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교직 생활에서 단 한 번도 학생들을 재우지 않은(...) 수업 주제가 있다. 바로 (sex, gender, sexuality 등으로 번역되는) 성이다. 어른도 이 주제는 흥미로운데, 청소년들은 더할 나위 없다.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 귀는 다 열려 있다.
올해는 처음으로 성교육에 이론뿐만이 아니라 실습 영역(?)까지도 도입해보기로 했다. 그동안은 괜스레 눈치가 보여서, 교사 본인이 용기 나지 않아서, 관련 용품을 구매하는 데 비용이 들어서 자료나 영상만으로 수업했다. 이번에는 눈 딱 감고 사 보자. 여기는 한국이 아니므로 무엇을 어디에 파는지 잘 알지 못하는 나는 주위 편의점, 약국, 드러그스토어 등 여러 군데를 가봤다. 콘돔, 탐폰, 일회용 생리대, 일회용 팬티 등을 샀다.
아이들에게도 사전에 몇 가지 준비물을 부탁했다.
1. 필수 준비물: 장난이 아닌 솔직하고 진솔한 자세
2. 선택 준비물(아래 목록 중 1인 당 1개 이상 준비 바라며, 돈 주고 사지 말고 주변에 있는 걸로 가져오세요):
일회용 생리대, 빨간 물감, 물통, 붕대, 테이프, 스포이트
(->남학생들에게 1회용 생리대를 제대로 소개해주고 싶었다. 10년 간 교사로 있으면서, 일회용 생리대를 만져본 적도 없는 남학생들을 수없이 많이 보았다. 굳이 알 필요가 있을까, 라고 반론할 수도 있겠지만 알게 되면 몰랐던 세상을 보는 눈을 조금 더 넓혀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아이스 음료 용기 1회용 플라스틱 컵과 컵 뚜껑, 커터칼과 가위
(->이 준비물은 '탐폰' 사용 실습을 위해 준비하라고 했다.)
나는 성교육을 두 시간으로 나누어 수업했다.
첫 번째 주제는 [성에 대한 전반적 개관] 및 [다양한 피임방법에 대해 제대로 알기]. 수년 간의 경험으로, 수업 시작하자마자 아이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부터 시작하게 되면... 그 한 시간 수업은 실패할 것이다. 다른 내용으로 넘어가기 불가능할 것이므로 말이다.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은 나는 이를 알기에 콘돔 배부를 수업 후반부로 최대한 미뤘다. ㅋㅋㅋㅋ
먼저 성의 의미, 성에 대한 보수주의/자유주의/중도주의적 접근 시각에 대해 공부했다. 그리고 성적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었다. 성적 자기 결정권 행사를 TEA 마시기로 잘 비유해 둔 유튜브 영상(클릭 시 사이트로 이동)도 함께 보았다.
다음으로는 피임에 대한 다양한 방법에 대해 알아보았다. <우리가 만드는 피임 사전(제2판)>(클릭 시 사이트로 이동) 자료를 활용했다. 이를 편집하여 학습지로 사용했고, PPT로도 구성했다. 먼저 산부인과나 비뇨의학과 등에 방문하여 받을 수 있는 피임 방법에 대해서 강의했다. 약국에서 살 수 있는 경구 피임약 복용방법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연주기법의 의미 및 계산 방법, 피임 실패 확률, 그리고 질외사정법의 의미 및 피임 실패 확률에 대해서도 공부했다. 이론적인 부분인데도 아이들은 또렷또렷했다. 혼자서 몰래 검색하며 찾아보는 것보다 수업 시간에 공개적으로 공부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는데, 다행히 아이들은 이런 내 마음을 이해해준 것 같았다.
드디어(?) 남성콘돔을 개봉해보도록 했다. 그전에 모든 학생에게 손부터 씻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남녀가 섞일 수 있도록 모둠을 구성했다. 콘돔 포장지 뜯는 것부터 아이들은 신기해 마지않았다. <피임 사전> 책자에 콘돔 착용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꼭 이 절차를 따라달라 당부했다. 책자에는 콘돔에도 앞뒤가 있으며, 반드시 콘돔 상단부에 공기를 빼고 착용해야 한다고 강조되어 있다. 아이들은 그것을 이리저리 살폈다. 무언가를 넣어보기도 하고, 어디까지 늘어나는지 있는 힘껏 당겨보기도 했다. 생각보다 진지하게 임해준 학생들이 너무 고마웠다.
