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남한테 관심이 없는 사람도 뜻하지 않게 모르는 사람과 깊은 대화를 나누게 될 때가 있다. 나는 남한테 관심이 좀 많이 없는 편이라 친하지 않은 사람이 나에게 질문을 하면 단답으로 대꾸를 해서 스몰토크라는 것은 시작하기도 어렵다. 마음을 먹지 않는 한 잘 모르는 사람과 30초 이상 대화를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가끔은 나와 아무런 접점이 없는 사람과 대화가 통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경우는 친구들과 대화할 때와는 또 다른 즐거움이 있어 이런 대상이 생각날 때마다 글을 쓸 예정이다. 이번에는 이 주제로 글을 쓸 생각을 하게 만든 주인공을 소개할 생각이다.
우연한 만남
미국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추수감사절 연휴였다. 그전 해의 추수감사절 때 함께 여행했던 친구와 이번에는 캐나다 몬트리올과 퀘벡시 여행을 가기로 했다. 미국인이라면 가족들을 만나러 귀향하겠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들에게는 큰 의미 없는 휴일이다. 원래는 이 여행을 다른 언니와 가기로 했으나 그 언니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여행을 취소하게 되어 급하게 여행을 같이 갈 다른 친구를 구했다. 그 언니가 구한 비행기 표는 양도가 불가능해서 여행 일주일 전 본인이 캐나다에 가게 된 것을 알게 된 내 친구는 아예 다른 공항에서 출발하는 다른 비행 편을 예매하게 되었다.
출국 하루 전날, 공항에 사람이 몰릴 예정이니 출국 3시간 전에는 도착하라는 이메일을 받았다. 이 망할 뉴욕이라는 곳은 고속도로 사고가 정말 빈번하게 일어나고, 공항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면 이유도 모른 채 30분가량 정체되어 지하철 안에서 시간이 흘러가는 것만 지켜볼 수밖에 없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나는 여행 당일날 잔뜩 긴장을 하고 일찍 공항으로 갔다. 물론 출국 전 3시간은 무리인 것 같아서 2시간 반 정도 일찍 도착했다.
우려한 것과는 달리 짐 검사와 출국 심사는 아주 빠르고 수월하게 끝났다. 아침에 에너지 바 하나 먹은 것 외에 먹은 것이 없어 짐 검사를 마친 후 커피와 샌드위치를 산 뒤 게이트로 향했다. 내 비행기가 출발하는 게이트는 아니었으나 시간도 여유롭고 피곤해서 그냥 앉아있고 싶었다. 마침 두 개의 자리가 비어있길래 오른쪽 자리에는 내 가방을 두고 왼쪽 자리에 착석을 했다. 그러나 가방 옆 자리에 앉아있던 분이 내 가방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다른 사람 자리라고 알려줬다. 그제야 의자 앞 바닥에 가방이 놓여있는 것을 보고 내 가방을 치웠다. 얼마 뒤 좀 나이가 있는 아저씨 한 분이 음식을 들고 자리에 와서 앉은 뒤 옆에 있는 분한테 감사 인사를 했다. 아마 자리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던 모양이다.
나는 남은 시간 동안 논문이든 지원서든 뭐라도 쓰려고 노트북을 켜서 공항 와이파이에 연결하려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도해 봐도 연결이 되지 않아 멍 때리고 있었더니 옆에 앉은 아저씨가 집에 가는 길이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친구랑 캐나다 여행 간다고 짧게 대답을 했다. 하지면 내가 여기서 대화를 끝냈으면 이 아저씨(앞으로 B 씨로 통일)와 두 시간 동안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최근 들어 정말 친한 사람들 외에는 대화를 길게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뜸을 들이다가 집 가는 길이냐고 되물어봤다. B 씨는 집에 돌아가는 길이 맞다며 3주 동안 뭄바이로 출장을 갔다가 지금 앉아있는 공항에서 경유해서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셨다. 게이트에서 거의 다섯 시간 대기했다고 한다.
