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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송이 Jun 08. 2023

행복한 착각

서울의 한 카페에서


6월의 어느 날, 해질 무렵.


커다란 카페에 나 혼자다. 서울 한복판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사람 많기로 소문난 곳인데 머무르는 두 시간 동안 전세다. 부자가 된 기분이 들어서. 나를 위해 비워준 것 같아서 '피식피식-' 감출 수 없는 웃음이 자꾸만 새어 나왔다.


가장 구석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누가 봐도 좁고 불편했지만 왠지 모를 아늑함에 끌렸다. 통창 너머로 보이는 풍경들을 구경하기에 딱 좋은 자리이기도 했다. 따뜻한 라떼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향긋한 김을 한동안 바라보다 밀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아, 좀 어둡긴 하다.'


조명이 닿지 않는 자리. 침침해진 눈을 비비며 자리를 옮길까 몇 번 고민하다 말았다. 여전히 사람은 없고, 앉을자리는 많았다. 그러다 창 밖의 초록색 나무가 시선을 빼앗아갔다. 나뭇잎들이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말렸다.


"송이야, 그냥 거기 있어."


그리고 잠시 뒤, 광명이 비치었다.


고민을 누가 듣기라도 한 듯 햇빛이 카페 안 깊숙한 곳까지 입장했다. 어두웠던 테이블이 시간을 두고 서서히 마법처럼 밝아졌다. 그것도 아주 아름다운 황금빛으로 말이다.


환하게 밝혀진 자리는 작은 연극 무대에 쏘아진 핀조명 같이 극적이었다. 커피 위, 새하얀 종이 위에 반짝이는 빛이 흘렀다. 이어서 황금빛 벽에 춤추는 나무 그림자가 나타났다. 우울함을 끄적이려던 다이어리를 덮고 내 마음도 같이 춤을 췄다.


떠나지 못하는 갑갑함에 어두워져 가던 마음이 밝아졌다. 빛이 마음 깊은 곳에 비추인다. 감사함이 다시, 기쁨이 다시 드러난다.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움직이는 것 같은 행복한 착각.


오늘 이 카페 오길 참 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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