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07. 19. 해야해서 한 거지.
나도 내가 이렇게까지 회고를 미룰 줄 몰랐어요. 7개월 만에 써 내릴 줄이야. 얼마나 시간이 지났냐면, 고민만 하던 팀 이름 변경을 결국 해내었거든요. Operation Team에서 CX Team이 되었답니다.
7개월 만의 회고는 팀 이름과 포지션 이름은 그저 말장난이라고 여기다, 결국 개명해낸 이야기가 되겠네요. 목차는 아래와 같습니다.
이제 와서 팀 이름 바꾸기
B2B CX 세분하기
세분하는 과정에서 어려웠던 점
1.1. 대외적인 목적: 오해와 프레임
1인 1팀이었던 21년부터 필요성을 느끼곤 했어요. 나를 경영지원 혹은 제품을 운영한다는 느낌으로 엔지니어라 오해하는 고객분들이 계속 계셨거든요. 오해를 바로잡겠다는 목적이었는데, 이건 곧 대외적인 목적이 되겠습니다.
이전 회고에서 서술했듯, 오퍼레이션은 참 모호한 이름이긴 해요. 어디에다 갖다 붙혀도 말은 되거든요. 그럼에도 오퍼레이션 이름을 버리지 못한 이유는 나를 향한 프레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죠.
오퍼레이션이던 CX던, 결국은 서비스 직군이기 때문에 반갑지 않은 프레임은 항상 있어요. 누군가 내게 무슨 일하냐는 질문에 CX 맡고 있다 답하면, 전문성을 인정받기보단 고객 상담하느라 힘드시겠다는 동정으로 돌아옵니다. 나 고객 상담 개잘하긴 하지만, 그것만 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 물론 동정해주는 게 어디겠어요. 충분히 감사한 마음입니다.
나는 내가 일을 잘한다는 것에 자부심이 짙은 편이에요. 그렇기에 서비스 직군의 프레임에 거부감도 짙은 편이고, 그 프레임이 나 뿐만이 아니라 우리 팀과 팀원 모두에게도 씌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짙어요. 이를 위한 수단으로, 뭔가 좀 있어 보이는 오퍼레이션 이름을 고집하게 되었어요.
근데, 그 프레임은 내가 선도해서 씌우고 있던 것 같더라구요. 누군가 내 전문성을 의심한다면 그저 증명하면 될 뿐이었는데, 회피만 하고 자신 있게 설명과 증명하지 못한 거죠. 그래서 회피하지 않기로 했어요. 나를 경영지원이나 엔지니어로 오해하는 것도 해결할 김에 자신있게 CX 타이틀을 밀어보기로 했습니다.
CX가 뭐냐고 물어보는 질문엔 아직 확답이 어렵지만요.
1.2. 대내적인 목적: 정체성과 목표
KPI 설정은 참 어렵습니다. 어쭙잖은 KPI는 일을 위한 일일 뿐이니, 그게 정말 싫은 내겐 쓸모있는 수치가 필요하거든요. 이런 관점에서 유효한 KPI를 빠르게 설정하고 우리가 일을 건강하게 잘하고 있는지 점검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진행되지 않았어요. 이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우리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정의해본 적 없이 확장만 해왔고, 심지어 팀 이름에서도 그게 드러나지 않았다는 게 큰 이유일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하는 일부터 정의해보았습니다. 우린, 고객이 우리 제품을 계속 쓰도록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전사 성장 전략에 기여해요. 지원 부서로서 고객 경험을 다루는 모든 일을 다루는데, CX 팀으로 이름을 변경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을 정의해보니 정체성이 확립되었고, 고객 서비스 만족도를 높이고 전사 성장 전략에 기여할 수 있는 유효한 세부 목표가 정립되었어요.
B2B CX의 특이점이라 함은, 고객과의 관계를 장기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점입니다. 결제하고 땡이 아니라, 좋은 관계를 형성하고 유지해서 재계약을 이끌어내고 고객 간 레퍼럴이 일어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져야해요. 이를 위해 CX를 단계별로 세분했고 이는 대략 아래 이미지와 같아요. 완벽하지 않은 구조인 만큼 많은 분께 적용되지 않겠지만, B2B SaaS 기업을 기준으로 시리즈 A~B까지의 규모라면 가볍게 참고해보셔도 좋겠습니다.
