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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콩범 Dec 01. 2022

서장-피페라투스 2

2

니나는 시장으로 향했다. 달걀과 두 가지 치즈, 올리브를 넣은 빵과 자두 케이크를 하나 사 들고는 천천히 고양이를 키우던 가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아직도 돌아온 고양이는 없었다. 찾아준 사람도 없었다. 니나는 고양이 털을 조금 모으며 시장을 돌았다.

시장 고양이들은 집고양이가 아니라 그런지 언제 사라졌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하나, 둘 사라졌고 상인들이 눈치챌 무렵에는 이미 한두 마리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어디 구석에 가서 쥐를 잡거나 하는 줄 알았지..."

"우리 애는 암컷이라, 새끼 낳으러 으슥한 데 간 거 아닌가 했는데, 애가 사흘이 지나도 밥을 안 먹으러 오는 거야!"


증언들은 하나같이 중구난방이었고, 고양이 털도 가게들을 샅샅이 뒤져서야 찾을 수 있었다. 니나는 상인들의 깔끔함에 치를 떨며 비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니나는 공원의 호숫가로 가서 빵과 자두 케이크를 천천히 먹기 시작했다. 나무줄기에 난 발톱 자국은 희미하고 털은 찾을 수 없었다.
하늘에는 조금씩 구름이 몰려왔고 공기가 조금씩 무거워졌다. 니나는 환영 마법으로 몸을 감추고 커다란 나무 위로 기어올라갔다. 새벽까지 잠들었던 니나는 코에 난 솜털을 적시는 가랑비에 눈을 떴다.

비가 가늘게 온다. 하늘은 창백하게 밝아오고 비는 곧 그칠 것이다. 니나는 마법 도구를 넣은 주머니에서 작은 은판을 꺼내 왼손에 쥔 뒤 간신히 모아둔 고양이 털을 호수 위에 흩뿌렸다. 호수는 깊고 고기는 움직이며 물풀이 이리저리 흔들렸다. 가랑비의 가느다란 물방울이 커다란 파문을 그렸다. 고양이 털이 비를 맞아 젖고 가라앉았다.


"어디로 갔니? 내가 찾게 해 줘."


니나가 속삭였다. 파문이 보여주는 것은 많은 고양이가 갇혀있다는 것이었고, 그 고양이들 모두가 불행하다는 것이었다. 갇혀 있는데 어떤 고양이가 행복할 것인가. 물풀은 마치 우리나 새장처럼 꼿꼿하게 출렁이고 있었고, 물고기의 눈은 그날따라 번득였다. 어둡다, 어둡다, 어둡다. 니나는 오른팔을 앞으로 쭉 뻗은 뒤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옆으로 휘둘렀다. 작은 반디 같은 불이 나와 수도 서쪽으로 넘어갔다. 니나는 놀란 고양이처럼 튀어 올라 공기를 밟고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수도 서쪽에는 부자들이 반, 가난한 사람이 반이었다. 그사이에 언제나 가느다란 중간지대가 있고, 보통 거기서 범죄가 일어났다. 고양이에게 선택받은 지 몇 년 되고 성년이 된 심화반 학생들이 열흘에 한 번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호 마법을 걸어주고 이런저런 일자리를 알아봐 주었다. 반딧불이 니나를 이끈 곳이 바로 그 중간지대였다. 니나는 공중에서 공터의 큰 나무로 내려간 뒤 마법의 흔적을 찾아보기로 했다. 갈피를 잃은 빛 덩어리는 이리저리 헤매다 어느 극장같이 화려한 건물 앞에 멈췄다.


귀인의 집. 더러운 입소문을 타는 곳이라 니나에게 낯선 유흥업소였다. 이곳에서 얻을 수 없는 것이 없고, 왕국에서 가장 많은 고객을 거느렸으며, 누구든 대가만 치르면 희락을 누릴 수 있다. 사람과 돈은 기본이며, 용병을 고용해 정령까지 찾고 있다고 했다. 성년의 마법사들이 차마 어린 마법사들에게 할 수 없는 이야기가 건물을 가득 채우는 곳. 찬란하게 빛나는 껍데기 안에 썩은 살이 터지고 곪아가는 곳. 고양이들이 가장 질색하는 '치근대고 껄떡대는' 종류의 인간들이 언제나 상주하는 곳이었다. 귀인의 집에서 시작한 다채롭고 추잡한 취향들은 더더욱 다채롭게 비틀려 헤네움 대도시의 뒷골목을 오염시킨다. 이 뒷골목 유행의 선두 주자에 새 유행이 시작한 것은 한 한 달 전이었다.

