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려와 책임 사이
선의의 딜레마 : 배려와 책임 사이
계절이 좋아 손님들로 북쩍이는 기쁜 날이다. 오후 5시도 되지 않아 서른다섯 개 중 남은 방은 특실 3개뿐이다.
그때 한 무리의 남자들이 로비에 들어섰다.
“둘, 둘, 셋!”
해석해 드리자면 두 명, 두 명, 세 명이 잘 수 있도록 방 3개를 달라는 말씀이다.
“사장님 저희 오늘 특실만 남아서 7만 원씩, 세명 주무시는 방 추가요금 만원 빼드리고 21만 원에 해드릴게요.”
나의 말에 동료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야지라는 사람이 선뜻 카드를 내민다. 거래 성사.
“사장님 이불은 식사하시러 가면 그때 넣어드릴게. 남자 직원이 그때 출근하니께.”
슬쩍 CCTV를 보니 용달차 두 대가 주차장에 진입한다.
잠시 후 익숙한 얼굴이 또 다른 카드를 내민다.
“방 2개”
단골손님이다. 어쩌지? 오늘은 만실인데...
“사장님 저희 방 없는데 오늘. 좀만 빨리 오시지.”
남자는 아쉬운 표정으로 뒤돌아 선다. 그리고는 주변 모텔로 발걸음을 옮긴다. 날이 흐려서 차를 가지고 이리저리 방 구하기는 까다로운 일이 될 테다. 단골이니 배려를 하자. 우리 주차장에 방금 주차한 트럭 두 개는 다른 모텔방을 잡고 나면 그리 옮길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의 오만한 믿음은 오늘도 쉽게 부서진다. 오후 6시가 넘자 체크인하려 고객들이 몰리고, 주차장은 이중 삼중 주차를 해도 부족한 마당이다. 뒤늦게 출근한 남편이 상황을 파악한다. 나는 당황한 나머지 타 모텔에 방을 잡고, 우리 주차장을 이용한 단골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 어디세요? 저희 고객들 주차장 자리가 부족해서 차를 빼주셔야 해요.”
대답은 이랬다.
“조례동 밥 먹으러 와부렀는디? 단골이잖아요. 에이 좀 봐줘용.”
끄응,
“그럼 최대한 빨리 식사하시고... 빼... 주...”
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전화기를 뺏어 들고 외쳤다. 마치 어제의 단골은 어제의 단골일 뿐이라는 듯 그의 부탁을 단칼에 잘라냈다.
“아 사장님 안됩니다. 우리도 자리 없어요. 지금 당장 빼주세요. 지금 빨리 오세요.”
남편의 말이 맞는 걸까? 당장 우리 손님들도 주차할 곳이 없는 마당에 그들을 이해하려든 것은 오지랖인가? 배려인가?
그러면 그 사람들이 밥 먹다가 말고 차를 빼러 다시 돌아와야 할 텐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들도 참... 방을 구했으면 차를 해당 숙소에 옮겨야지. 왜 우리 가게 주차장에 대고 간 걸까? 나는 오늘도 사람들에게 이용당한 걸까?
이것이 바로 선의의 딜레마 아닐까?
'배려'라는 이름으로 친절을 택했지만, '책임'이라는 또 다른 무게를 계산하지 못했다. 단골손님을 생각하는 마음은 아름다웠지만, 결과적으로는 현재 손님들의 불편을 초래한 것이다.
착한 마음으로 시작한 행동이 항상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의 '선'이 다른 사람에게는 '불편'이 될 수도 있고, '피해'를 줄 수도 있을 테다.
프랑수아즈 사강의 말처럼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우리는 매 순간 어떤 가치를 우선시할지 기로에 선다. 나는 '단골손님에 대한 배려'와 '현재 손님들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단골손님에 대한 배려를 택했던 것이다.
주차장 사건으로 '균형'의 중요성을 배웠다. 배려는 중요하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또 하나 책임을 다하는 것 또한 중요하지만, 때로는 인간적인 따뜻함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