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20) 대학동기들과 제주여행 1 (230128)
28일부터 30일까지는 대학 동기들과 함께 제주여행을 하기로 했다. 매년 여름과 겨울에 모이는 대학동기들인데 고맙게도 이번엔 내가 머무르고 있는 제주로 와주었다. 처음엔 스무 살 때 짱구 눈썹 닮은(...) 친구를 중심으로 짱친이라는 모임이 만들어졌는데 거진 10년 넘도록 꾸준히 모이고 있다. 그때만 하더라도 이렇게 오랜 시간을 모일 거라고 생각 못했는데 어쩌면 자본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오래전부터 우리는 다달이 소액을 곗돈으로 붓는데 이 돈을 쓰기 위해서라도 정기적으로 만나는 편이기 때문이다. 자본이 녹아든 관계이긴 하지만 그 덕분에 관계가 더더욱 탄탄해질 수 있는 효과가 있으니 언제 만나더라도 계산 없이 만날 수 있는 관계이기도 하다.
만나자마자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제주도 흑돼지를 먹어보자는 의견이 나왔다. 숙성도 노형본점인데 찐맛집이라는 말에 다 같이 오픈런을 하기로 했다. 28일은 눈이 많이 내려 날이 좋지도 않은 데다가 한 친구는 출발 전날밤 비행기가 결항되는 사건도 터졌지만 우여곡절 끝에 나보다 더 먼저 숙성도에 도착했다(...). 나는 눈 때문에 버스가 거의 거북이걸음으로 간 사이에 친구들은 이미 테이블 예약까지 끝내놓은 상태였다. 버스 옆자리에 앉아계신 어머님께서 자꾸 어디까지 가냐고 물어주셔서 길을 더 헤맨 느낌은 느낌 탓일까. 심지어 숙성도 별관 건물에서 엄청 큰 눈덩이가 낙하해서 행인 한 명이 크게 다칠 뻔한 것도 목격했다. 정말 눈 오는 제주는 어메이징 하구나. 어쨌든 멀리서 내려온 친구들 덕분에 오픈런해서 편히 흑돼지를 먹을 수 있었다.
그렇게 고기와 국수 흡입을 마치고 나니 카페인 생각이 절실했다. 커피를 끊은 한 친구 빼면 다들 카페인의 노예들이라 바다 구경도 할 수 있는 카페를 열심히 찾아 헤매었다. 그리고 만난 바이레도 에스프레소. 날은 흐렸지만 오히려 눈 내리는 바다가 운치 있었다. 버터바는 약간 달았지만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함께하니 입에 맞았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어디로 갈지 이야기를 나눴다. 겨울이니 동백을 보고 싶다는 의견을 냈는데 한 친구가 동백과 유채꽃을 모두 볼 수 있다는 휴애리자연생활공원을 제시했다. 만장일치로 장소를 옮겼다. 그런데 눈이 점점 많이 와서 가는 길이 설경이었다. 운전자인 경찰 친구만 제외하면 모두가 감탄사를 금치 못했던 길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운전하던 친구는 얼마나 아찔했을까.
휴애리에 도착해서 티켓 결제를 했는데 날이 좋지 않아 30퍼센트 할인을 받았다. 오히려 좋아! 를 외치며 돌아다녔는데 날이 너무 추워서 그런지 동백은 시들했고 유채꽃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끼리 이건 30퍼센트가 아니라 70퍼센트를 할인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도 산책하기엔 좋은 길이었다. 나중에 날이 화장할 때 다시 한번 방문하면 더 좋을 것 같다.
이후 숙소에 들어가서 친구들 체크인을 도와줬고 각자 쉬다가 숙소 근처 횟집에서 방어에 모둠회로 1차를 푸짐하게 먹었다. 이후 2차로 치킨에 감자튀김, 라볶이, 콘치즈까지 먹는 기염을 토했다(...). 아무래도 운전하지 않아도 되니 모두들 더욱 마음 편하게 술자리를 즐겼던 것 같다.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근황을 물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아무래도 30대의 초입에 들어섰다 보니 아직 많이 남은 듯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그리고 각자 만나고 있는 연인의 이야기도 많이 나눴다. 딱 그 나이대에 가장 많이 하는 고민들을 나누다 보니 가장 내 나이에 솔직해질 수 있는 친구들은 바로 이 친구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숙소 체크인을 했음에도 셋톱박스 버튼이 어디 있는지, 숙소에 냉장고가 있는지 물어보는 애들을 보니(...) 확실히 정상은 아닌 것 같지만 철없는 20대부터 지금까지 동기들과 붙어있을 수 있다는 건 나에게도 큰 행운인 듯하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자본으로 끈끈하게 얽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