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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잉홍 May 10. 2023

[짧은 소설] My Son 2

일상이 다시 재건되고 있었다. 거창하게 들릴지 모르나 무너져 내린 영혼이 다시금 살 의지를 갖는 건 보통의 일이 아니다. 한 영혼이 바르게 세워지는 것은 마른땅을 개간하는 것 만큼 억척스러운 일이지만 분명한 가치가 있다. 그녀가 안방 문지방을 넘어 거실로 나오는 일이 잦아졌다. 의젓한 아들이어도  할 수 없는 것이 아직 더 많은 어린아이다. 그녀가 걷어내야 할 먼지들이 야금야금 곳곳에 쌓여있었다.   

   

블라인드를 올리니 거실 창에 해가 닿았고 찬은 어둑하던 집에 들어오는 빛이 마냥 반가웠다. 그 밝음은 그동안 집안을 헤집고 다니던 뿌연 더러움을 여실히 드러냈지만 엄마가 그것들을 하나씩 치워내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 올라왔다.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에 아찔한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었다.   

   

그녀는 한 칸씩 공간을 정리해 나가며 마음의 칸도 정리되길 기대했다. 커다란 쓰레기봉투에 잡스러운 것들을 담아 버릴 땐 혹여나 미련 둘까 싶어 그 주둥이를 몇 번이고 돌려 묶은 후 냉큼 가져가 버렸다.     

   

버릴 수 있는 건 다 버리고 싶었다.

    

그녀는 웃고 울던 시간이 겹겹 쌓여있는 아파트 한 동중 그의 집인 이 칸을 버릴 수 만 있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 그와 함께였던 이 공간을 도려내어 쓰레기장에 쳐 넣을 수 만 있다면 그리 하고 싶었다. 책에 추억이 아름답다는 글이라도 쓰여있다면 그 문장만은 오려내 찢어버릴 것이다. 그녀에게 기억은 고통이며 추억은 염증일 뿐이었다. 소염제 한 움큼 들이삼켜도 치료될 것이 아님을 알기에 그녀는 그와 공유했던 물건들을 버리고 있었다. 그녀뿐아닌 그의 감정까지 녹아있는 물건들을 버림으로 싹 잊혀지길 바랬다.


살고자 하는 의식적인 노력은 부실공사처럼 엉기성기한 모습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번 더 넘어지기라도 하면 바삭 부서지고 말 위태로움을 그녀도 아들 찬도 알아채지 못한 채 말이다.    

  

하굣길 아들 찬은 퉁하고 바닥에 튕겨지는 경쾌한 울림을 들었다. 초등학교 바로 옆 작은 공터에서 찬보다 먼저 하교한 친구들이 농구를 하고 있었다. 찬에게 친숙한 장소다. 주말 오전 알람소리에 몸이 재깍 일어나곤 했다.   

  

아빠와의 약속 : 오전 9시~10시까지 1시간, 아빠와 농구 한판      


오전 9시를 넘기면 아빠와 농구할 수 있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들기에 찬은 듣기 거북한 알람 소리를 반복으로 맞춰두고 짐들곤 했다. 자신뿐 아니라 아빠를 깨우기에도 딱 인 알람이었다. 찬의 멋진 레이업 슛은 이 공터에서 아빠와 함께한 결과물이다.

      

“찬! 너도 와 같이하자”     


넋 놓은 찬을 향해 한 친구가 소리쳤다. 잠시 망설이던 찬은 가방을 먼저 던지고 낮은 울타리를 단숨에 넘어 농구골대가 있는 공터로 갔다. 반년이다. 찬이 운동과 멀어진 시간 아빠를 잃어버린 시간. 생각만큼 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 하얀 손바닥 안으로 농구공이 잡히지 않았다. 아빠만 잃지 않았음 운동감도 잃지 않았을 텐데 자꾸만 손을 빠져나가는 공에 욕심을 부리다 스텝이 꼬여 넘어지고 말았다.   

   

“야 김 찬 너 뭐 하냐!”     


참다못한 같은 팀 친구가 짜증을 낸다. 수치심에 찬은 욱신거리는 정강이는 살피지도 않고 일어나 다시 제 위치에 섰다.      

 

‘이번엔 안 놓쳐’    

 

굳게 다잡은 마음에도 몸은 굼뜨기만 했다. 손에 잡히기만 하면 아빠와 완성한 레이업 슛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지난 실수를 만회하고픈 조급함 때문인지 좀 전 보다  나을게 없었다. 결국 경기내 슛 한 번 던져보지 못하고 싱겁게 끝이 났다.   

   

“야 농구순위 변경해 줘 오늘 김 찬 보니 나보다 못하네”     


같이 농구하는 친구들 사이엔 프로농구선수들의 연봉순위만큼이나 진지한 선수순위가 있었다. 열 명의 친구들 중 중간의 자리는 안전하게 지켜내고 있었는데 그보다 못한 순위의 친구가 기회다 싶은지 치고 올라오려 했다. 평소 같으면 무슨 소리냐며 내일 다시 해보고 결정하자고 잘랐을 테지만 오늘 찬은 그럴 자신감마저 상실하고 말았다.

     

“일주일은 봐야지. 찬은 오랜만에 했잖아”   

  

그나마 처음 찬을 보고 불러낸 친구의 중재에 넘어갈 수 있었지만 찬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했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분풀이할 곳이 없으니 입술만 바들거렸다. 인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하고선 집에 들어와 방으로 쏙 숨어버렸다. 엄마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엄마가 알게 된 들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로지 아빠만 가능한 일이다. 찬은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고 꼬리를 무니 설움이 왈 콱 쏟아졌다.      


보고 싶은 아빠가 원망스럽다.

울며 아빠에게 화를 낸다.

   

‘진짜 너무해 난 어떡하라고'

  

이 순간만큼은 찬도 엄마처럼 방 안의 모든 잡동사니를 던져버리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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