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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Sep 18. 2023

세상에서 가장 순수한 상습사기범

(2)이기심

9월 xx일, 날씨 : 흐리고 무더움


"나는 법 없이 살 사람입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여기 들어와 있는 것도 억울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있는 저를 저 사람이 방에서 괴롭히는데 정말 죽겠습니다."


아침 출근하자마자 또 나는 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언제나 이렇다. 테이프로 대충 붙여놓은 부서진 안경을 낀 그는 순교자처럼 오늘도 방에서 울부짖었다. 난 지금까지 태어나 이렇게 순수한 사람을 처음 봤다, 뭐든지 몰랐다, 억울하다,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다. 이토록 완전무결한 상습 사기범이 있으려나. 난 이 순수씨(어떤 이름을 그대로 쓸 수 없으니 이 사람은 순수씨로 하겠다)를 보고 단어 하나를 배웠다. 이기주의, 난 이 단어를 지금까지 완전히 알지 못하고 사용하고 있었다. 순수씨의 이기주의는 지금까지 밖에서 썼던 단어의 활용을 내가 잘못하고 있었음을 반성하게 된다. 순수씨는 어떤 잘못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조건 상대편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감정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 시끄럽게 합니까? 소리를 지르지 마세요. 다른 방까지 울려서 시끄럽지 않습니까."

"아 교도관님, 아시다시피(?) 전 세상 살면서 누구에게 피해 한번 주지 않고 산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진짜 운이 얼마나 없는지 억울하게 여기 들어왔는데, 방에서까지 사람들이 괴롭히는데 소리를 안지를 수 있겠습니까. 그렇죠? 교도관님도 저라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3번이나 사기죄로 교도소를 억울하게 들어온 순수씨는 오늘도 순수하구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들었다. 요지는 자기는 가만히 티브이를 보고 있는데 옆에 있는 방 사람이 자기한테 이유 없이 시비를 걸었다는 말이다. 길게 이어지는 그 말을 듣고 있는 찰나 그의 안경이 갑자기 세상을 향해 비상했다. 짝, 순식간에 옆에 앉아 있던 수형자가 달려들어 그의 뺨을 친 것이다. 평소에 조용한 수형자였는데 계속 거짓말로 괴롭히고 교도관 에게까지 없는 말을 지어내자 못 참고 결국 때린 것이다.

"아이고야. 사람 잡네. 이거 봤죠? 내 죽는다. 빨리 이 사람 처리해 주소. 뭐 합니까. 빨리 저 사람 안 잡아가고"

순수씨는 빨갛게 부어오른 자기 볼보다도 타인에 대한 앙갚음을 먼저 생각했다. 나는 좁은 방으로 들어가 수형자를 떼어놓고 보호조치를 했지만 속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정의구현인가? 맞을만한 놈이 맞았다, 사실 저 순수씨 정도면 10년  면벽 스님도 돌아서서 멱살을 잡을 중증 구타유발자다. 그렇다고 요즘 같은 시대, 공무원 신분에 그럴 수는 없으니 흑기사가 등장한 건지 모르겠다. 조치를 안 할 수는 없으니 나는 순수씨를 데리고 팀장과 함께 사무실로 갔다.

"아따 아파 죽겠네. 지금 걷는데 골이 흔들린다. 잠시만 서라."

빨리 데리고 가달라고 소리를 지를 때는 언제고

나오니 몇 걸음 걷고는 아파죽겠다고 난리다. 볼이 부푼 정도인데 누가 보면 덤프트럭에 치인 사람 같이 돌변했다. 복도에서 한참 감색 기능성티가 등에 달라붙을 정도로 땀을 빼며 겨우 사무실로 데리고 갔다. 사동을 계속 비울 수는 없으니 인계를 하고 헐레벌떡 근무자실로 들어갔다. 삐걱거리는 의자에 앉으니 진이 빠져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참 이기적인 사람이라는 사람이 절로 든다. 모두 다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수형자들 중 이런 사람들이 많다. 타인의 아픔은 하찮고 내 아픔에 대해선 이해가 없다.

정해진 양대로 반찬을 받아도 조금 적다 싶으면, 저울을 가지고 오세요, 내가 여기 들어왔지만 사람인데 인권을 이렇게 무시하면 어떡하냐며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심한 경우에는 식판을 던지고 깨기도 일수다.

