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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민석 Sep 16. 2023

고속버스 45번 자리

나는 누굴 사랑했을까.


 고속버스를 타다 보면 가끔씩 45번 자리를 예매할 때가 있다. 


  운전석을 바라보고 맨 오른쪽 끝 자리. 학창 시절의 45번 자리는 잘 나가는 학우들의 전유물이었다. 그들에 밀려 나는 항상 중간이나 앞자리에 앉았다. 소풍 갈 때도 수학여행 갈 때도  45번 자리를 타 본 적이 없다. 결국 학교를 벗어난 성인이 돼서야 그 자리에 탈 수 있었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나기도 했다.


 운전석 앞에서 바코드를 찍고 45번 자리를 향해 긴 복도를 걸을 때, 나는 묘한 설렘이 들었다. 과장을 조금 더 보태서 쾌감에 젖기도 했다. 


 처음 앉은 45번 자리는 굉장히 높았다. ‘역시 높은 곳이 권력의 자리인가’라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벨트를 맸다. 높은 의자 탓인지 주위의 사람들이 보였다. 앞자리에는 한 커플이 앉아 있었다.

 버스가 출발한 지 얼마 가지 않아 어둠이 찾아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이었으니, 낮은 금방 물러갔다. 세상은 어두웠다. 고속도로에서 넘어오는 헤드라이트 불빛만이 전부였다.


 자는 것도,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도 지겹고 해서 사람들을 흘겨봤다. 자는 사람들,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 나와 별 다를 게 없었다. 그러나 앞자리에 앉은 사람들은 달랐다.

 그들은 서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머리를 맞대기도 했다. 손을 잡기도 하고 서로를 바라보며 까르륵 웃기도 했다. 평소라면 짜증이 솟구칠 만한 장면이지만, 그날은 이상했다.


 초겨울의 진입이어서인지, 어둠 속이어서인지, 하필이면 이어폰에서 BMK의 ‘꽃피는 봄이 오면’이 들려서인지 모르겠지만, 마음이 말랑말랑해졌다.  서로가 좋아 어쩔 줄 모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니 나조차 기분이 좋았다. 아, 서로 사랑해 죽는 사람들의 표정은 정말 행복하구나. 저들은 정말 행복하구나. 그들의 행복의 가루가 나에게도 전해진 기분이었다. 흐뭇한 마음, 더 나아가 흐무뭇한 마음으로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떠나간 네가 생각이 났다. 너와 함께한 그 시절이 그리운 건지 네가 그리운 건지 희미하지만, 


 ‘나도 저렇게 행복하게 사랑했던 적이 있었는데’

 ‘상대방을 바라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던 때가 있었는데’


 나에겐 사랑이 필요한 것인가. 아니면 그 시절이 필요한 것인가.

덧붙여  나는 너를 사랑한 것일까 너를 사랑한 나를 사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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