일과 관련된 이야기
내가 계속 대화할 의지가 있는 것 같아 보였는지 B 씨는 본인이 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으며 인도에 있는 파트너를 만나고 왔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몇 달 전 인턴을 하며 녹색 수소를 유럽으로 수출하는 공급망에 대해 연구를 했던 것이 기억나서 언급을 했다. B 씨는 신이 나서 안 그래도 최근에 독일 정부랑 녹색 수소 관련해서 계약을 맺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때부터 대화가 마치 끊기지 않는 탁구 경기의 탁구공처럼 오갔다.
유럽에서의 녹색 수소 이야기를 하면서 내가 한국인이고 유럽에서도 거주했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그랬더니 최근 회사에서 현대 수소차 다섯 대를 살 예정이라며 회사 지붕에 태양열을 설치해서 차에 이 에너지를 공급할 거라 했다 (이 부분은 제대로 들은 건지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했으면 TMI라고 생각했겠지만 처음부터 대화할 때 호감이었던 분이 하는 말이어서 경청했고 대화는 이어졌다.
B 씨는 본인이 하고 있는 일과 이 산업에 관한 자부심이 넘치셨다. 앞으로 가장 유망 있는 분야라며 자기 조카한테도 관련 전공을 하면 나중에 인턴십 자리를 마련해 주겠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이 말을 들으며 나도 애초에 재생 에너지 사업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었다면 석사 전공도 관련된 쪽으로 선택했을 것 같다고 했다. 지금 취업 준비 중이지만 생각보다 잘 안 되고 있어서 속내를 털어놓았더니 B 씨가 기관 몇 군데를 추천해 주셨다. 나중에 캐나다 가서 와이파이를 잡고 찾아봤을 때 대부분 외국인 채용을 안 하는 곳이었으나 도움을 주시려고 한 건 정말 감사했다.
비슷한 시야를 가진 사람
다행히 계속 재생 에너지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더 했더라면 내 지식의 한계가 적나라하게 드러나 곤란했을 것이다.
다시 유럽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부모님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계신다고 하니 B 씨가 독일에서 제일 좋아했던 여행지가 프랑크푸르트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이라고 말문을 떼셨다. 나는 설마 하이델베르크를 말하는 건가 하고 말을 꺼냈더니 B 씨랑 오디오가 겹쳤다. 나에게도 하이델베르크는 좋은 기억이 있는 곳이어서 또다시 공감대가 형성됨을 느꼈다.
그 이후로 잡다한 이야기를 오래 늘어놨다. B 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신기했던 것은 살아온 세월과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생각하는 관점이 꽤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어쩌다 보니 중국인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데 B 씨가 일을 하며 봐온 중국인들은 본인 기준에서 봤을 때 너무 치열하게 산다고 했다. 중국이 지난 수십 년 간 기술적으로 발전하고 빈곤율을 크게 줄인 것은 대단하지만, 다른 부분에 있어서는 솔직히 이해하기 어려운 국가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으며, 중국과는 배경이 다르긴 하지만, 한국 역시 비교적 최근에 빠른 속도로 발전했기 때문에 물리적인 보상을 우선시하며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며 맞장구쳤다. 하지만 요즘에는 천천히 자기 속도에 맞춰 살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했더니 B 씨는 좋은 변화라고 하셨다. 사실 뉴욕도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성공"만을 바라보고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이들로 가득하다. 이에 대해 B 씨 역시 뉴욕은 "투머치"이며 다른 지역과 비교했을 때 너무 독보적이기 때문에 절대 미국의 평균적인 도시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필요 이상으로 금전적인 집착을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있다가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을 만나니 숨통이 트였다. 이 분과 대화하는 것이 귀찮았으면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른 게이트로 이동했을 수도 있지만, B 씨와는 더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B 씨의 경험에 대해 더 듣고 싶어 인도에 대해서 들리는 것들은 많지만 가본 적은 없어서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이 편견인지 실제로도 그런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아니라 짖꿎은 미소였다. 본인이 대답을 하기 전에 내가 인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뭐냐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1) 기차를 타려면 몇 시간씩 기다리고 대중교통이 엉망이다, 2) 여자들이 혼자 다니기에는 위험하다, 3) 사람들이 보수적이다고 했다. B 씨는 내 말이 대부분 사실이라고 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보수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많지만 지방으로 가면 많이 보수적이고 아직 여자들이 혼자 여행을 다니기에는 위험한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본인이 수십 년 전 처음 인도를 방문했을 때는 많이 더럽고 도시 계획이 전혀 안 되어 있다는 점에 가장 놀랐다고 했다. 슬럼가 바로 옆에 고층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어서 빈부격차가 심한 것이 확연하게 보인다고 했다. 지리학과 출신으로서 이런 대화 너무 좋다.