몇 년에 한 번, 마치 독한 열병처럼 사람들은 동물을 지독하게 괴롭혔다. 이번에는 고양이였다. 이런 은밀한 종류의 유행은 마법사들의 귀를 피해 퍼져나간다. 마법사들은 스물다섯을 넘기 전에 보통 자기 고양이를 만나기 마련이고, 보통 고양이를 모시기 위해 일찍 귀가한다. 뒷골목의 지린내는 고양이가 싫어하는 것이기에, 일이 아니면 어른 마법사들은 뒷골목 술집을 찾지 않는다. 흔적 밟기를 온 도시에 퍼뜨릴 수 있는 마력이 아니면 찾을 수 없는 법이다.

공기는 탁하고 향이 진득했다. 몰래 들어가야 하니 창문을 부술 수 없어 온종일 근처 나무에 숨어있다 기회를 잡았다. 뒷문으로 술을 납품하는 업자를 따라 슬쩍 수레를 밀며 침입하니 의외로 쉽게 들어왔다. 니나는 몸을 망토로 가린 뒤 얼굴을 손으로 문질러 장사꾼 노인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곳곳에 불쾌한 광경에 기분 나쁜 소리가 어우러져 있었다. 마법사들의 악몽이 우리에 갇힌 고양이의 눈동자에 비치고 있었다. 니나는 이를 갈며 무슨 마법을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를 악문 니나는 조심스럽게 구석에서 구석으로, 먼지를 뒤집어쓰고 움직이며 숨기 좋은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웃음 반, 공포 반이 지배하는 공간은 처음이었다. 니나는 다시 얼굴을 바꿔 심부름꾼으로 위장했다. 잘 차려입은 하인들이 니나의 먼지투성이 망토를 보고는 욕을 하며 자리를 피했다. 태어나서 처음 받는 삿대질에 처음 듣는 육두문자였다. 니나는 조금 무서워지기 시작했고, 옆의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털이 더러워진 고양이는 눈을 크게 뜨고 마른 몸을 웅크린 채 다른 고양이들처럼 작은 철창에 갇혀있었다. 니나는 괜히 책상을 옮기며 돌아다니는 손님들의 시선에서 고양이를 가렸다.


"괜찮아, 조금만 참아? 응?"


니나는 조심스럽게 속삭여주었다. 철장에 먼지를 조금 문질러 잊기 마법도 걸어주었다. 상처가 있는 고양이들이 너무 많고, 구석에는 먼지가 자욱해 눈물이 줄줄 나왔다. 환영 마법이 잘 작동해 다행히도 니나는 눈물로 씻은 얼굴을 들키지 않았다. 구석에서 구석으로 옮기던 중 기괴할 정도로 맑은 종소리가 물렸다. 사람들은 환하게 웃으며 어디론가 모여들어 가기 시작했다. 니나는 그들을 따라가다 경매장으로 쓰인다는 극장까지 오게 되었다.


"너! 왜 얼쩡대는 거냐! 이거 들고 무대 뒤로 들어가!"


한 하인이 숯을 든 광주리를 니나에게 떠넘기고는 손을 털었다. 니나는 조금 굽실거려주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합니까요?"

"뭐야, 이건, 새로 왔냐? 저 쪽문으로 들어가서 올라가는 거잖아, 멍청한 놈아!"

"예, 예."


성질부리는 하인을 뒤로하고 니나는 부리나케 쪽문으로 도망쳤다. 무대 위는 불이 환하고 수조와 커다란 화로 위에서 달구어지는 돌판이 비치되어있었다. 잘 차려입은 사람들이 가면을 쓰고 고급스러운 관람석에 앉아있었다. 역시 잘 차려입은 남자가 거드름을 피우며 무대 위로 나오고, 그 뒤로 두 명의 하인이 간식용 손수레에 천으로 덮은 상자 같은 것을 얹어 밀고 나왔다. 남자가 과장된 몸짓으로 천을 휙 들어 올리자 나온 것은 녹슨 철제 새장이었다. 그 안에 작은 얼룩 고양이가 있었다. 작고 움츠러든, 얼룩무늬가 아직 옅은 투명한 은갈색 털이 빳빳하게 서 있는, 세상에. 새끼 고양이였다.

솜털이다. 어린 마법사는 그렇게 생각했다. 귀여워. 그는 일단 마법사답게 고양이 앞에서 감탄했다. 고양이는 세상에서 제일 예쁜 동물이다. 새끼 고양이는 천사다. 고양이의 매력을 못 알아보는 놈은 마법사의 자질이 없다. 공포를 찢고 사랑스러움이 삐져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새끼 고양이가 마법사의 눈앞에서 공포에 질려있다니? 헛웃음이 나왔다. 방년 열다섯의 피 끓는 어린 마법사는 눈이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자비로운 스승께서 마탑의 이름을 빌려주셨으니, 마탑의 이름 아래 고양이의 이름으로 너희를 벌하겠노라.