두 번째 시간 주제는 [다양한 여성용품 알아보기]. 먼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회용 생리대를 살펴보기로 했다. 먼저 일회용 생리대의 성분이 적혀 있는 포장지를 천천히 읽어보도록 했다. 그리고 일회용 생리대가 얼마나 흡수가 가능한지 빨간 물감을 푼 물을 떨어뜨려 보라고 했다(혈과 물은 다르지만...). 와, 생각보다 많이 머금어요 선생님, 이라고 누군가가 말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어느 여학생들은 남학생들에게 설명해주고 있었다. 생리대 가운데 부분은 왜 날개 모양으로 튀어나와 있는지, 팬티 어느 부분에 부착하는지 등 말이다. 희망하는 남학생들에게는 물에 젖은 일회용 생리대를 팔에 부착해보라고도 했다. 일주일 간의 그 찝찝한 기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공유하고 싶었다.
다음은 탐폰 사용 실습. 탐폰은 나도 사용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수업 전날 밤 포장지를 뜯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어느 블로거가 플라스틱 컵 뚜껑을 십자로 뚫어서 탐폰 사용을 실습해볼 수 있도록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올려놨더라. 나는 블로그 설명대로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여학생들은 물에 담가진 탐폰이 물을 머금는 모습도 되게 신기해했다.
마지막으로 환경과 내 신체를 생각하는 환경친화적 대안 생리용품에 대한 설명. 최근 한국에서는 1회용 고분자 화합흡수체가 있는 생리대를 대체할 수 있는 여성용품에 대한 바람이 불었다고 소개했다. 외국 생활을 오래 하고 있는 아이들은 다양한 종류의 대안 생리용품을 알고 놀란 모습이었다. 현재 본인이 사용하고 있는 다회용 면생리대를 보여줬다. 세척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남아있기 때문에 그 부분을 차곡차곡 포개어 가렸고, 위생 상 지퍼백에 넣어 준비해갔다. 표백하지 않은 일회용 면생리대도 아이들에게 보여줬다. 생리컵은 사진으로 대체했다.
시간 관계 상, 출산 과정이 의학적으로 담긴 유튜브 영상(클릭 시 사이트로 이동)을 짧게 시청했다.
두 차시의 성교육 실습이 끝나고 학생들에게 두세 줄짜리 소감문을 받았다. 고맙게도 학생들이 수업을 고마워해줬다. 그 중 일부를 싣는다.
학생1. 일회용 생리대, 다회용 생리대, 탐폰, 생리컵 등 다양한 여성생리용품에 대한 정확한 지식과 피임을 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알게 되었다. 이번 수업을 통해 굉장히 중요한 지식을 깨닫게 되어서 유익했고, ‘성의 자기 결정권’과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중요하다는 것임을 깨달아서 좋았다.
학생2. 1차시로는 콘돔에 대해 배웠다. 솔직히 콘돔의 형태는 대강 알고 있었으나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콘돔의 신축성이 어느 정도이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2차시는 여성 생리용품에 대해 배웠는데, 여성인 나조차 생리대 이외의 여성용품의 사용방법을 알지 못했다. 이번 기회에 나도 써봐야겠다는 용기도 갖게 되었다.
학생3. 아기를 낳는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생4. 이렇게 새로운 성교육을 받게 되어 새롭고 신기했다. 나중에 요긴하게 써먹게 될 것 같다. 다양한 피임법과 지식, 특히 실습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학생5. 이번 성 윤리 수업을 통해 여러 가지 피임방법과 부작용 그리고 여성들이 생리 기간 중 착용하는 도구들의 사용법을 경험해 보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여성들이 힘든 삶을 살고 있구나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학생6. 수업하면서 조금 부끄럽기도 했지만, 성에 대해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정말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선생님께서 진지하고 자세하게 수업을 진행해주셔서 좋았다.
학생7. 아주 짧은 영상만 보았지만, 임신의 과정과 출산까지 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위대한지 새삼 엄마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학생8. 알고 있었던 이야기들이었지만 자세히 배울 수 있어서 뜻깊은 경험이었다. 평소에는 부끄럽고 민망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어도 겉으로 표현하지는 못했는데, 이번 수업을 통해 궁금증을 어느 정도 해소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