개인적으로 뉴욕에서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다양한 사람들이 어우러져 사는 곳인 만큼 서로를 향한 차별과 혐오도 엄청나다는 것이다. 흔히들 생각하는 백인과 흑인, 흑인과 동양인 사이의 갈등은 겉으로 확연하게 드러나며 사회적인 비판을 받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뉴욕에서 학교를 다니며 주위에 동양인들이 많았는데, 한국인들끼리 있는 자리에서 다른 나라 사람이나 인종이 없으면 다른 집단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며 공감을 얻으려고 한다. 물론 특정 집단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편견은 누구나 있겠지만, 일반화도 심하고 단순한 혐오 발언인 경우가 많아 친하지도 않은데 그런 이야기를 하면 듣기 거북할 때가 많다. 특정 집단은 이런 경향이 있는 것 같다의 뉘앙스가 아니라 특정 집단은 영어 발음이 안 좋아서 별로다~식의 까내리려고 하는 발언이 정말 많다. B 씨와 대화를 할 때는 여러 나라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어도 그런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아서 편했고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대화를 하며 재미있었던 것은 B 씨가 유쾌한 미국식 아재개그를 장착하신 분이었다는 점이다. 나의 목적지가 퀘벡이었기 때문에 불어권 문화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나눴다. 나는 최근에 파리 여행을 다녀왔을 때 내가 물어보지 않았는데도 기차역에서 사람들이 영어로 친절하게 설명을 해준 일화를 언급했다. 그랬더니 B 씨는 내가 미국인처럼 안 생겼으니 그들이 나에게 친절한 것이라며 농담을 던지셨다. 퀘벡에서도 내가 미국인이 아니니 불어를 못하더라도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할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이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정말로 나의 캐나다 여행은 친절한 사람들 덕분에 아주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각자 갈 길을 떠나며
어느덧 이륙할 시간이 다가와 대화를 멈추고 시간을 확인했다. B 씨가 내 게이트는 어디냐고 해서 모른다고 했더니 이 공항은 자기 마음대로 터미널도 바꾼다며 빨리 찾아보라고 하셨다. 다행히 앉아있던 게이트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이대로 떠나기엔 아쉬워서 B 씨를 링크드인에 추가했다. 그제야 서로 통성명을 제대로 하고, 궁금증이 많은 B 씨가 내 성을 보더니 한국에만 있는 성이냐고 여쭸다. 나는 그렇다고 답하고 대략 한국인의 20%가 같은 성을 공유한다고 말했더니 (누가 봐도 김 씨) 놀라며 "스미스나 존스 같은 거네"라고 하셨다. 본인은 조상이 잉글랜드, 독일, 그리고 또 몇몇 유럽 국가에서 왔다며 진짜 옛날부터 미국 땅에 있던 원주민을 제외하면 본인이 제일 보편적인 (조상이 다 섞인) 미국인이라며 마지막까지 아재개그를 날리셨다.
비행기 탑승을 기다리는 도중 B 씨가 링크드인으로 메시지를 보냈다. 캐나다에 미국식 추수감사절 음식을 파는지는 모르겠으나 칠면조는 꼭 먹어보라고. 그다지 궁금하지 않은 음식이었지만 감사하다고 인사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