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말문이 트이지 않았지만 시시때때로 옹알이를 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쉴 새 없이 알리던 그쯤이다. 아이는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의도적으로 포개어 푸르르 소리 내기를 반복했다. 발가락까지 쫩쫩거릴정도로 본인의 신체가 그 어떤 장난감보다 흥미로웠던 시절이었으므로 새로운 놀이 하나를 발견했구나 싶었다. 침이 튀다 못해 줄줄 흘러내리는 그 행위는 내복을 흥건하게 적실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 모습을 보던 친정엄마는 "날궂이 하는구나. 내일 비가 오려나보다."라고 말했고 신기하게도 다음날 비가 내렸다.
비가 대차게 쏟아지던 날, 아이의 푸르르 소리는 멈추었지만 유난히 칭얼거리고 보채며 축축 늘어지는 나의 심신에 일조했다. "우리 아기가 비 오니까날궂이 하는구나."라고 친정엄마는 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도대체 날궂이가 뭐길래?
날궂이 : 형태 [+날+궂-이]
날씨가 궂은 때에, 쓸데없는 짓이나 괜한 일을 함. 비, 눈, 태풍 등 날씨의 변화에 민감하여 하루나 이틀 전에 이상한 행동을 하는 일, 또는 그런 일을 영락없이 하는 사람.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만 쓰는 방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전에도 떡하니 나와있어서 적잖게 놀랐다. 흔히 쓰는 말은 아닐 테고, 다른 지역에서도 '날궂이'란 단어를 쓰는 건지 궁금하다.
<피땀눈물의 하루일과 기록>
평소 실수를 거의 하지 않던 이준이의 소변실수로 하루가 시작되었다. 블록을 높이 쌓아 올리는 놀이에 어찌나 집중을 했는지 흥건해진 바닥을 밟고 양말이 젖었다며 울음을 터트린 하민이 때문에 알았다. 다른 아이들과 미술영역에서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달려가 바닥을 재빠르게 닦았다. 넘어진 아이가 없어 다행이다 여기며 우는 하민이의 양말을 벗겨주며 달랬다. 이준이에게 옷 갈아입자고 했더니 "싫어"라며 고개를 획 돌린다. 선생님의 그 어떤 유혹과 다정함의 말들도 들은 채만채인 이준이의 양손은 블록을 꽉 쥔 채 빨개져있었다. "와 이준이가 만든 블록 정말 길다. 선생님이 잠깐 보관해 줄까?" 그제야 슬쩍 고개를 돌려 선생님의 손을 잡는 이준이는 옷 갈아입으러 간 사이 행여 자신이 열심히 만든 블록을 다른 친구에게 뺏길까 노심초사였나 보나. 하, 귀여운 녀석 같으니라고.
화장실에서 이준이의 옷을 갈아입히고 나와보니 조금 전 함께 그림을 그리던 미술책상은 오색찬란한 색으로 물들어가고 있었다. 미끌미끌한 책상의 질감에 새로운 흥미를 느껴버린 걸까? 아~ 하지 말라는 건 격하게 더 하고 싶은 아름다운 네 살이여!
물티슈 한 장을 들고 아이들의 창의적인 예술작품을 벅벅 힘주어 지우는 사이 또 우당탕탕! 놀잇감 하나를 사이에 두고 채원이와 도윤이의 피 튀기는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여 같은 종류의 놀잇감을 충분히 제공하지만 우리는 결코 구분할 수 없는 먼지같이 작은 차이를 용케도 찾아낸다. 분명 어른들 눈에는 똑같이 생긴 파란 공 두 개가 나란히 있지만 아이들 눈에는 천지차이라는 소리다. 같이 가지고 노는 것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하는 것도 싫다고 악을 쓰며 외친다. 아마도 '싫어 병'의 전염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더 빠른 모양이다. 자기중심적 사고에 맞게 건강히 자라고 있구나, 녀석들.
