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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해 Aug 22. 2024

기억나지 않는 모든 걸 기억하고 싶어

의미 없이 떠오르는 기억들이 있다. ‘떠오르다’란 말보다 ‘남겨져있다’가 맞을까. 왜 남겨져 있는지. 굳이 찾자면 창피해서 그런가 싶다가도 그보다 더한 상황도 많았기에 창피함의 강약에 따라 기억의 채도가 정해진다면 사실 이 일은 기억 할 만 한 축에 끼진 않는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을 앞둔 어느 날 가까운 친구와 방과 후 교실에 남아 서운한 말을 주고받았다. 속상한 마음으로 교실을 나와 운동장을 가로지르는데 눈물이 흘렀다. 이미 대부분의 아이들은 하교 후라 누가 날 보고 있진 않을 거란 생각에 안심하고 흘린 눈물이다. 우리 학교 구조는 운동장을 지나서면 교문까지 내리막길로 이어졌는데 막 아래로 발을 디디려는데 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울어? 괜찮아?”   

  

예기치 않은 상황에 놀라 돌아보니 짧은 머리가 어색한 건지 막상 말을 건넨 자신이 어색한 건지 손으로 연신 머리를 이마방향으로 눌러 쓸어내리는 한 남자 아이가 건들거리며 서있었다. 한눈에 누군지 알았다. 초등 6학년 때 짝이었던 영기다. 같은 학교 배정을 받았지만 반이 달랐기에 만날 일이 없었는데 모두 떠난 빈 학교에서 마주치게 될 줄 몰랐다. 

      

“아니야”     


기어가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했다. 정확히는 ‘아무것도 아니야. 너와 상관없으니 그냥 빨리 좀 가줄래.’라고 말하고 싶었다. 허나 그렇게 말 할 동안 좀 더 마주해야하는 상황이 더 곤욕스러울 거 같아 고개 돌려 묵묵히 걸어 내려갔다. 영기의 걸음은 눈치 없이 느릿하게 내 뒤를 따랐다. 피하듯 뛸 수도 없고 먼저 가라고 속도를 늦출 수 도 없이 나는 어색한 씩씩함으로 걸어야 했다.  

    

그 아이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집에 들어오니 어느새 눈물이 쏙 들어가 있었다. 영기에게 들켜버린 질질 짜던 내가 창피해 몇 번의 도리질을 했는지 모른다. 그 덕에 친구와의 속상했던 일이 오히려 별개 아닌 게 돼버리는 위안이라면 위안 평정이라면 평정을 얻을 수 있긴 했다. 다음날 학교 복도에서 영기를 마주쳤을 때 고개 돌려 눈 맞춤을 피하고 마음은 도망가기 바빴다. 드라마처럼 그날이 계기가 되어 소년과 소녀의 풋풋한 사랑이 되지도 그렇다고 우정 되지도 않았다. 빈약한 인연이 우연히 겹친 찰나였을 뿐이고 의미 없는 단편의 에피소드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영기는 불쑥불쑥 내 앞에 서 있곤 한다. 책상에 앉아 글을 쓰다 거실 창밖을 바라보거나 마트에서 장을 본 후 무거운 짐을 차 트렁크에 싣고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때나 아이의 학원이 끝날 때까지 커피숍에 홀로 앉아 대기하는 이런 보통의 날들에 내 곁에 머물다 사라지곤 한다. 영기의 의도는 아니었을지 모를 어쩌면 나의 착각이었을지 모를 그 아이가 함께 해준 그 짧은 내리막길의 동행은 여름 해 만큼이나 따스함으로 기억 어디에 남아있다.



소설 ‘쇼코의 미소’의 네 번째 이야기엔 한지와 영주가 나온다. 프랑스 시골 마을의 한 수도원의 봉사자로 만난 한지와 영주. 영주는 한지와의 모든 시간을 노트에 기록하며 기억하고 싶어 했다.      

