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없이 많은 NG 중에 OK 한 컷, 그게 우리의 삶
영화 GV에 온 듯 무대 위엔 배우와 감독, 그리고 진행자가 자리하고
객석에 있는 ‘고태경’은 감독 ‘조혜나’를 향해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고태경과 마찬가지로 객석에 앉아 있는 나는 뒤에서 들려오는 그녀의 날카로운 질문, 그리고 그 질문에 당황한 조혜나의 모습만을 본다.
그렇게 영화의 GV와 함께 연극 ‘GV 빌런 고태경’은 시작된다.
매번 날카롭고 난처한 질문들로 갓 데뷔한 영화 감독들을 당황하게 만들어 GV 빌런으로 소문난 ‘고태경’,
그리고 그 ‘고태경’에 대한 다큐를 찍는 감독 ‘조혜나’가 이 연극의 주인공이다.
무대 뒤쪽엔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고, 관객들은 조혜나가 찍고 있는 카메라 속 고태경의 모습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점은 굉장히 새로웠고, 그래서 매우 인상 깊었다.
객석에 앉은 관객들은 무대 위 고태경의 모습과 카메라 속 고태경의 모습을 동시에 마주한다.
"넌 날 불쌍하게 보고 있잖아"
그녀가 말했던 것처럼 카메라 속 고태경의 모습엔 조혜나가 담고자 하는 고태경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영상에 담고자 했던 감독의 시선, 그리고 영상에 담기는 사람의 마음이 눈으로 보였다.
영화와 연극을 같이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 연극 자체를 풍성하게 만드는 연출이었다.
고태경은 누구보다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영화를 했고, 실패를 경험했고, 그렇지만 계속해서 영화를 하고자 한다. 그렇게 정교하고도 치밀한 준비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위한 첫 발걸음을 뗐지만, 실패한다. 때로는 고리타분하고 꽤나 꼬장꼬장한 고태경을 따라다니며 조혜나는 계속해서 그녀를 담는다.
처음에는 자신의 자존심을 건든 고태경에 대한 복수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녀와 함께할수록 조혜나는 영화를 향한 고태경의 진심을 느끼게 된다. 물론 조혜나의 마음 속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패만 하고 있는 고태경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다고 외치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를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은 상처받고 버림받고 부딪히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런 상처를 안고 사는 서로를 보며 동병상련의 마음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 그렇기에 ‘영화’를 온맘다해 사랑한다는 공통점은 두 사람이 서로 의지하고 서로를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사랑하는 영화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것.
남이 보는 내가 때로는 처연할 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것을 계속해서 쫓아가겠다는 것.
고태경과 조혜나, 두 사람이 서로를 보는 시선에서 그 마음이 느껴졌다.
이 작품은 나에게 두 가지 이야기를 전했다.
첫번째, 무언가를 좋아해본 사람에게 ‘그래도 된다’라는 위로
그리고 두번째, 우리의 삶은 영화를 만들기 위한 수많은 NG 컷 속에서 찾아내는 OK의 모음이라는 것.
두번째 이야기는 조혜나와 같이 영화를 꿈꿨던 친구 이승호의 말에서 비롯된다.
고태경의 다큐멘터리를 편집하며 잘려 나간 필름들을 모으며 이승호는 말한다.
편집 과정에서 잘린 조각들을 이어붙이면 우리의 인생이 된다고.
수많은 NG 속에서 우린 OK를 찾아내야 한다고.
한 번 사는 인생, 계속해서 실패만 하다가 끝나는 게 아닌가 두려움에 가득 찬 요즘.
이 연극은 내게 ‘실패해도 된다’, ‘좋아하는 걸 해도 된다’ 말해주었다.
공연이 끝난 뒤, 수많은 조각이 서로 이어져 만들어진 조각보가 보였다.
무대 뒷편을 가득 채우고 있는 조각보.
얼기설기 각자의 자리를 채우며 하나의 면을 만들어냈다.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건 내 인생이었다.
좋은 이야기와 좋은 연출, 그리고 좋은 무대가 어울려 만들어진 정말 좋은 공연이었다.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해 본 사람에게 이 공연을 보여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