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지키기 위해 관계를 내려놓은 날.
한창 혼자만의 시간에
매료되어 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스스로를 단련하기 위해
사적인 만남을 자제하며 고독을 자처했다.
그렇게 일 년의 시간이 흐른 뒤,
오랜만에 학창 시절부터 정말 친하게
지냈던 친구들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시시콜콜한 대화들로
위화감 없이 이야기를 나누던 찰나,
그 자리에 없는 친구
A의 안부가 궁금해 물었으나
다들 대답을 피하는 기색이었다.
서먹한 분위기에서
한 친구가 입을 떼기 시작했다.
A와 말다툼 끝에 이제는 보지 않는 사이라며
A의 험담을 시작했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아무리 생각해도
A의 잘못 같지 않았다.
오히려 A가 돈을 빌려주었음에도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상대의 태도를 견뎌야 하는 상황이었다.
다른 친구들까지 맞장구를 치며
동조하는 모습에
나는 깊은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나중에 따로 만난 다른 친구를 통해 확인한
진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친구 또한 A의 잘못이 아님을 알고 있었지만,
그저 분위기에 휩쓸려 방관했을 뿐이었다.
그 후로도 만남은 이어졌지만,
대화의 중심에는 늘 타인에 대한 평가와
험담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재미와 평안함은 온데간데없고
어느 순간부터 뭔지 모를 거부감만 커졌다.
관심사가 바뀌어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 탓도 있겠지만,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타인의
삶에만 매몰되어 있는
친구들에게 느끼는 실망감이 더 컸다.
결국 나는 결이 달라진 오랜 인연들과
멀어지기로 마음먹었다.
천천히 감염되어 치명적인
상처가 되어버리기 전에,
나는 고통을 무릅쓰고 내 삶의
일부를 도려내는 선택을 했다.
한동안은 큰 공허함에 휩싸였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고 있다.
그때 그 살을 도려내지 못했더라면,
나 또한 그들에게 동조되어
아직까지 길을 헤매며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쩌면 나 자신이 누군가의
안주거리가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오랜 시간 함께한 인연을 단숨에 끊어내는 건
마음 아프고 처절하게 힘든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칼을 들고 눈물을 머금는 심정으로
부정적인 관계를 정리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나 자신을 위해,
그리고 나의 꿈을 위해 당장의
쾌락을 억누르는 고독한 의지다.
인간관계를 완전히 끊고 홀로 세상과
맞서라는 뜻이 아니다.
상대방과의 만남이 나에게 자꾸만
독을 퍼뜨린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설령 홀로 남겨진다고 해도
반드시 도려내야 할 '썩은 살'일 뿐이다.
관계를 잘 끊어내지 못하는 사람들은 흔히
"내가 정이 많아서..."라고 말한다.
이해는 한다. 하지만 그렇게 남겨두어선 안될 일이다.
그 말의 진정한 속뜻은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운 인간의 본능일 뿐이다.
진정한 성장은 사랑하는 나를 위해 기존의
편안함을 과감히 버리는 용기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나는 그 선택의 책임을
기꺼이 내 몫으로 받아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