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12. 30. 오퍼레이션이라 불리던 CX를 기념해보기.
의미 부여는 항상 재밌어요.
운 좋게 합류한 곳에서 바쁜 척하느라 바쁘기만 했는데, 그게 벌써 1년이 지나버렸습니다. 그 1년을 보내고 있을 때 깊은 생각을 얼마나 했었느냐마는, 이렇게 시간을 갖고 지나간 일에 의미를 굳이 부여해보는 건 그 자체가 약간은 재밌기 때문이겠죠.
그러니 나는 오늘, 작은 기업의 Operation Manager로서 바쁜 척하느라 바삐 보낸 시간에 조금은 의미 부여를 해보려고요. 목차는 아래와 같고, 맛있어 보이는 내용만 읽어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내 일을 맞이할 수 있을 곳에 방문하기
오퍼레이션 팀의 호적
소중한 분 모시기
조금 더 맞는 일을 찾아보겠다는 어린 충동으로 다시 맞이하게 된 구직 기간 때, 문득 생각난 서비스가 있어요. 당시 조금은 낯선 새로운 채용 솔루션이었는데, 그 솔루션의 도입을 같은 팀에서 검토해본 적 있거든요. 내가 주도해서 검토한 건 아니기에 큰 기억은 없고, 조금은 세련되게 만들고 있구나 라는 인상 정도만 남아있었죠. 짧은 호기심으로 다시금 검색해보니 최근에 서비스명을 변경하며 여전히 애쓰고 있던 작은 기업이었습니다.
그리고 CX Manager를 멋들어지게 포장한 Operation(이하 오퍼레이션) Manager 포지션이 열려 있었어요. 흥미가 조금은 생겼지만, 당시 내게 가능성이 그나마 컸고 바람도 짙었던 리크루터 포지션은 아니었기에 욕심은 적었어요. 그냥 내 또래인 대표라는 사람이 궁금한 정도. 그래도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으니 안 되면 말지라는 느낌으로 가볍게 지원해봤습니다. 날 겉으로는 멋있어 보이게끔 꾸며주는 포트폴리오는 귀찮으니 제출도 안 한 채로요.
하찮은 노력 대비 운이 좋게도 대표와 그로스 매니저를 인터뷰 자리에서 만나보게 되었고 꽤나 재밌는 대화를 나눴어요. 지금의 두 분이 그때의 기억을 갖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본인들의 제품에 애정을 갖고 있음과 제품을 키워 나가는 과정을 재밌어 함이 눈에 띄었습니다.
나도 그 유흥에 끼이고 싶었던 것 같아요. 내게 일이라는 건 책임감을 갖긴 너무 쉽지만, 애정을 품고 재미를 느끼는 건 정말 어려웠거든요. 이곳이라면 내 일을 할 수 있거니와 그걸 즐길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둘의 열정에 비해 가벼이 참석한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선 미안한 마음에 두 귀는 붉어졌어요. 그럼에도 뭔지 모를 이유로 나를 좋게 봐줬던 덕에 곧 합류 제안 소식이 찾아왔고, 나 역시 재밌어 보이는 이곳으로의 최종 합류를 짧은 고민 끝에 결정했습니다.
실리콘밸리와 같다던가 스타트업의 한 역사를 함께 하는 것 같다던가 등의 멋과 뽕 흐르는 서사는 아니어도, 처음으로 내 일을 즐길 수 있을 날들의 프롤로그였어요.
그랬던 나는 정말로 내 일을 즐기고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은, 별일만 없다라면 남은 20대는 이곳에서 보내봐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대신할래요. 그럴 수 있도록 애쓸 뿐이죠.
지금의 오퍼레이션 팀은 나를 포함해 두 명으로만 구성된 아기 같은 조직입니다. 난 아주 조금 먼저 들어왔을 뿐이고, 우리 팀원분이 조금 여유롭게 합류했을 뿐이에요. 그 팀원분이 가볍게 뱉은 말이 아직도 인상 깊습니다. 우리 오퍼레이션 팀은 비즈니스 직군이라기보단 프로덕트 직군에 가깝지 않냐는 말이었어요.
틀린 말은 아닐 겁니다. 고객의 니즈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임에도 막상 고객과의 접점이 짙은 멤버가 많지 않은 만큼, 우리가 니즈를 정제하고 이슈를 번역하면 주로 제품팀과 얘기를 나누거든요. 그럼에도 나는 오퍼레이션의 근본이 세일즈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리의 호적은 어떻게 생겨먹은 걸까요.
