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정은 인지하지 못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유독
하루가 버겁고 무겁게 느껴지는 날이 있다.
반복되는 일상, 지루한 공부,
한때 설레던 취미조차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와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이면 나는 공부하던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간다. 목적지는 영화관이다.
평소 책 읽는 시간을 사랑하지만,
머리가 무거울 때 또 책을 펴는 건
스스로에게도 너무 가혹한 일인 거 같아.
대신 뇌를 비우고 몰입할 수 있는
영화를 선택한다.
이것은 지친 나를 위한 작은 일탈이다.
영화가 끝나면 밤거리를 산책한다.
20~30분 정도 천천히 걸으며
방금 본 영화 속 인물에 몰입하고,
그 잔상을 곱씹는다.
휘몰아치는 감정들을 온전히
느끼며 걷다 보면 어느새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도 하고,
때론 심각한 표정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이상하게 볼지 모르지만,
이것은 고생한 나에게 주는 가장 순수한 선물이다.
이 선물에는 나만의 한 가지 철저한 규칙이 있다.
과거의 나는 힘들 때마다 가족이나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당장은 위로가 되는 것 같았지만,
반복되는 힘듦을 공유할수록
그 무게는 가벼워지고 농도는 옅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나의 아픔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기 시작했고,
바로 여기서 함정은 시작되었다.
나는 그 소홀함에 서글픔을 느끼며
더 깊은 외로움과 공허함에 빠져들었다.
채우려 할수록 깊어지는 늪처럼,
간절하게 관계에 의지할수록
나와 주변 사람 모두가 지쳐갔다.
그것은 마치 깨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같았고,
결국 옆에 있는 다른 독까지
깨뜨려버리는 결과를 초래했다.
안타깝게도 이것은 나의 뼈아픈 경험담이다.
그래서 나는 이제 혼자만의 시간을 선택한다.
이것만이 외로움의 통증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만끽하게 해 준다.
이 고독의 시간이야말로,
깨진 마음을 다시 붙이고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방법임을 알기 때문이다.
이제 그 방법을 각자만의 방식으로 찾아가는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