Customer Success Manager: 고객 서비스 만족도의 기반을 다지고 수치화합니다. 고객사의 니즈를 분석해 라포 생성의 첫 단계를 다룹니다.
Account Development Representative: 만족도와 라포를 기반으로 유효한 Account를 정의하고 발굴합니다. 유효한 Account와의 미팅 기회를 개발합니다.
Account Manager: 유효한 Account를 직접 대면하고 관리해 저항도를 낮추고 만족도를 높입니다. 높아진 만족도를 기반으로 CX 팀을 신뢰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게 합니다.
위와 같은 구성의 가장 큰 장점은, 반복해서 언급하는 '고객과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일 것 같아요. 유효한 Account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결제 규모와 NPS 등의 만족도를 함께 참고해야 하고 고객의 저항도도 수치화할 수 있기에, 우리가 우선순위 높여 만나야 하는 고객이 누군지 다시 한번 정의할 수도 있어요.
이 과정에서 놓치지 않아야 하는 건, 그 누구도 CS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에요. CSM이네 ADR이네 뭐네. 멋있어 보이는 용어와 업무가 비즈니스를 고도화하는 것에 실제로 큰 기여를 하지만, 우리의 본질은 CS이자 고객 서비스에요. CS 없는 CX는 없으니, 본질을 꼭 잊지 않아야겠습니다.
핵심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고객 경험'이라는 것을 높이기 위해 온라인에서 텍스트로 승부하는 게 아니라, 직접 만나 뵈어 그들의 저항을 피부로 느끼고 직접 도움 드리는 것이라고 보아요. 오늘날 공급자와 소비자 간의 기술적인 접점은 차고 넘치는 만큼, 따뜻한 휴먼 터치를 늘려보면 어떠실까요?
AM은 세일즈 조직에 속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점, S(ales)DR은 흔하지만 A(ccount)DR은 익숙한 개념이 아니라는 점, 여전히 CS와 CX를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 등. CX를 세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여럿 있었는데, 이는 하나의 큰 문제로 이어져요.
'채용'입니다. 채용이 정말로 어려웠어요.
CX 매니저 한 분을 모시는데 경쟁률이 세 자리가 될 줄은 전혀 상상도 못 했고, 애초에 이렇게 많은 관심을 받을 줄 몰랐고, 반면에 우리 회사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는 점도 체감되었어요. 이어, 채용이 정말로 어려웠다 함은 제가 기대하는 수준에 충족되는 분들이 아쉽게도 적었다는 얘기가 되겠습니다.
채용이 딜레이 된다는 것은, 애써 구성해놓은 CX 파이프라인을 실행하는 것도 밀린다는 것이죠. 가설이 가설로만 끝날 것 같은 불안감에 이어, 내가 구성해놓은 것들은 결국 근본 없는 이론에 불과한 것이냐는 걱정도 생기게 되더라구요.
감사하게도, 제가 구성한 가설에 공감해주시는 분을 오랜 기간을 거쳐 만나게 되었고, 계획만 했던 CX 파이프라인을 실제로 실행하게 되었고, 모든 팀원이 더 체계적인 고객 관리를 위해 머리를 맞대 고민하고 있어요. 고집만 쌘 리더이자 나이로는 제일 막내인 내 말을 들어준 우리 누나들께 감사드릴 뿐.
팀 이름을 변경했고, 그에 맞춰 CX 파이프라인을 구성했고, 새로운 분을 또 모셨고. 여러 일이 있었음에도 여전히 내가 옳았고 정답이라는 확신은 당연코 없어요. 언제든지 갈아엎어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만큼, 어떻게 해야 그놈의 '고객 경험'을 진짜로 관리할 수 있을지 많이 고민해봐야겠어요.
다음 회고는 또 언제 쓰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