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시니어 마케터 독립 선언, d- 55
드디어 올 것이 왔다. 막연히 이런 날이 올 것이라 생각은 했었지만 말이다. 어쩌면 내 마지막 회사일 뻔한 회사를 떠나 그 짧은 사이 다시 두 번의 이직을 했다. 감사하게도 시장에서 아직은 먹히는 때였는지 좋지 않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상향 이동이 가능했던 이직이었다.
팀장급으로 입사했는데 팀장이 아니다?
그리고 그 누구도 회사와 조직과 팀에 대해 먼저 말해주지 않는다.
분명히 브랜드 마케팅 리드급으로 입사했는데, 가보니 전략기획이라는 이름 하에 속한 아직은 파트였고 그 팀을 이끄는 리더가 있었다. IT업계에서는 제법 긴 역사를 가진 회사였기에 조직 구성이 매우 방대했고 복잡했다. 일하는 3주 동안 회사와 팀에 대한 그 어떤 O.T도 받지 못했다. 신입사원이 아니니 OJT까진 아니라고 쳐도 그래도 새로 온 직원들을 위한 O.T는 필요하지 않을까?
우리 회사의 조직 구조는, 그리고 우리 팀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앞으로 이 회사에서 어떻게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를 해당팀의 리더(보통은 상급자)가 다양한 방식을 통해 전달하는 일을 입사 O.T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O.T는 입사 후 일 주 안에 진행이 되면 가장 좋다.
시니어급 신규 입사자는 이미 어떻게 일해야 하는 지를 알고 있는 숙련된 기술공과 같다. 하지만 그들에게도 새로운 회사라는 곳은 아직은 낯선 업무 환경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일하는데 필요한 재료는 어디에 있고 없는 재료는 어디에서 얻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다면, 그들은 더 빠르게 회사에 적응하여 회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내 일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사람을 찾아 일주일을 헤매었는데 결국 그는 내 팀장이었다.
단편적인 예시로 회사에서 몹시 중요한 프로덕트의, 몹시 중요한 빅 시즌을 앞둔 프로모션을 해야 한다는 미션이 떨어졌다. 그 외에도 크고 작은 마케팅의 마, 홍보의 홍, 광고의 광, 카피의 카, 영상의 영이 들어간 수많은 일들이 퇴근하고 나면 이메일 전달 방식으로 폭탄처럼 쏟아지던 시기였는데 (그 일에 대한 구두 설명은 거의 없거나 있어도 단 5분뿐이었고) 그중 내 생각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 중요한 일을, 왜 라이브 목표 시점 2주를 앞두고서야 준비를 시작하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입사 전이니) 문제는 프로모션의 목표와 가용 예산이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정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는 그래도 적응해 보고자 애쓰던 시기였던 것 같다)
때는 1월이었기에, 그럼 작년 4Q쯤 세웠으리라 짐작되는 해당 프로덕트의 올해 로드맵을 줄 수 있느냐 물었다. 올해 전체 정량적 목표 수치(매출, 신규 이용자 등)를 알면 이번 시즌이 주는 임팩트를 고려하여 전체 목표 수치에서 이번 프로모션의 목표 수치를 정할 수는 있으리라는 판단에서였다. 담당자가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이어진 우리 팀 회의에서 나는 이런 부분을 토로했다. 나의 팀장은 그 매출 목표는 우리 팀의 김 아무개가 가지고 있다고 했다. 순간 얼굴이 화끈거렸다. 우리 팀의 동료가 그걸 알고 있는데 애꿎은 남의 팀에다 대고 그게 왜 없냐고 물은 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팀 간 소통부재를 타 팀에 대놓고 알린 격)
조심스럽게 그 동료분께 메신저를 보냈다.
나 : "오늘 A님이 회의에서 해당 자료를 B님께 받을 수 있다고 말씀 주셔서 메신저 드려요! 관련해서 잠시 말씀 나누실 수 있을까요?"
B : "네? 그 자료는 팀장님이 가지고 계시거나 만드셔야 할 거예요. 저도 가지고 있지 않아요."
결국, 그 중요하다던 프로덕트의 그 중요하다는 빅 시즌 프로모션을 위한 정량적 & 정성적 목표는 아직 세워지지 않았고 공유되지도 않았던 것이었다.
이것이 내가 그 회사를 3주 만에 퇴사하게 된 이유였다. 그 회사에 적응할 수 없어서, 그 회사에 적응하게 되는 것이 예전의 나를 잃어버리는 것 같아서. 예전처럼 일하는 방식을 잃어버리게 될(지 모를) 나를 방치할 수 없어서.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그때만 해도 바로 독립을 생각했던 건 아니다. 역시 나는 중견 기업보다는 스타트업 씬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다시 한번 회사를 가게 된다면 바로 직전 직장(아주 좋았음)과 유사한 유연하고 조직 문화와 조직원들의 마인드 핏이 성장지향적인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뿐.
그 뒤에 다시 입사한 '그런' 회사에서 일주일만에 퇴사하게 된 이야기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