“우리가 다시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면 여기에서 지냈던 시간을 얼마나 기억하게 될까?”

“거의 모든 걸 잊어버리게 되겠지.” 

“나는 그게 싫어.”

“뭐가?”

“잊어버리는 것.”

영주는 그녀의 거의 모든 날을 기록한 노트를 한지에게 보여준다. 

“넌 여기서의 시간을 잊어버릴 수가 없겠다. 나중에 만나게 되면 나에게 지금 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해줘야 돼. 난 잘 잊으니까.”

기억하기위해 기록하는 행위에 대한 놀라움은 있지만 한지는 아직 기억의 힘을 진정 이해하지 못하는 반응이다.      



나는 한지와 같은 부류였다. 잘 잊었고 잊어버린 것에 대한 미련이 없었다. 심지어 기억하려 여러모로 애쓰는 이들에게 한지처럼 다정한 말은 건네면서도 실제 내 마음은 무심했다. 지나간 것을 기억한들 달라질게 뭐란 말인가. 그것이 행복이었든 불행이었든 이미 지난 것을. 언제나 바로 직면한 일들에 온 신경을 쏟아 부어도 버거운 것이 살아가는 행위였고 그 무게에 눌려 엎어지는 날들이 많아 이미 쌓인 기억의 무게라도 덜어내는 게 합리적이었다.     

 

한지처럼 기억의 힘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아무 연관 없는 날에 영기가 나타나 사라지는 환영을 이해하지 못했으니까. 복잡한 기억의 파편들이 돌아다니다 어디서 삐죽하고 튀어나왔다 흩어지는 일들이 그저 거추장스럽기만 했다. 내가 필요로 했고 나를 따스하게 품어주고 있었음을 알아채지 못했으니까. 기억이란 지나버린 흔적쯤으로 여겼으니까.      


그러나 기억을 흙길에 묻어난 신발자국 정도로 여기는 건 어리석은 자만이었다. 불현 듯 나타나던 영기는 주로 내가 혼자 있을 때였다. 외로움보다는 가볍고 쓸쓸함 보다는 약해도 하루를 무력하게 만들기엔 충분한 허전함에 휘둘릴 때면 지하주차장이던 고층 아파트이던 기억은 그 아이가 함께한 내리막길 동행을 끄집어내곤 했다. 여름날의 해처럼 따뜻했고 위안이었던 하굣길을 무한 재생하며 기억의 주인을 보호하기 위한 아주 똑똑한 방식으로 말이다.     

 

기억은 기억의 주인을 살리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다. 만약 허전함과 비교되지 않을 고통스러움이 몰려들면 기억은 영기보다 더 강력한 감동을 꺼낼 수도 있다. 내가 하찮다 여긴 것들을 기억은 기억하고 있기에 나는 아직 깨닫지 못한 의미도 기억은 혼자서 소중히 간직하고 있기에 언제든 필요하다 싶을 땐 거침없이 주인의 마음을 두드려 상기시킨다.  

    

‘봐봐 그때 그 아이가 네 곁에 있었지. 외롭지 않았지. 넌 속으로 웃었잖아’     


보자기를 휘감고 말도 안 되는 패션으로 멋을 부리던 어린 날 보며 예쁘다며 웃던 엄마와 남대문 시장의 의류상가에서 빨간색 코트를 입혀보고 만족스럽게 값을 치르던 희멀건 아빠의 손과 전부를 잃고 하염없이 떨던 나를 안고 괜찮다고 말하던 원. 영기만큼이나 날 지탱해주는 기억들이다. 단 하나일지라도 단 한사람이 준 것일지라도 내 안에 몽글하게 피어났던 따스하고 아름다운 기억은 수천의 상처를 메운다. 기억은 그 행복과 그 위로로 매일을 살게 하는 힘을 주기에 난 더 많은 기억을 기억하고 싶다.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웃게 하고 더 많이 이해하게 하기에 기억나지 않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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