용어의 정의를 내리자는 건 아니지만 오퍼레이션은 정말 말장난 수준의 짱구 같은 녀석이에요. 접두어로 특정 단어만 빌려 붙이면 말은 다 되거든요. Product를 붙인다면 제품 운영이 되겠고, People을 붙인다면 경영지원 내지 인사 운영을 의미하거든요.
덧붙여, 위 시각 자료를 볼 때마다 지금 우리의 모습과 비교해보게 되어요. 우리 오퍼레이션 팀의 접두어는 뭘까요.
사실, 입사 초기엔 나도 세일즈 팀이었습니다. 한 명뿐이었던 세일즈 가이와 함께 애써본 경험이 있네요. 그래서 내겐 아직 유아 시절의 세일즈 습관이 남아있고, 앞으로도 이 태생을 따라 세일즈 성향이 계속 이어질 듯합니다. 직접적인 세일즈는 하지 않겠지만, 어찌 되었든 나 역시 고객의 이탈 없이 제품을 계속 쓰게 하려는-팔아보려는 사람이니까요.
그런 일련의 과정으로, Account Managing도 고객과의 히스토리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내가 맡아보고 있어요. 관계라는 정성적인 개념을 다루는 우리 오퍼레이션 팀이 가장 적합하기도 할 테니 말이죠. 업무 범위를 양보해준 첫 세일즈 가이와 세일즈 팀에게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다고 프로덕트 성향이 더 짙은 우리 팀원분을 무시한 채, 오퍼레이션 팀의 호적은 세일즈다 라고 말할 순 없겠죠. 그저 언젠가의 세대 분리를 위한 과정이라 생각하고, 서로가 각자 전문성 짙은 분야로 확장할 수 있도록 계속 애써봐야겠습니다.
위 글과 요즘의 내 모든 고민은 결국 채용으로 이어집니다. 소중한 분을 모시고 싶다는 마음이 크네요.
이 세상 대부분의 직장인은 돈을 벌기 위해 남이 운영하는 회사에 모인 것이겠죠. 이때 일을 자아실현의 수단으로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누군가는 돈을 벌기 위한 수단 정도로 규정하고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전자에 가까운데, 다른 사람한테 제 가치관을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어요. 저 역시 밖에서 찾는 행복도 많으니까요.
그럼에도 크게 집착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최소한 내가 속한 오퍼레이션 팀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행복한 CS 팀이 되어야 한다라는 겁니다.
CX던 오퍼레이션이던, 근본은 서비스 직군입니다. 그리고 CS 팀은 업의 특성상 가장 독립적인 팀이자 젊어지기 어려운 팀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일하는 규칙과 근무 시간의 조정이 필수적인 근무 형태를 띠고, 기업문화와 복지 혜택을 어쩔 수 없이 누리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잘하던 일을 잘 유지하는 것 자체만으로도 너무 어려우니 새로운 일을 벌일 기회는 적을 수밖에 없죠. 돈을 벌어다 주는 직군이냐 하면 그건 또 애매하구요.
정말 다행히도 내가 속한 회사는 위와 달라요. 편안한 근무 환경을 계속 조성해볼 수 있고, 재밌는 기업문화와 복지 혜택을 다른 팀 부럽지 않게 누릴 수 있으며, 새로운 일을 벌일 기회가 많습니다. 무엇보다 내 선택과 고집을 많은 분이 지지해주시는 덕이기도 해요.
이젠 더 재밌는 환경에서 더 행복하고 일을 더 잘할 수 있도록 더 많이 고민할 차례인데, 같이 깊게 고민할 수 있을 소중한 분을 모시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그 어느 CS 팀에서 시도하지 않은 것들을 시도해볼 수 있고, 곪아버린 딜레마를 해결할 수 있고, 프레임을 같이 깨볼 수 있을 그런 분이요.
누군가 내게 ”님 뭐 됨?”이라 물으면 나 역시 아직 얼라기에 딱히 할 말은 없긴 한데, 더 재밌게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자유롭게 품어도 되지 않겠습니까. 같이 재밌는 고민 나눌 사람을 모시고 싶은 마음일 뿐입니다.
의미 부여는 충분히 즐겼으니, 23년에는 메일 오타나 좀 줄여봐야겠습니다.
가볍고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종종 만나 뵈어요.
햅삐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