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바다를 보며 넓어져 가던 마음이 녹색 풀숲을 보자 더욱 짙어진 향기를 내는 것만 같았다. 난 통이 넓은 검은 바지를 입고 드넓은 초원을 바라봤다.
"바다만 좋다고 생각했는데 숲을 보니 모두 좋네요."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튀어나왔다. 내 뒤편에서 함께 나온 회원 12명 중 한 명이 말했다.
"효롱님이 늙어서 그래요. 나이가 들면 숲을 좋아하게 되는 거니까요."
나는 웃었다. 그 말도 사실이겠지만 전부는 아니었다. 부산도 좋은 공원이 많다. 동백숲도 좋고 수영강 주변에도 싱그럽게 웃음을 머금은 초록 나무들이 많이 있다. 하지만 나는 뭔가 다른 느낌에 감흥을 느끼고 있었다. 무슨 차이일까?, 생각하다 보니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도심의 공원은 도시의 일부일 것 같지만, 태화강변은 자연의 일부인 것 같다.' 같은 모습일지라도 이 작은 차이가 크게 울림을 준다. 뭐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그만큼 기분이 좋았다는 것이니까.
하지만 비극적인 영화처럼 이어지는 사건이 있었다. 울산에서 기분 좋게 독서모임을 하고 부산으로 돌아왔다. 평소 같으면 여기에서 마칠 일이건만 강변의 긴 여운은 잔잔히 이어져 맥주 한잔 하기로 했다. 그리고 최근 사람들이 좋아하는 해운대 바다에 있는 호프집으로 갔다. 키오스크로 주문하는 원형 테이블에서 서로의 얘기를 웃음으로 버무리며 한참을 즐겼다. 마시고 웃고 떠들고 그 즐거움은 하나의 큰 막이 되어 우리를 감싸고 있었다. 시간은 밤바다처럼 깊어져 우리는 마칠 시간이 되었다.
반장인 분홍님이 대표로 계산을 하고 나오며 말했다. "삼십만 원 나왔네요."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나왔다.
"태화강까지 갔다 온 가격보다 많이 나왔네요."
별 의도는 없었다. 술을 못 마시는 나라서 느낌을 몰라서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내 말을 듣던 분홍은 유심히 영수증을 보더니 이상하다, 한마디 말하고 들어갔다.
주문이 이상하다고 이야기하니 카운터에서는 정말 당황하지 않은 침착한 모습으로 말한다.
"확인할게요." 그는 기계를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살폈다.
"죄송합니다. 앞 테이블 주문이 합쳐서 계산되었네요. 안주 두 개는 서비스로 빼드릴게요."
순식간에 30만 원에서 가격이 16만 원이 되었다. 서비스를 받아 다행일까.
세상을 믿고 싶지만 직업 특성상 단체로 식당을 많이 간 나는 이런 일이 잦은 것을 알고 있다. 애매한 부분이다. 모르면 넘어가고 걸리면 이렇게 퉁 쳐버리면 된다. 과연 사장님들이 이것을 잘 모를까. 특히 정신없이 주문하는 단체 손님이 이렇게 일일이 따지지 않는 것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안다. 난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돈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대한 속상함이다. 이렇게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구나. 그래서 나는 말없는 숲이 좋았던 것일까.
아침이 되어 경찰인 형에게 전화를 해서 이 일에 대해 말했다.
"효롱아. 단체로 갈 때 이런 일 많다. 얼마 전에는 처음 가는 식당에 단체로 경찰 직원 회식을 갔는데 직원이 영수증을 가지고 나오는 길에 우리가 경찰인 것을 알고, 갑자기 다시 돌아서더니 영수증이 잘못 계산된 것 같다고 알아서 돌아가더라." 자진반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