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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Apr 27. 2023

[짧은 소설] My Son 1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으니 그녀의 아들이 망설임 없이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보란 듯이 힘주어 누른다. 그녀는 아들을 내려다보며 미안한 미소를 보였다.    

 

며칠 전 여동생 태숙이가 다녀간 후 그녀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요즘 세상 집 밖으로 나가지 않더라도 아이 먹이고 입히는 일이 가능했기에 태숙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언제까지고 안에 박혀만 있으려 했을 것이다.   

  

“언니, 더는 이리 살면 안 돼. 애도도 적당해야지 아이는 안 보여? 애한테 죄짓는 거야. 형부 그리된 거 불쌍하지 언니 탓 같기도 하겠지. 근데 언니 그거 아니다. 그거 아니라고. 하지만 지금 이러는 거 이거야말로 잘못하는 거야. 아주 이기적인 거야”     


태숙은 늘 그랬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보다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인 사람. 생각 좀 하고 말하라는 주변의 핀잔을 받아도 아랑곳없었다. 그녀는 다양한 뇌구조 중 태숙과 같은 이들이 있어 세상이 발전하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그녀의 문제해결력은 매우 우수했다. 빙빙 돌려 봐야 태숙에겐 통하지 않았다. 정확히 상대의 과녁을 후벼 파니 벌게진 상처에 침이라도 문지른 양 쓰려도 상대로 하여금 문제의 핵심과 마주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정 넘치는 위로보다 나을 때가 있었다.     


태숙이 다녀간 날이 그랬다.     


얼마 전 그녀는 남편을 잃었다. 그날 지탱하던 모든 기둥들이 와르르 주저앉고 말았다. 남편의 상을 치른 지 반년이 채 안 되었기에 아직 주변에선 가여워 미치겠다는 시선으로 그녀에게 위로를 전했다. 그들의 눈물은 그녀보다 먼저 흘러내리기 일쑤였고 그것은 그녀를 더 지치게 했다. 그녀는 주저앉은 마디마디를 맞추어 다시 세우지 못 한 채 안에서 구석으로 숨어들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 중 겨우 아들의 끼니를 챙기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들 찬은 그런 엄마를 자주 살폈다. 혼자서 씻고 옷을 챙기고 학교에 갔다. 필요한 준비물도 놓치지 않았다. 구석진 곳에서 고개 박고 울다 잠드는 엄마. 깨어있는 시간일지라도 온전해 보이지 않는 엄마였지만 찬은 다가가 엄마의 어깨에 손을 얹곤 했다.     


“엄마 괜찮아”     


찬은 자주 이리 말했다.     

그녀는 아들의 말이 괜찮냐 묻는 건지 괜찮을 거라 안심시키는 건지 바로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미약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아들 찬을 보며 숨을 쉬곤 했다. 그녀가 완전히 닫아 버리지 못한 숨구멍의 이유는 오로지 아들 찬이다.   

  

“아빠는 하나님 곁으로 간 거야. 엄마가 이러면 아빠가 하늘에서 슬프기만 할 거야”  

   

어디서 들은 걸까. 고작 열두 살인데 이렇게 의젓할 수 있을까. 그녀는 찬이 두 번째로 자주 하는 이 문장을 들을 때면 찬에게 미안함이 몰려오곤 했다. 그럼에도 좀처럼 추 스러지지는 않았다. 손 가지 않는 아들의 모습에 맘 놓고 망가져 보기라도 하듯 말이다. 그렇게 자기 연민에 질질 끌려가던 중 동생 태숙의 전화마저 거부하자 득달같이 달려온 것이다.    

 

‘그렇게 살지 마. 너무 이기적이잖아’    

 

혼내는 태숙을 그녀는 잠자코 듣기만 했었다. 이상하게도 해방되는 느낌이었다. 어두운 연민을 그만 걷어낼 명분을 주는 것 같았다. 태숙을 보내고서 그녀는 아들 찬을 불렀다.  

   

“친아, 우리 찬도 슬펐을 텐데 엄마가 위로도 제대로 못해줬다. 그치?”     


“응...”     


그제야 찬은 참아내던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동글한 어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엄마가 미안해”     


“응...”     


어린 눈물일지라도 보낼 만큼은 보내야 했다.     


“찬이 무서웠구나. 이젠 엄마가 지켜줄게. 엄마 무지 강해. 우리 맛있는 거 사러 갈까?”     


“포켓몬 카드도 사도 돼?”     


“그럼”   

  

엄마의 말에 찬의 귀가 살랑거린다. 열두 살 아들을 달래기란 별스러운 게 없다.

그녀는 이리 쉬운 일을 한동안 모른 척했던 자신에 한숨이 나오긴 했다. 그렇게 모자는 나란히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엄마는 강해’라고 했지만 오랜만의 외출이다. 그녀는 찬이만 아니면 서둘러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이기지 못했을 거다. 그 머뭇거림을 읽었는지 찬이 아래 방향 표시의 버튼을 누른 것이다.

    

그녀는 단지 내 마트까지 찬의 손을 잡고 걸었다. 마냥 어리다고만 여겼는데 어느새 찬의 키가 그녀의 어깨를 넘어서고 있었다.     


“아이고 오랜만에 같이 보네. 아들만 오더니. 어디 다녀왔어? 맨날 3분 조리 식품만 사가서 엄마는 여행 가고 아빠랑 둘만 있나 했지”


그녀는 소식을 알길 없는 마트 주인의 인사에 멈칫했다. 예전 같으면 기분 좋은 단 수다를 주거니 받거니 했겠지만 아빠라는 단어만으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져 대응하지 못한 채 서 있기만 했다.     


그때 진열된 포켓몬 카드를 만지작거리던 아들 찬이  재빨리 다가왔다.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 아니 잡아 주었다가 맞을 것이다.     


“엄마 괜찮아 그냥 신경 쓰지 마”     


찬은 마트 주인에게 들릴라 조심스레 그녀에게 속삭였다. 그것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꼭 잡은 손에 힘주며 그녀를 끌어 자리를 벗어나게 했다.      


그녀는 밖으로 나와서야 아들을 지그시 바라봤다.     

 

‘언제 이리 큰 거니 너’     


마주한 찬의 눈동자엔 단단한 눈빛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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