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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하늘HaruHaneul Aug 21. 2024

수요일의 이야기/순서

행복에 순서가 있다면

여름이 짙다 지쳐간다. 넓은 잎들이 햇볕에 타들어가 바스락거리며 떨어진다. 커다란 나무 그늘 밑 맥문동 보라꽃이 한창이다. 어느 꽃은 잎이 먼저 나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어느 꽃은 꽃이 먼저 피고 꽃잎이 다 떨어지면 잎이 새로 피어난다. 마치 다른 종류의 식물처럼 꽃과 만날 새도 없이 그렇게 살아간다. 어떤 식물이 더 예쁘고 어떤 꽃이 더 예쁘고의 문제가 아니다. 자연의 섭리대로 생겨난 존재의 이유대로 순응하며 제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자연을 보며 과실수를 보며 열매를 보며 그 쓰임새를 보며 어느 것은 잎이 귀하고 어느 것은 열매가 귀함을 알게 된다. 어느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야 가치가 더해지고 어느 것은 얼른 거두어야 좋은 것이 따로 있다. 저마다의 순서와 시기가 정해져 있다.


존재의 이유와 쓰임새를 들여다보다 생각이 번진다. 신이 인간의 삶에 순서를 정해놨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저마다 특별한 시기가 모양새도 다르고 쓰임도 다르니 서두르거나 따라 한다고 삶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그 빛나는 시간과 모양을 미리 알면 좋으련만 우리는 알지 못한 채로 하루를 살아간다. 행복의 순서와 시기가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른 방향으로 피고 지고 하는 걸 알게 된다면 살아가는 일이 조금은 편안해질까.


티브이를 잘 보지 않으니 드라마나 배우들을 잘 모른다. 그러다 간간히 접하게 되는 배우의 삶. 듣다 보니 눈물이 날 때가 있다. 누군가는 걱정이 필요 없는 삶이라고들 하지만 불확실한 미래를 담보로 될 때까지 계속해서 뛰는 것만큼 어려운 시간이 있을까? 기다림이 기본값인 채로 풀의 모습으로 시간을 이고 지고 산삼이 되듯 기다림의 시간들. 모두의 삶과 다르지 않다.


보통사람보다 많은 재주와 유머감각을 갖춘 귀해보이는 누군가가 바닥이 보이지 않는 저 밑에서부터 걸어서 올라온 곳이 지금 서있는 곳이라면 어떨까? 출중한 외모와 재주에도 서두르지 않고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다가 인생이 무르익어가는 즈음에 그가 마땅히 누려야 할 복을 다 받게 된다면 어떨까?


삶의 긴 여정에 행복과 불행이 정해진 순서가 있다면 어떨까? 저마다 다른 모양의 행복이 각각 다른 시간대에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어떨까? 그 결과지를 알게 된다면 현재를 살아가는 갈등과 고난이 조금 가벼워질까 생각해 보게 된다. 살아갈 날이 짧아지니 모든 것에 때가 있고 의미가 있을을 배운다. 스스로의 의미와 존재이유를 들여다보게 되고 겸허해짐을 발견한다.


젊은 피가 들끓는 시간들을 지나 견뎌낸 인내가 공짜가 아님을 알게 되고 순리라는 것을 느끼며 삶이 무르익어 간다. 이때쯤이야라고 누군가 말해주길 바라며 현재를 놓쳐버리면 열어봐야 할 그때는 어느새 또 달아나 버리는 마술을 아는 나이다.


웃으며 지금 존재하는 시간이 만족스러워짐은 지난 시간의 고군분투가 주는 값진 선물이다. 스스로 애써서 구슬을 꾀듯 모아간 시간들. 문득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현재의 순간에 행복해하는 배우 조정석을 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의 작품을 많이 보지는 않았다. 재주가 많은 유쾌한 사람이라는 정도로 알고 있었다. 10 대에 이미 가장이 되어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야 했던 소년의 아이답지 않은 재기 발랄함. 마치 그늘진 응달은 모두 피한듯 여유 있는 삶을 살아온 듯 유쾌한 유머감각. 배우가 그가 가야 할 길이었던 듯 교회에서 갈고닦은 연기. 문득 그의 인터뷰를 보며 지금 그가 갖추고 있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오늘 풀러 볼 행복을 위해 그렇게 긴 시간 준비를 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기나긴 고통을 지우는 미소와 속깊은 연기. 생존을 위한 고군분투했던 생활이 가르쳐준 그 깊이가 누구도 탐할수 없는 최고의 자산이 되었다.


10년짜리 적금을 만기에 찾는 배우. 그 적금을 시작할 때 무일푼이던 그가 오랜 시간 넣어온 적금의 만기를 자랑한다. 그는 지금 긴 시간 그가 지켜온 10년 만기 적금보다 더 많은 출연료를 받는 배우가 되어 사랑하는 딸과 아내가 있는 행복한 가정의 가장이 되어있다. 어린 날 미뤄둔 행복이 지금 한꺼번에 열매가 되어 쏟아지는 듯하다. 아직 젊고 갈 길이 먼 그의 삶을 응원해 본다. 미리 한꺼번에 다녀간 불행 덕분에 듬뿍 남아있는 행복을 마음껏 누리며 원하는 삶을 완주하길 바라본다.




https://youtu.be/gU3ubk8u7dA?si=lTjKvGdCzrREAH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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