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효롱이 Sep 25. 2023

살인자가 내게 진범을 말했다.

(3) 어찌 하리오

9월 xx날씨 : 무더움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사막에서 길 잃은 조난자가 외치듯 마르고

힘없이 외친다. 이윽고 탕탕, 가는 막대기로 철문을 치는 듯한 소리도 난다.


근무자실에서 난 생각했다.

끝방 수형자가 마른 손으로 철문을 치고 있으리라. 걸어가 보니, 역시나 화난 아이처럼 내게 소리를 질러댔다.

 "할아버지, 조용하세요. 쉿."  나는 달래듯 검지 손가락을 펴고 입에 가져다 대는 시늉을 하자, 성냥개비를 세워놓은 것처럼 몸이 삐쩍 마른 수형자는 퀭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니는 누구고, 마누라 어딨나."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듯 수형자는 내게 연이어 묻는다.

"할아버지, 여기는 교도소고 죄를 지어서 들어온 거예요. 여기서 이렇게 문을 두드리고 소리를 지르시면 안 돼요."

 "무슨 말이고, 나는 죄 없다. 마누라 보고 싶다. 나를 기다리고 있을 거다. 빨리 나가야 돼." 수형자는 애타게 부인을 찾는다, 자기를 찾고 있을 거라고, 빨리 나가야 걱정을 안 한다고 한다. 당연히 재판 확정을 받은 그가 아무리 외쳐도 나갈 수는 없다, 아니 지금 내가 미쳐 문을 열고 그를 내보내줘도 그는 절대 부인을 볼 수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은 부인을 낫으로 살해하고 들어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노인은 치매가 있다. 때로는 멀쩡하게 보이기도 하는데 어느 날은 하루종일 본인이 어디 있는지도 알지 못할 정도다. 부인이 어디서 기다리냐고 물으니 밥을 잘하고 자기에게 얼마나 잘하는 사람인지 아이처럼 오랫동안 이야기 했다. 어쩌면 저 사람에게 치매는 축복이 아닐까. 자신이 저지른 일들을 지우개로 지우듯 도려내고 아름다운 기억만 지니는 것은 개인에게는 잘된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무엇 하나라도 기억하려 한다. 하지만 적당히 나쁜 것은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것만 남기며 사는 것이 행복이란 측면에서는 정답에 가까울 지도 모르겠다. 인간은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지만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어찌어찌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동물일까.


"민준 부장. 나가서 쉬다와. 내가 책임지고 잘 지키고 있을게."

복도 입구에서 군마가 걸어오듯 덩치 좋은 주임이 나를 보며 손을 흔들며 왔다. 큰 몸짓에 유쾌하지만 묵직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라 오늘도 침침한 복도에 어울리지 않게 묘한 신뢰감이 든다.

"네. 주임님 그럼 나갔다 오겠습니다."

인사를 하고 장비를 주고 식당으로 나왔다. 밥을 먹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벌을 받는다는 것을 알지 못해도 벌 받는 의미가 있을까?'

법에서는 벌을 받으려면 책임능력이 있어야 한다 배웠다. 뭐 쉽게 말해서, 완전 미쳐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는 이를 처벌하기 힘들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는 다르다. 일단 미쳤다는 것을 어떻게 정확히 구별할 수 있겠나. 미친놈을 출소시킨다고 오늘 저녁 뉴스에 나온다면, 분명 다음날 아침 전국 모든 교도소에 수형자가 옷을 벗고 미친 척 춤춘다는 뉴스 토픽이 나올 것이다.  사람이 어떤 목적에 진심이 된다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난 안다. 정신이상이면 수형 생활을 편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수형자는 자신의 배를 통조림 열듯 수시로 째기도 하며, 어떤 이는 미친 연기를 위해 주먹만 한 바퀴벌레도 으적으적 씹어 삼켜 버린 경우도 있다. 이 정도 집념이라면 광기와 구분하기는 요원하다는 말이다. 민준은 이런 생각을 하다 습관적으로 먼지를 털듯 머리를 가볍게 흔들고, 집에서 내려온 커피를 한 잔 마셨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이제 슬슬 다시 사동에나 들어가야겠다. 나는 이따금 마주치는 지인들과 인사를 나누며 회색 복도를 걸어갔다.

