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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원 Jan 15. 2023

7. 중문색달해수욕장, 중문관광단지, 중문 오후새우시

우당탕탕 무계획 제주여행(7) 생각보다는 아쉬웠던 중문(230115)

새벽 내내 잠을 설쳤다. 한 3시쯤 잠들었을까. 조금 늦은 시간에 커피를 한 잔 마신 것이 화근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뒤척이며 정신 차리니 벌써 11시가 되어있었다. 오늘까지는 흐린 날이 지속된다고 하니 숙소와 가까운 중문만 슬쩍 다녀오기로 했다. 느지막이 아침을 먹고 나갈 채비를 했다.


중문은 서귀포터미널까지 갈 것도 없었다. 그냥 숙소를 나와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보이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면 되었다. 10분도 채 되지 않아 중문을 향하는 버스가 도착했다. 제주 버스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기사님과 승객 모두 인사 안 하시는 분이 거의 안 계시다는 것. 서울에선 인사를 생략하는 기사님들과 승객분들도 꽤 보이는데 여긴 그런 분들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인간적으로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한 20분쯤 달렸을까? 별내린전망대 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온 김에 전망대도 보고 싶었는데 왠지 공사중일 것 같은 비주얼이 보이길래 가뿐히 넘기기로 했다. 대신 지도를 보며 '이쪽으로 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으로 내리막길 모퉁이를 도는 순간, 바다의 모습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는 길모퉁이. 살짝만 보이는 바다의 모습에도 설렌다.


그렇게 5분 정도 걸으니 중문색달해수욕장의 입구가 보였다. 깨지고 바랜 표지판과 안내문은 세월의 흔적을 짐작케 했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의 입구. 오늘의 바다는 왼쪽으로 걸어가면 펼쳐질 예정이었다.


기대감을 품으며 왼쪽을 향해 걸었다. 꽤 경사가 있는 내리막길로 걸어가니 바다의 모습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흐린 날에도 동해바다에서 볼 법한 에메랄드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바다를 만날 수 있었다. 순간 왼쪽으로 내려가서 전복이 먹고 싶었던 건 안비밀.


중문색달해수욕장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그렇지만 강릉이나 속초 같은 강원도 바다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작은 모래사장과 에메랄드빛 바다. 비록 강원도만큼 크진 않지만 작고 귀여운 매력이 충분한 바다였다. 온 김에 모래사장을 한 번 걸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세상에나. 바람이 너무 강해서 모래를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야 했다. 거의 모래바람으로 따귀 맞는 기분이었다. 길지도 않은 거리를 걸으며 '이걸 꼭 걸어야 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일단 걸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조금 걷다 보니 벌써 해수욕장의 끝이었다. 그런데 끝까지 걸어보니 이곳은 바다 색이 꽤나 짙은 색이었다. 법환포구의 바다처럼 현무암 때문에 검푸른 빛을 띤 바다가 파도를 일으키며 부서지고 있었다.

중문색달해수욕장의 끄트머리에서 만났던 검푸른 빛의 바다. 


사실 바다엔 색이 없다. 바다는 그냥 소금물일 뿐이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파도를 일으키는지, 어떤 것과 부딪히는지, 그 주변에 무엇이 있느냐에 따라 에메랄드빛, 검푸른빛, 혹은 또 다른 빛을 내뿜으며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인간도,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저 '나'일뿐이지만 누구와 함께 하느냐, 어디에 있느냐, 무엇을 하고 있느냐에 따라 나의 모습은 가지각색으로 변한다. 어떤 게 '나'인지 고를 필요는 없다. 그 모든 모습이 나를 만든다. 그렇기에 내가 나를 잘 돌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주변 환경을 어떻게 가꾸고 어떤 사람을 가까이 두어야 할지에 대해서도 깊은 고민이 수반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고민이 없다면 건강하고 온전한 나로 존재하기 어려울 테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중문색달해수욕장을 나왔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중문관광단지로 향했다. 그리고 어제 지도로 눈여겨보았던 김밥집으로 향했다. 사실 엄청난 맛집까진 아닌 듯한데 그냥 이름이 귀여워서 냅다 들어가 보았다. 일단 문이 열려있으니 성공!

가게 이름이 너무 귀엽다. 오후새우시라니. 새우시 너무 귀엽다. 그렇지만 불닭마요 게살김밥을 먹은 게 함정.


여기서는 불닭마요 게살김밥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뭐 대단한 이유가 있는 건 아니었다. 혼자 여행을 다니다 보니 외식을 하면 대부분 2인분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 데다가 양이 워낙 많아서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긴 양도 적당하고 내가 좋아하는 매운맛도 있으니 안 올 이유가 없었다. 사장님께서도 무척 친절하셔서 즐겁게 식사할 수 있었다.

내가 주문한 불닭마요 게살김밥. 제주 물가를 감안하면 그럭저럭 괜찮았고 맛도 괜찮았다. 혼밥에 딱이었다.


이렇게 맛있는 식사를 마치고 바로 집으로 향했다. 사실 중문색달해수욕장은 좋았지만 좀 작아서인지 오래 구경할 만한 사이즈는 아니었고 무엇보다 중문관광단지는 그 이름에 걸맞게(...) 너무 인위적으로 조성해 놓은 관광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자연을 만나고 싶어서 여행을 왔는데 자본주의가 잔뜩 깔린 공간을 만나서 조금 당황스러웠달까? 그래도 바다와 밥이 좋았으니 나름대로 만족스러운 하루였다고 생각한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이마트를 들러서 반찬도 새로 샀고 저녁밥도 차려 먹었다. 서울에서도 이렇게만 살면 꽤 괜찮은 자취라이프가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전기밥솥 뽐뿌로 막을 내린 하루. 틈틈이 연구도, 브런치도 쓴 나 칭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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