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위 데코는 아이들과 함께다. 큰 김 한 장을 내어주면 모양펀치와 미니주방가위를 가지고 새벽 미술반 언니들처럼 집중하며 한참을 재밌게 논다.
깨끗한 약병에 덜어놓은 케첩으로 발그레한볼터치로 마무리해 주면 끝.
요즘 부쩍 엄마와 신경전이 많았던 아이는 귓속말로 “엄마, 사랑해.”라는 말을 남기고 평소보다이른 시간부터 서둘러 학교 갈 준비를 한다. 아침을 깨우는엄마의 매서운 목소리가 잠잠하니 평화롭기 그지없다.
현관문 사이로 울려 퍼지는엄마의 목소리가 우렁차다.
“딸 사랑해, 잘 다녀와.”
쑥스러운 듯 팔을 흔들며 사라지는 아이의 뒷모습에 짠해지는 마음은 왜일까.
운동회며칠전날부터 밤새 뒤척이며비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도한 어린아이가 생각 나서였을까?
그 흔한 도시락도 가족도 하나 없이 홀로큰 운동장에 우두커니 서있었다.친한 친구가족이 내미는따뜻한손길은전혀 반갑지도 고맙지도 않았다. 오히려'제발 나 좀 모른척해주면 안 될까' 생각뿐.
분노와 슬픔을 꾹꾹 누르며 "괜찮아요." 라는 말 한마디를 겨우 내뱉고아이의 심장은 터질듯했다. 도시락 같이 먹자는 그 말이, 가족들끼리 돗자리 펴고 다정하게 모여 앉은 그 모습이 정말이지 소름 끼치게 싫었다.
어디든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지고 싶었다.어린아이에게그 시절 운동장은 어찌나 끝도 없는 미로 같았는지 가도 가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터져 나오는 눈물을 들킬까 봐, 힘이 풀린 다리가 버티지 못하고 풀썩 주저앉을까 봐,그래서 모두들 나를 쳐다볼까 봐 두려움에 떨던작은 아이였다.
도시락을 들고 멀어져 가는 내 아이의 뒷모습에 그 시절의 어린아이가 위로를 받는다. 어쩌면 정성을 다해 건네주는 그 도시락은 내 안의 또 다른아이에게도 함께 전해주고 싶었는지 모른다.
결국 너에게는 사랑을 주고,
나에겐 치유를 준 따뜻한 도시락.
벅찬 가슴을 안고 뒤돌아서는 순간 눈앞에 펼쳐진 눈부신 광경을 마주하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다.
이제 설거지해야지?
설거지는 오후의 나에게 미뤄두고 참치캔 하나를 기분 좋게 딴다. 마요네즈 듬뿍, 청양고추 팍팍 넣어서 김밥 한 줄 맛나게말아먹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