"야"

2층 근무자실로 가는 계단을 올라가는데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린다. 사건이 터졌나, 무슨 일이지, 이 목소리는 교대 근무를 맡은 김철근 주임님 같은데, 나는 급히 계단을 뛰어올랐다. 좁은 코너를 돌자 복도 제일 끝에  소리를 지른 주임이 보였다. 그 큰 얼굴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고, 손에는 A4용지 한 장을 들고 있었는데 감정을 추스르지 못한 지 정이를 잡고 있는 집게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주임 등 뒤로 수용동 청소부가 서 있었는데, 청소부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꼭 다물고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고 있었다. 거실 위치를 보니 치매 할아버지 방이다.

"주임님 무슨 일 있었습니까?"

주임은 달려오는 나를 보더니 살짝 당황한 모습으로 별일 아니라며 급히 나를 데리고 근무자실로 왔다.

"아.... 아니야.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말고. 나 간다." 철근 주임은 유쾌한 평소 모습과 다르게 말을 얼버무리면서, 손에 든 종이를 한 손으로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나 갈게" 도망치듯 급히 나갔다. 제대로 보지도 않고 던진 종이는 아슬아슬하게 파란색 테두리에 맞아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통 뒤로 떨어졌다. 난 어색한 느낌도 들고, 호기심이 일어 수용동 청소부를 불러 무슨 일 있었는지 물었다. 생각만 해도 웃기는지 그 수형자는 혼자 키득키득 웃다 내게  말해줬다. 이 일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 내가 나간 후 얼마 있지 않았을 즈음,  갑자기 18실 치매 할아버지가 근무자 벨을 급하게 눌러댔다. 때마침 소송서류가 들어와서 정리한다고 바쁜 와 중에 계속 근무자를 불렀다.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수형자인지 아는지라 또 쓸데없는 말을 하겠지 하고 참고 있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지속적으로 불러 끝내 일을 멈추고 18실까지 갔다. 공교롭게 할아버지의 방은 근무자실에서 정반대 끝 편이었고 가로로 긴 건물이라 멀리까지 걸어갔다. 주임은 또 정신 나간 소리를 하겠지 하고 창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런데 웬걸, 너무나 평소와 다른 모습이었다. 머리도 정리를 하고 평소 안 입던 관복을 깔끔하게 입고 무릎을 꿇고 있었단다. 차분하게 바라보는 그를 보며 주임은 평소 할아버지 같지 않음을 느끼며 조심스레 말했다.

"무슨 일 있으세요?"

평소에는 근무자가 다가가면 소리부터 지르던  할아버지는 점잖은 목소리로 조용히 말했단다.

"근무자님" 그가 말했다.

"왜 그러시죠?" 뭔가 알 수 없는 분위기에 주임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한참 맑은 눈빛으로 근무자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끝내 결심했다는 듯 말했다.

"제가 부인을 살해한 진범을 알고 있습니다."

주임은 놀랐다. 제정신이 돌아왔구나, 안 그래도 말이 왔다 갔다 해서 조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들었는데 한 건 올리는 건가. 떨리는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주임님 목소리도 같이 떨렸다. "누구죠?" 물어보자 할아버지는 고개를 천천히 흔들면서 차분히 말했다. "종이와 펜을 주시오." 주임은 혹시나 정신이 다시 나갈까 봐 급히 근무자실로 뛰어갔다. 선풍기도 없는 복도를 달리니 그의 등 뒤로 땀이 가득 흘러내렸다. 헐레벌떡 종이와 펜을 챙기고 다시 뛰어왔다.

"여기요"  재빨리 그의 손에 종이와 펜을 줬다. 갑자기 움직여서인지 기대 때문인지 손바닥도 젖어 있었다. 김철근 주임께 펜을 받은 할아버지는 서예의 대가처럼 무릎을 꿇은 채로  천천히, 또박또박 진범의 이름을 적었다.

김 철 근

"야"  철근 주임은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내가 들었던 사자후는 이때 터진 것이리라.

이렇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자존감이 높은 주임이 농락당했다는 생각에 괜히 부끄러웠나 보다.

나는 씁쓸히 웃으며 떨어진 종이를 휴지통에 넣으려고 들었다. 구겨진 틈 사이로 수려하게 적힌 김철근이라고 글씨가 보였다.

안 그래도 노령인구가 자꾸 늘어난다고 한다.

오늘 일은 사실 교도소 안에서 일어나는 특이한 사건이 아닐 수 있다. 그저 미래 사회 문제가 작은 거실에서 시작된 것뿐일 수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