에 탄 사람들도 같은 고뇌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걱정하는 나를 위로하며 집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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