"오늘은 어제와 같은 무늬의 얼룩 고양이입니다! 철판을 붉게 달일 정도의 불과 북쪽 바다처럼 찬물, 그 안에서 이 녀석은 얼마나 버틸지 보도록 하지요! 물과 불, 무엇을 택하시겠습니까! 가장 높은 금액을 입찰하시는 분의 취향이 이 새끼 고양이의 운명을 가를 겁니다! 그럼 입찰을 시작합니다! 1000헤네! 1000헤네부터 시작합니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귓속말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니나는 천천히 마법의 순서를 짰다. 묶고 풀고 혼내고, 한 번 더 혼내고. 망토에 묻은 먼지는 덩어리로 뭉칠 만큼 두터워 한 해가 넘게 쌓인 듯했다. 첫 번째 입찰자가 나오고 남자가 흥을 돋우자 두 번째도 나왔다. 못 볼 꼴이었다.

니나는 조심스럽게 고양이 박하 공을 꺼내 옆구리 정도 높이에 띄웠다. 니나는 주머니에서 다시 은판을 꺼내고 고양이 박하 공을 조금 뜯었다. 조각을 조심스럽게 바스러뜨리자 은판 위로 제법 고운 가루가 내려앉았다. 니나는 잠깐 고민하다 팔을 크게 휘둘러 몸 옆쪽으로 동그라미 세 개를 그리며 은판 위의 고양이 박하에 입김을 살살 불어넣었다. 가루는 조금 흩어진 뒤 먼지와 섞여 공기 중에 퍼졌다. 니나는 은판을 높이 들어 가루를 자기 주변에 흩뿌린 뒤 고양이 박하 공을 꺼내 냄새 묶기를 풀었다. 은판을 털어 주머니에 집어넣은 뒤 이번에는 팔뚝 만한 청동 주걱을 꺼냈다. 니나는 고양이 박하 공을 공중에 띄우고 청동 주걱으로 있는 힘껏 내리쳤다. 고양이 박하 공은 산산조각이 나서 사방팔방 흩어지기 시작했다.


"풀린 것은 가두고 가둔 것은 풀어라."


니나는 무대로, 허공으로 뛰어올라 옷에서 털어낸 먼지에 마력을 섞어 사방으로 퍼뜨리며 공간에 마법을 섞어 넣었다. 깊은 적갈색을 띤 와인 같은 망토가 강렬한 조명 아래 선명하게 빛났다. 붉은색, 청동처럼 깊은 갈색, 깊은 주홍색의 빛 덩어리가 니나의 주변에서 생겨나 뻗어나가고 희미한 고양이 박하 향기가 귀인의 집을 채우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가둔 우리들이 펑펑 열리고 허공으로 고양이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창과 출입구를 막고, 문을 망가뜨려 안에서 열리지 못하게 만들었다. 니나는 천장 조명창을 없애고 마흔 마리가 넘는 고양이들을 내보냈다. 귀인의 집의 넓은 지붕에서 고양이들은 한참 만에 햇살을 받으며 몸을 풀 수 있었다.

고양이들을 풀어준 니나는 지붕에 안전장치 마법을 건 뒤 무대로 천천히 다가갔다. 비웃어주려고 했는데 털이 더럽고 상처가 짓누른 고양이들을 보고 나니 곱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이번에 의료용 은 칼을 꺼낸 니나는 고양이의 흔적이 묻은 우리를 불러와 똥과 고름과 피와 털을 긁어냈다. 왼손 손가락을 아래로 한 뒤 휘휘 원을 그려 비듬이 섞인 먼지를 살짝 띄운 니나는 오른손에 든 칼을 툭툭 쳐서 그 오물을 떨어냈다.


기억이 한 줌, 눈물이 한 움큼. 백의 백 년, 반의반 걸음. 숨결이 닿지 못하거라.


앞으로 여기서 고양이를 괴롭힌 것들은 고양이 근처에 가면 눈물 콧물 쏟으며 벌겋게 부어오른 눈에 천 번의 기침을 하게 될 것이다. 얼굴이 퉁퉁 부어서 아무 데도 못 갈 테니 얼마나 고소한가! 이놈들 집을 알아두었다가 내 고양이를 만나면 근처로 가끔 놀러 가야지. 햇살 좋은 날, 고양이에게 일광욕을 시켜주면서 오늘을 떠올리며 기뻐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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