사람을 죽이고 들어와서 매일 인권을 외치는 사람을 보면 인간은 얼마나 자기중심적일 수 있는지 새삼 깨닫게 되는 날이 많다.

교대를 받고 휴게실에 앉아 있으니 검은색 소파 뒤에 있는 정수기에서 직원들이 이야기하는 게 들렸다.

"나 또 고소당했다."

"왜요? 모르지. 고소가 이유가 있겠나. 자기 요구를 안 들어주니 그냥 괴롭히는 거지."

슬쩍 뒤를 돌아보니 고소당했다고 말하는 직원은  평소 성실하고 밝은 직원인데 얼굴에 그림자가 들이어서 잿빛이다. 악질인 수형자는 진정이나 고소, 고발이 지루한 감옥살이 중에 취미생활이다. 저렇게 고소, 고발을 남발한다. 알지만 당할 수밖에...... 순수씨도 사실 그런 사람 중에 하나고. 입맛이 써서 밥도 먹지 않고 커피만 한잔 마시고 옥상에 올라가 먼산을 바라보고 다시 들어갔다.

사동에 다시 들어와서 한 바퀴 순찰을 도니, 거실에서 말을 걸었다.

"고생 많으십니다."

목소리는 크지는 않았으나 점잖고 따뜻했다. 살짝 창살 안으로 보니 나이 든 수형자가 곧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그 노인은 차분하게 정리한 흰머리에 눈썹까지 하얀데 끝이 살짝 내려가 있어 순한 인상을 준다. 순수씨 방 근처라 오늘 일을 알고 내게 한마디 위로 말을 건네는 것이다.  


처음 노인을 봤을 때가 떠오른다.

보통 교도소에 들어오는 사람은 화나 있거나, 혼란스러워하거나, 자주 들어와서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매달아 놓은 전구처럼 눈은 슬프게 빛났고, 입술은 해가 떨어진 수평선처럼 굳게 다물어져 있었다. 어떻게 보면 크게 실연을 당한 사람같이 슬퍼 보였고, 어찌 보면 오래전부터 계획하던 일을 끝내고 세상에 미련을 버린 사람 같았다. 그리고 특히 다른 것은 분위기, 지금처럼 처진 눈매와 눈썹과 나이가 들었지만 깨끗한 피부는 거친 어떤 사건을 저지르고 들어온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내게 하는 말일까? 자신에게 하는 말일까?

그는 빈 찻잔을 놓듯 한마디를 내뱉었다.

"전 세상에서 가장 이기적인 놈입니다."

뭐지,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무거운 공기가 나를 누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궁금해서 근무자실에서 그의 사건 개요를 검색했다. 밤이라 다른 내용은 입력되어 있지 않고 죄명만 떴다, 살인죄


다음 날이 되어서야 나는 그 노인의 사정을 듣게 되었다. 한평생 교단에 있던 그는 퇴직을 하고 부인과 딸 이렇게 3명이 살았다. 부인은 치매가 걸렸고 딸은 심한 조현병으로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노인은 몸이 불편해 병원에 갔는데 암이란 진단을 받았다. 노인은 생각했다, 그래 하다못해  얼마 생이 남지 않은 부인은 괜찮다지만 딸이 어쩌나. 얼마 전 딸은 자기 방 청소를 했다고 칼을 들고 한바탕 일을 벌였다. 노인은 화나기보다 자신이 없으면 세상을 살아갈 수 없는 그녀를 보며 잠을 이루지 못했다. 혼자 남아 고생만 하다 죽을 딸의 미래가 너무 명확했다. 밤에 노인은 곤히 잠이든 그녀를 보게 되었다. 그래 아무것도 모를 때 내가 마무리를 짓는 게 딸을 위한 일이야.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민했다. 그리고 그녀가 잘 때 노인은 조용히 그녀의 삶을 끝냈다. 그렇게 그는 자신의 딸을 죽이고 교도소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는 스스로 이기적인 사람이라 한다. 그의 죄는 분명하다. 하지만 과연 가장 이기적인 사람일까?


어떤 잘못이 없다는 순수씨와 자기 잘못만 있다는 노인. 오늘 나는 인간의 이기심에 대해 생각하며 말없는 철창만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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