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인데도 엷은 구름이 해를 가렸다. 뿌옇다. 아침나절 흐린 하늘 작은 구멍에서 새어 나오던 해를 동정한 건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구름에 가려진거지 해가 없어진 건 아님에도 이 우주의 가장 큰 존재감을 뿜는 거대 행성에 동정이라니... 우주 먼지가 할 일은 아니다. 이럴 때 도가 지나치다고 하거나 선을 넘었다고 하는 거겠지. 미세먼지가 있는지 대기질을 확인한다. 미세먼지도 초미세먼지도 좋음이다. 그냥 오후에 비가 예고된 터라 작은 물방울들이 공기 중에 집결 중인 모양이다. 버석거리는 공기 중에 물이 절실히 필요하다. 모여라, 모여라.... 뭉쳐야 비가 된단 말이다.
공기 중에 비 냄새는 나지 않고 여전히 건조해 떨어지는 낙엽들의 바삭거림만 가득하다. 겨울나기를 준비하는 나뭇잎들. 어느샌가 천천히 물들던 잎들 대신 급히 붉어지거나 급히 타버리고 미처 물들지 못하는 푸른 잎들까지 중구난방이다. 온난화 때문이라나?
나무들도 이 정도 날씨의 변덕에 이제는 적응을 할까? 언제나 해야 할 일은 하는 듯이 때가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잎을 떨군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고 감탄하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을까? 조금 일찍 알아차렸다면 자연이 알려주는 지혜를 배워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었을까?
초록이 지고 한여름 더위에 불타듯 말라버린 잎들이 지고 있다. 수고했다는 말을 건네고 싶을 만큼 무더웠던 여름 햇살을 견뎌낸 나뭇잎들, 그리고 숨 죽은 가을볕이 오고 간다. 시간이 함께 오고 가며 떨어지는 낙엽처럼 세월을 쌓는다. 누가 뭐래도 때가 되면 감이 익고 벼는 고개를 숙이며 들판은 빈 공간이 되고 흔적만 남은 가지에 감대신 까마귀가 모습을 드러낸다.
반복되는 한 해가 그렇게 가고 동면의 계절이 목전이다. 마케팅이 긴 겨울을 예고하고 부산을 떠는 사이 또 훌쩍 새해가 오리라. 이런 순환에 적응하는 순간 잔뜩 긴장했던 어깨가 내려간다. 삶을 관조하며 회상하는 시간이 온다. 그 시간에 살아서 까마귀의 아쉬운 목청에 귀를 기울인다.
돌아보고 또 돌아본다. 아이가 5학년쯤 되었을 때 무심코 내뱄었던 한 마디. '과거는 다시 쓰이는 거야' 위인전을 보며 성공신화를 보며 갈 길이 멀다 느꼈었는지 투덜거리듯 한 마디 했었다. 기억나지 않는 일 들 사이 그 말이 각인된 걸 보면 와닿았던 모양이다. 지난 기억이 과거이고 그 과거는 어떤 한 인물이 주어지는 위치에 따라 재편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그 기억이 소환된다. 현재를 있게 만든 시간이며 다가올 미래의 시간에 텃밭이 되어 씨가 뿌려진 곳이 과거니 그 결과는 분명한데도, 때로는 현재가 '명명'하는 그 위치에 따라 과거가 다시 기록됨을 종종 확인하게 된다. 그걸 알아버린 꼬마라니...
시간이 간다.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재편할 필요도 없는 현재를 살고 있으며 많이 달라지지 않을 미래도 대충 넘겨짚으며 오늘을 산다. 덕분에 과한 흥분도 기대 이상의 결과물도 없지만 소소함에 만족스러운 사람도 있으니 그것도 나름 괜찮다.
화려한 양장에 기가 막힌 삽화가 들어가도 전하려는 내용은 똑같다. 소장판이라 부르며 읽지도 않은 채로 장식용으로 꼽혀있는 책, 두꺼운 양장에 뻣뻣한 종이로 출간되어 손에 잡히지 않는 운명이 돼버린다 한들 책의 내용은 여전히 똑같다. 책이 태어난 운명을 생각하면 종이로 된 문고판에 읽기 좋은 재생지에 손에 잘 잡히는 덕분에 재독 삼독을 가져온 책이 오히려 글쓴이의 마음에는 흡족하리라. 근사한데 읽지 않은 책은 무슨 소용이며 여러권인데 장식용이면 무슨 가치일까 싶고... 글로 써져 읽혀야 함이 본질이면 많이 읽힘이 우선일 테니 그 형식이 종이면 어떻고 공중에 뜬 온라인 상이면 어떠하리... 홀로 책과 글에 대해 생각해 보며 마구잡이로 넘나드는 생각들을 글로 옮겨본다. 두서없으니 다시 돌아보고 고치고 해야 하나 이번에는 이대로 올릴까 싶다. 그런 날도 있고 이런 날도 있고...
https://youtu.be/TkGALUCgEw0?si=7KPWNfBStPrYkc0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