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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전 Nov 16. 2022

수업 시간에 [응답하라 20XX] 드라마 대본 쓰기

고등학교 <사회·문화> 과목 [문화와 일상생활] '하위문화' 관련 단원

올해 재외 한국학교에 근무하면서 온갖 형태의 수업을 이리저리 시도해보고 있다. 이번 학교도 아니면 교사가 내 길이 아니구나, 하는 심정이니 무엇이 두렵겠는가(라고 되뇌지만 여전히 안전 지향성만 가득한 쫄보인 나...). 10년 동안 수업을 수없이 말아먹었던 내공(?)이 있어서 그런지, 이번 수업은 다행히 구상한 대로 잘 굴러갔다.(이 공을 모두 아이들에게 돌린다.) 수업이 즐거우면, 교사의 본질에 맞는 행동을 한 것 같으면, 참, 기쁘다.


이 수업과 관련된 단원은 고등학교 <사회·문화> 교과서-대단원 3.문화와 일상생활 중 주류 문화와 반대되는 '하위문화(써브 컬처)'와 관련된 부분이다. 이 중에서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와닿는 '청소년 문화'를 자세히 다뤄보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래 사진처럼 교과서 하단에 나와 있는 탐구활동은 <응답하라 2018>을 만든다면 소재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것까지만 나와있었는데, 나는 이를 확장하여 아예 응답하라 드라마 대본을 수업 시간에 써보기로 구상했다.

사진 출처: 고등학교 <사회·문화> 비상 교과서 103쪽


이런 창의적(?) 활동은 아이들에게 크게 부담으로 다가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심지어 나 또한 대본이니 시나리오니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으니... 일단, 대본 예시를 보여주기로 했다. 열심히 구글링을 했다. 응답하라 드라마 대본을 누군가가 업로드해 놓지 않았을까 하면서. 와! 있다! 나는 몇 화의 대본들을 쭉 읽어본 후, 몇 장면을 골라서 학생들에게 나눠줄 수 있도록 편집하여 학습지로 만들었다.(대본 출처) 다행히 몇몇 아이들은 이 장면을 실제 드라마로 본 것 같았다. 나 이 장면 알아, 하고 소곤거리는 말이 귀에 들렸다. 벌써 아이들은 들썩거렸다. 다행이다.



나 또한 아이들의 즐거움에 전염되어 드라마 대본을 써 보았다ㅋㅋㅋㅋ 이름하야, 응답하라 2007! 내가 쓴 대본을 아이들 앞에서 직접 읽는 용기를 발휘했는데(?), '고고싱(당시 유재석 말투로)', '지못미' 등 그 당시 유행어를 언급할 때 학생들은 고맙게도 웃어댔다. ㅋㅋㅋㅋ


대본 예시만 준다고 해서 아이들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수업 시간도 충분히 확보해야 하고(나는 여기에 2주를 할애했다), 2주 간 학생들이 해야 할 과정을 디테일하게 자르는 것도 중요하다. 아이들은 이번 수업에 해야 할 일, 다음 수업에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을 보다 선호한다. 2주 간의 대본 작성하기 과정을 아래와 같이 구상했다.


1. 대본 작성 개관(대본 작성 방법, 연도 설정, 모둠 구성, 평가 반영 등 2주 간 수업 과정 소개)

2. 하위문화의 의미 정확히 이해하기

3. 대본 예시 보여주기

4. 대본 작성

  가. '그 해' 하면 떠오르는 것? 브레인스토밍 하기(ex. 유행하던 옷차림, 유행가, 역사적 경험, 학교 생활 등)

  나. 브레인스토밍 내용 중, 대본에 어떤 내용을 넣을지 선택하기

  다. 하위문화 하나 이상 반영되어 있는지 확인하기

  라. 등장인물 캐릭터(성격, 특징 등), 장소, 특정 상황 등을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생각해보기

  마. 대본 작성 연습/스케치하기

  바. 최종 대본 작성하기

  사. 내가 모둠에 기여한 일 쓰기


이 과정을 담은 학습지를 총 7장으로 제작해보았다. 혹시나 이 수업을 활용하실 분을 위해 학습지를 업로드해둔다.



그런데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너무 쉽게 쉽게 가버리면... 몇몇 학생들은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거나, 심지어 다른 과목 숙제를 하고 있거나, 잔다... (ㅠㅠ) 학생들은 선생님이 '강의'하지 않으면 '수업'이 아니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또한 고등학생들은 해야 할 숙제가 산더미처럼 많다. 그래서 내가 만든 장치(이자 볼모)는 수행평가 점수 반영 및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에 반영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수행평가 점수는 대본의 질보다는 대본 작성의 성실성 및 충실성에 비중을 두어, 빈칸을 채워 작성하면 수업이 끝날 때쯤 확인 도장을 주었고, 학기 말에 확인 도장 개수에 따라 수행평가 점수로 환산되는 식이다. 평가에 관련된 부분은 첫 시간인 대본 작성 개관 시간에 충분히 언급하며, 활동지에도 사전에 넣어 둔다.



팀별로 응답하라 2016부터 응답하라 2022 등 다양한 해를 선정하여 대본을 작성하기 시작했다. 활동 종료 후 대본을 읽어보니 당시 유명했던 각종 사건, 당시 최고 인기 연예인, 인기 광고, 유행어 등을 깨알같이 반영했더라. 학생들의 대본 응답하라 2016에는 대사에 '히트다 히트!', '뭣이 중한디'가 등장한다. 응답하라 2017에는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건이 TV에 방송되면서, 가수 주이의 트로피카나 광고를 흉내 내며 주인공들끼리 웃고 떠든다. 응답하라 2020에는 코로나로 인해 원격 수업을 하며 노잼(...)을 느끼던 주인공이 달고나 커피를 격하게 만들어댄다. 그리고 올해가 반영된 응답하라 2022에는 요즘 가장 핫한 걸그룹 아이브 신곡이 등장하고 틱톡에서 현재 유행하는 챌린지를 하고 있다. 방탄소년단은 매해 필수로 등장하는 것 같다.


10대 학생들은 겨우 몇 년 전 과거를 회상(?)하며 킥킥거리고 반가워하고 즐거워했다. 대본에는 그 당시 아이들의 모습이 묻어났다.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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