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라는 이름은 하늘 길을 따라 먼 곳의 가족들이 선물처럼 오고 가며 기온이 내려간 만큼 마음이 서늘해지는 시간이고 시린 가슴에 온기를 나누며 구겨진 마음을 펴는 시간이기도 하다.
뿔뿔이 흩어져 사는 식구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환한 얼굴로 부둥켜안고 반가움을 전하고 따뜻한 음식을 나눈다. 떨어져 있는 시간만큼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간의 소식을 주고받는다. 좋은 소식이 쏟아진다. 이런 일을 했고 저런 일을 해냈고 이만큼 이뤄냈다.... 성취보다 중요한 건 아물지 않는 상처다.
대화가 무르익으며 칭찬이 줄어들고 가족임을 깨닫는 순간은 그렇게나 많은 좋은 일들을 뒤로하고 번져 나오는 깊은 속내다. 물리적 거리가 쌓아놓은 감정의 골도 시간이 날 때마다 풀어야 할 숙제니 살아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어른들은 나이를 먹어가고 아이들은 금방 자란다. 시간은 빛의 속도로 지나고 누구에게나 같은 시간은 오게 되어있다. 미성숙한 어른이 겪는 감정의 불균형도 다른 시대를 살아온 자녀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의 골도 각각 다른 색깔과 무게로 분명하다.
사과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 하는 사과도 글을 써보라는 제안도 어림없는 일이다. 민망함에 던지는 사과와 가슴에 아로새긴 상처가 닿기엔 너무 먼 거리다. 좁혀지지 않는다. 튕겨져 나간다. 듣고 싶은 이야기와 말하는 사람의 마음이 짝이 맞지 않는다. 할 수 있는 일의 영역과 다가갈 수 없는 그 마음을 이해하는 일로 마무리를 할 수밖에 없다.
연말이라 그런 걸까 아님 떨어져 있던 긴 시간이 만들어 낸 소원함일까 그도 아님 심란한 이 시간 때문일까…. 좁혀지지 않는 마음의 거리가 대화를 끊어 놓는다.
포화 속에 살아남아 생존을 하느라 감정 돌봄이라는 개념은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전쟁세대가 아직 남아있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따위는 한 끼와 바꿔버린 채 자식을 낳고 길렀다. 그 자식이 또 자식을 낳고 치유되지 못한 상처들이 굵게 파인 흔적을 남겼지만 애써 외면하고 우선 살아야 했다. 자다가 폭탄을 맞은 부모를 이해하는 일은 그렇게나 어렵다.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전후 세대는 공포와 기다림에 익숙하다.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이 매번 휘몰아치는 파도를 넘으며 그냥 살아야 했다. 두 조각이 난 나라에서 그 나라는 위험하지 않느냐는 인사말을 예사로 들으며 살았고 지구 어디쯤에 있는지도 모르는 그런 나라에서 용케도 살아왔다.
학창 시절의 대부분을 너와 내가 시간을 달리해서 쫓고 쫓기는 소리 없는 아우성을 집어삼키며 지내왔다. 공동체가 우선인 사회에서 나하나 바로 서는 것을 큰 힘에 보탠다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세월과 부당한 고통에 젖어든 채로 나이가 들었다. 혼란과 혼동 사이 불안과 불평을 삼키며 냉정을 배우며 살아왔다. 지옥을 다녀왔다던 작가의 작품으로 마음을 달랬다. 인간의 본성을 알면서도 인간에 대한 기대도 포기하지 않았다. 책과 책 사이 후기를 남기며 그 사이에 소심한 사자후를 토하며 홀로 자신을 붙들었다. 피 묻은 목소리가 새어 나와도 얼른 덮어 제 자리에 놓았다. 그렇게 시간이 가길 바랐고 그 긴 시간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흔들리는 세상에 바닥이 드러나 갈라진 가난한 인식의 곳간이 드러난다.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감당하며 오늘을 의식한다. 힘겨운 시간이다. 삶이 감옥이라면 빅터 프랭클이 되었을 테고 지옥이라면 단테 알리기에리가 되었겠지... 갈 길이 아직도 멀었나 보다.
가느다란 한 줄기 빛이라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삶은 원래부터 노여운 거니까...
슬픔과 분노 대신 인간에 대한 믿음도 사랑도 다 가져간다. 아파서 뒤틀리는 내장을 안고 두 팔을 벌려 온기를 나눈다. 저절로 손이 모아지는 시간이다. 또다시 인내의 시간이다. 끝없는 사랑과 이해만이 이 시간을 견디고 아이가 살아가야 할 내일을 지탱하는 힘이라 믿으니 말이다.
https://youtu.be/tUMc_-Bcunk?si=yZTVm_Lr1dcmixs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