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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YE Jun 10. 2024

[봄대표] 언제가 썼던 일기들 (1)

PTSD 소환


#1. 드라마 <대행사>


JTBC 드라마 <대행사>의 이보영


대행사를 보는 중이다. 이쁘다 이보영은.

맨날 저렇게 안주 없이 마시는데 피부가 저렇게 좋을 일인가.

저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언젠가 봤던 만화책에서

"피곤하다는 내색을 하며 다니는 광고인에게 일을 줄 사람은 없다"는 그 말이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슴에 꽉 박혀 이보영을 보며 안 되는 알면서도 자괴감에 휩싸인다.

분명 나는 나대로 열심히 살고 있고 저건 드라마인데도 불구하고 이런 패배감은 달갑지 않다.


"정말 이보영처럼 안주 없이 소주를 마시고

비난받을 각오를 하며 밤을 새우고 정신병 약을 먹고 타고난 재능을 겸비하면 저렇게 수 있을까?"

"바보냐? 드라마잖아!"

친구가 한심하다는 듯 소주를 따른다. 나는 이보영과 달리 안주를 많이 먹는다. 


"야, 너는 그래도 12년 동안 회사를 운영해 왔잖아. 배부른 소리 하지 마. 

너는 너대로 네 길을 충분히 닦고 있어."

친구의 위로는 언제나 따뜻하다.


그래. 고마워 친구야. 난 괜찮아. 

그런데 왜 통장은 그대로인 건데, 왜 맨날 간당간당한 기분이지? 

나는 정말 제대로 길을 닦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이보영은 맨날 저렇게 승리하는데 나는 왜 열 번 중 한번 이기는 거야? 

친구야, 정말 내가 능력 있는 게 맞아? 


정말 이게 맞습니까?




#2. 전화


반가운 전화가 왔다. 

1년 전 맡겼던 일을 올해 또 맡기고 싶다고. 올해는 더더욱 크게 맡기고 싶다고.

아 기분 좋다. 이번달은 행복하겠어! 룰루랄라.


이번 주말은 발 뻗고 잠이나. 아니 자면 안 되지.

누군가 놀 때 내가 더 열심히 하면 나는 한 단계 위로 올라갈 수 있을 거야.

일해야지. 힘들지만 즐겁다. 즐겁지만 힘들다. 

어떻게 더 다른 생각을 해볼까? 요렇게? 저렇게?


누워야지. 고양이들이 참 좋아. 아니, 누우면 안 돼 

일어나 더 깊게 생각해 보자. 이렇게? 오 좋아. 

쓱싹쓱싹. 

열정적으로 만든 제안서를 전달했다. 그런데 어라?

함흥차사가 따로 없네. 그래 뭐 결정이 쉽겠어?

하지만 그렇게 계속되는 함흥차사였다.

요렇게 저렇게 쓰다 지우다 문자를 보내 본다. [어떻게 되었나요?]


한참 뒤에 지이잉.

[대표님. 죄송해요. 내부 사정으로 잠시 홀딩 됐습니다. 다시 시작되면 말씀드릴게요.]


그 얘기에 괜스레 보냈던 제안서를 읽어본다. 오타는 없다. 다행이다. 잘 썼다. 만족한다.

"PM님은 우리 제안서 괜찮았어?, AD님은 어때? 좋았어?"

그러면 다행이지. 그렇지만 홀딩이다.


답답한 마음에 친구에게 우다다 쏟아낸다.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지 말란다. 

홀딩은 그냥 홀딩이란다. 그래 맞아. 난 또 쉽게 좌절할 뻔했네.


어느 날 문자가 온다. 

[대표님. 완전 홀딩은 아닌 것 같아요. 정리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아앗, 홀딩은 정말 홀딩이었구나. 룰루랄라.... 이제 기다리면 되겠지?  


연락.. 오겠지? 2주일이나 지났지만..




#3. 톤 앤 매너


"비용을 좀 더 줄이고 퀄리티를 제가 포기할게요."

"네? 그래도 막상 보시면 퀄이 너무 떨어지면 생각만큼 나오지 않을 텐데요?"


괜찮아. 이쁘거나 멋질 필요가 전혀 없는 결과물이야. 중요한 건 내용이지.

열정열정 쓱싹쓱싹 

삐리릭 삐리릭


"여기 있습니다."

"이걸 저렇게 해주시면 안 되나요?"

"물론 안 되는 건 없습니다. 

다만 애초에 30초 하려던 걸 3분으로 늘렸기 때문에 표현 부분에 있어 퀄리티가."

"아는데. 이것만 그렇게 해달라고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전체적인 톤 앤 매너가."

"아니 대표님. 광고하는 사람들은 이래서 문제야. 

톤 앤 매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확한 메시지만 잘 보이면 된다니까요?"

"네. 일단 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쓱싹쓱싹 쿵쾅쿵쾅

파파팍


"어? 좋은데? 잘 보이잖아요. 근데 전체적으로 이것만 또 너무 보이네. 다 크게 만들까요?"

"그럼 강조해야 하는 부분이 떨어지고. 또 지금 마감 일정이 코앞이라."


"아, 마감일정 못 지키면 안 되죠. 포기할 부분 알아서 포기하시고, 일정은 맞춰 주시고. 

지금 이렇게 수정한 것에 톤 앤 매너 맞춰서 주세요."

마음이 와르르르. 하지만, "네, 해야죠. 됩니다."

"일정 못 맞추면 큰일 나요! 대표님!"

어차피 답정너에게 설명할 시간보다 

하나라도 고쳐서 다시 보여주는 나을 때도 있다. 우리의 시간도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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