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내가 20대 후반이었던 201X년도 하반기에 작성했던 글임을 밝혀 둔다.
지난 학기, 근무하고 있는 고등학교에 N학년으로 다시 들어오게 된 23살의 복학생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다. 그 학생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인지 나를 굉장히 편하게 대하는 것 같았다. 팔뚝에 문신을 하고 담배를 벅벅 피워대며 한 손에 아메리카노를 들고 학교에 출근(?)하는 그 학생을 처음에는 경계했던 나도 그의 삶에 대한 궁금증이 생겨 쿨한 척 떨리는 마음으로 대화를 시도했다. 왜 자퇴를 했느냐, 검정고시를 보지 왜 굳이 학교로 다시 돌아왔느냐 등의 질문을 던지다가 우연히 현재의 학급에서 자발적으로 맡고 있는 그의 역할을 알게 되었다. ‘선배’ 노릇이었다. 인생을 몇 년 더 살아보고 이미 산전수전 겪어볼 대로 겪은 그는 애송이 10대가 우러러보는 인생 선배였다. 가끔씩 급우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옥상에서 삼겹살도 구워주고 소주도 사주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그가 건방진 표정으로 나에게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진짜 고민이 무언지 아느냐고. 나는 대답했다. 지금 고등학교 N학년이니까 성적, 대학 입시, 진로 진학 문제가 가장 큰 고민이겠지. 그는 틀렸다면서 나를 가소로운 듯 쳐다보았다.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나에게 그는 ‘가정’이에요 선생님, 하고 건조하게 대답했다. 전교 1등도, 가출을 밥 먹듯이 하는 학생도, 1교시에서 6교시까지 화장실에 한 번도 가지 않은 채 책상에 엎드려 잠만 자는 학생도, 항상 웃고 쾌활하고 학교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이까지도 모두 가족에 대한 고민이 일 순위라는 주장이었다. 당연히 그는 학생들의 문제행동의 원인을 모두 가정으로 돌렸다. 자기 또한 방황하게 된 계기가 가족이라고 했다. 스스로 삶을 마감한 가족 구성원 이야기도 얼핏 했다. 그러면서 나중에 가족 문제로 큰 위기를 겪는 청소년을 위한 심리상담가가 되고 싶다고도 말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10년 전 고등학생 때 아버지와 어머니의 불화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기억과 함께 어머니의 기대치에 부응하지 못했던 나와 어머니의 피 말리는 싸움 장면이 떠올랐다. 아, 나도 청소년기 때의 고민이 대학입시보다 가정문제에 더 있었구나. 그리고 학교 가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선생님께 예의 바르게 행동하며 다 잊고 공부하려고 발버둥 쳤구나. 교사임에도 불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더 중요한 것을 놓칠 뻔했다.
『식구』(김별아)의 ‘프롤로그’ 부분에 “가족 붕괴와 해체의 책임을 ‘비정상’에게 돌리며 비난하는 사람들에게, 당신의 가족은 정말 행복한가 묻고 싶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모순적이게도 우리 어머니 또한 본인의 삶이 배우자와 시댁 관계에서 불행했고 현재도 불행한 것처럼 말씀하시지만, 결혼 적령기에 다다른 내가 ‘정상’ 가정에서 자라지 못한(예를 들면 이혼한 부모님 밑에서 자란) 배우자를 데리고 오지 않을지, 혹여 결혼도 ‘못하고’ 혼자 살겠다고 하지는 않을지 자나 깨나 걱정이시다. 겉보기에 ‘정상’ 가정으로 간주되는 부모와 자녀 둘로 이루어진 우리 가족은 단언컨대 행복하지 않은 일들도 수없이 많았지만, 어머니는 본인의 가정도 끝까지 ‘정상’으로 지키고 싶으신 것 같았고, 내가 미래에 이루게 될지도 모르는 가정도 마찬가지로 ‘정상’이 되기를 강력히 희망하신다.
하지만 교직생활 수년차인 지금의 나는 ‘가정’ 관련 단원 수업이 너무 힘들다. 고백하자면 지난 1학기에도 모의고사에서 자주 등장하는 음양, 부부유별을 포함한 오륜 등과 같이 어려운 단어 정도만 정리하고 급하게 넘겨버렸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매일 아버지에게 맞고 자란, 효(孝)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조차 분노를 표출할 것만 같은 아이들의 상처를 건드리기가 몹시 두렵다.
그 복학생에게 하고 싶었던 질문 중 ‘가정으로 인해 아파하는 학생에게 너는 어떤 것을 해주고 싶으냐?’가 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지금 그 학생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