점심시간에는 교실 바닥에 소복이 내린 밥알들이 나의 바지와 양말에 찰싹 달라붙어 각자도생을 하는 줄도 모르고 식습관 지도에 바쁘다. 가끔이지만 집에 오면 머리카락 사이에서도 밥알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스스로 먹는 자기 주도적인 녀석들이 기특하지 않은가.
요즘 감기증상이 지속되던 서우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감기약을 챙겨 왔다. 선생님의 손에 약병이 들린 걸 본 순간부터 한껏 예민해진 서우는 선생님과 일정거리를 유지하기 시작했다. 거참, 눈치도 빠른 녀석. 집에서도 유독 약거부가 심해 그 시간이 전쟁이라는 말을 학부모님께 익히 들은 터라 예상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우가 더 아프지 않도록 먹여야 만한다. 싫다고 발버둥 치는 서우의 몸을 다치지 않게 감싸 안고 약을 먹이려다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밥을 두 그릇이나 먹더니 이러려고 힘을 비축해 둔 건가. "아야아야 아포~" 하는 선생님의 리얼한 액션에 미안한 듯 빼꼼 쳐다보다가 함께 웃음이 터졌다. 이 틈을 놓쳐선 안된다. 서우가 좋아하는 공룡으로 변신해 노래를 부르며 주의를 분산시키고 미션을 실행한다. 비록 서러움의 눈물로 얼룩진 서우의 "미워!"외침을 피해 갈 수는 없었지만. .....
숨 가쁘게 써 내려갔는데 이제 겨우 점심시간이라니 답이 없다. 오후일과는 과감히 생략하기로한다.
'혹시 너희들 단체로 날궂이 하니?'
사실 그렇다 할 통계적 자료도 과학적 근거도 없는 우스갯소리 같은 말이지만, 그저 이를 핑계 삼아 위안 삼는 것뿐이다.
어린 연령의 아이들은 자신의 감정을 여과 없이 투명하게 표출한다. 개인차가 크지만 화를 내거나, 떼쓰기, 투정 부리기 등의 부정적인 표현이 특히 더 많아질 시기이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곧 내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기도 하다.) "싫어!" "안 해." 일 정도이니까.
인정해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도 다른 수많은 감정들처럼 아이들이 자라나면서 새롭게 배우는 감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미성숙한 언어와 행동으로 전달하는 아이의 감정을 좀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으로 인정하고 안아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다. 본인도 이해하기 힘든 소용돌이 같은 감정을 점차 다스릴 수 있게 되고 더 나은 방법으로 표출하도록 돕는 수많은 과정들이 우리를 더욱 성장해게 만든다.
따지고 보면 마흔인 나도
여전히 미성숙하지 않은가.
그저 천둥번개 소리에 무섭다며 쪼르르 달려와 품에 안기는 작고 소중한 아이들이다. 양팔과 양다리를 모두 내어주어도 부족한 찰나의 순간에도 생각한다.
어른답지 않은 '어른'들의 부족함에 대하여. 말로만 '어른'인 어른들의 모자람에 대하여.
어른이라는 위치에서 우리는 너희들로부터 얼마나 더 많은 것들을 지켜줘야 할 것이며, 너희들은 그렇게 보호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하여.
얼마 전 바다생물 동화책을 함께 보다가 무시무시한 상어의 그림을 보고 무섭다는 선생님의 말에 서우는 걱정스레 말했었다. "갠차나~ 내가 이짜나. 떠우가 지켜주게~ 아야찌."
나를 어른다운 어른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건 어쩌면 이런 찰나의 순간인지도 모른다.
비가 쏟아지던 어느 날. 우당탕탕 피땀눈물로 얼룩진 선생님의 하루였지만, 다치거나 크게 아픈 아이 없이 일상을 보낸 것만으로도 무탈하고 감사한 날이다.
"얘들아~ 오늘은 날궂이라 생각할게.
우리 다음 주는 좀 살살하자. 사랑해 나의 천사들!"
그래도 이 장마는 어서 지나가길 바란다.
우리 모두는 아이였다. 늘 모자라고 서투르고 실수하고 그럼에도 거듭 배우고 다시 깨달아가야 하는 우리 모두는 '영원의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