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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Oct 04. 2023

현직 교도관이 말하는 사형

정의



[단독] 연쇄살인범들, 사형장 있는 XX구치소에 다 모였다


아침, 출근시간. 흔히 사람들은 출근이 감옥 가는 기분이라 한다. 나는 진짜 감옥으로 출근하니 딱히 할 말이 없다. 대게 교정시설은 혐오시설이라 외곽에 있다 보니 가는 길이 멀다. 생각 없이 고개를 떨구고 휴대폰만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기사가 눈에 밟혔다. 이건 뭐지, 사형장이라는 단어. 굵은 글씨로 [단독]이라고 되어있다. 연쇄살인범들 사형장 있는 XX구치소에 다 모였다,라는 제목으로 메인 기사들 중에서도 제법 잘 보이는 곳에 위치되어있다. 나 같은 말단 공무원이 무엇을 알겠나, 사무실에서 근무한다면 귀동냥이라고 하겠다만 현장에서 수형자만 바라보니 본인도 뉴스를 보고 이제야 알아차릴 정도다. 사실 혹시 알고 있었다면 이런 문제를 공개적으로 말할 수 없다. 진짜 아는 것이 없으니 오히려 글을 적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민준은 현직이라는 이야기로 말한다는 것이 전체의 의견처럼 보일까 봐 걱정되었다. 그래서 한 번 더 말한다. 이건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과 관찰일 뿐인 글이라고. (이게 영상이라면 두둥, 하는 효과음이라도 넣어 강조하고 싶다.)


교도관은 나쁜 사람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렇게 그려진다. 우리가 수사를 하는 것도 아니고 판결이나 조사를 하는 일이 아니다 보니 소설에서는 허구한 날 교도관 역할은 돈이나 받아먹고, 수형자를 때리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시청자들이야 박진감 넘치는 전개를 원한다


그러니 억울한 수형자를 중심으로 그려지는 시나리오가 대부분이고. 그걸 탓하는 건 아니다.


사회에서 흔히 그려지길 소방관은 영웅이요, 검사는 꿈이고, 경찰은 슈퍼히어로다.

교도관은???

잘해줘도 악역 엑스트라 1 정도랄까.


그렇다, 교도관은 주인공이 아니다. 나는 배트맨이 아니라 알프레드다. 감독은 볕이 들지 않는 집을 묵묵히 지키고 있는 알프레드에게 굳이 필름을 낭비하며 하이라이트를 비추지 않는다. 당연한 일. 그래서 내가 느끼는 아쉬움은 사회의 조연이라는 사실이 아니다. 대사 없는 단역이다 보니 자기 스토리를 풀지 못하고 이미지가 왜곡되기만 한다. 누가 교도소의 답답한 이야기나 듣고 있겠나. 그래서 오히려 난 한번쯤은 꿋꿋하게 진솔한 어느 교도소의 이야기를 적고 싶었다. 과일도 원산지에서 먹으면 왠지 맛나듯 기왕이면 신선한 맛을 내는 글이면 좋겠지만 그보다 앞서 우리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공감하는 사람이 몇이라도 있다면 그 또한 안에서 하지 못하는 교정의 결실이 아닐까.


민준은 생각을 잊을세라 급하게 스마트폰에 이런 글을 적다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너무 흥분했나, 그래도 조금 일찍 다니는 습관 때문에 출근이 늦을 것 같지 않다. 다행이다.


안 그래도 출근하니 모두들 이 기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민준 부장 기사 봤어? 진짠가?" 김주임이 물어봐서 나는 답했다.

"저희야 모르죠. 위에서 하는 일인데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는 역시라는 표정으로 믹스커피를 후루룩 마셨다.


띵동 띵

빨간색 불이 울렸다. 비상벨이다.

"아우, 커피 한잔을 못 마셔요"

김주임은 커피를 한입 마시던 커피를 근처 책상 위에 아무렇게나 올려두고 비상키를 챙겨 뛰어 올라갔다. 이렇게 식어 버린 커피만 올해 들어 몇 잔 째인 지.......


우다다. 고양이가 뛰듯 나는 껑충껑충 계단을 올라갔다. 매일 누르는 방이라 누군지도 알고 시나리오도 안다. 그래도 뛰어야 한다. 알고도 속아야 하고, 알아도 당해야 한다. 가지 않으면 근무자가 긴급 벨을 눌렀는데 출동하지 않았다고 인권위에 진정하겠지.


"장한국 씨, 왜 불렀어요?"

내가 물어보자 대뜸 그는 화부터 낸다.

"지금 니 그게 할 소리가. 필요한 긴급한 일이 있으니 눌렀지. 왜- 불렀어요? 국가의 세금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 태도가 그게 뭐고."


사형수 장한국(가명)은 오늘도 트집이다.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얼마 전 장한국에게 고소, 고발, 진정에 시달리다 정신질환으로 질병 휴직을 한 직원이 떠올랐다. 나도 듣다 보면 그 길을 따라갈 것만 같소.

"반말하지 마시고. 그러니까 비상벨을 왜 눌렀어요?"

나는 애써 참으며 물었다.

"반찬이 이게 뭐고. 골뱅이무침 양이 이만큼인 게 말이 되나. 이건 인권침해 아니가" 장한수는 퍼놓은 식판을 툭툭 치며 말했다.

"한국씨 골뱅이무침은 그게 정량이에요." 골뱅이무침 특성상 한 상 차려 나오는 것은 힘들고 정해진 양대로 급식을 하는 거라고 이야기해 줬다. 답변을 듣고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줘도 막무가내다. 장한수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 기어코 검을 뽑아들듯 식판을 머리 위로 들더니 바닥을 향해 내동댕이쳤다. 남아있던 국과 반찬들이 흩어졌고, 김치 몇 점이 창살 사이로 빠져나왔다.


옆에 있던 김주임이 무전기(TRS)를 날린다. "18실 1004번 장한국 소란을 피우고 있습니다."

나는 말했다. "한국씨 이러면 조사수용입니다."

장한수는 김치 국물이 튀어 피 묻은 듯 빨개진 옷을 입은 채 입꼬리 한쪽을 올리며 말했다.

"어차피 난 사형수인데 뭐가 겁나나. 끝까지 해볼까. 조사수용? 갔다 오면 되지. 그게 뭐라고. 며칠 쉬다 올게"

우리가 할 수 있는 규정은 있다. 단지 징벌 경험이 많은 그가 대수롭게 생각할 뿐이지. 장한수는 일본 경찰에 붙잡힌 독립투사가 된 것처럼 당당히 걸어 나갔다.


한바탕 일을 치르고 김주임과 둘이 복도에 남았다.

"사람 죽이고 나갔다가 2달 만에 또 죽이고 들어온 놈은 역시 정신상태부터 남다르네." 김주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주임님 한국이 저 사람이 교화가 되겠습니까?" 내가 묻자 그가 답했다.

"알면서 왜 그래. 딱 봐도 학창 시절에는 선생님 말 안 들어, 재판받고 판사 말도 안 들어, 집에서는 부모 말도 안 들었을 사람인데 우리말을 듣겠어."

"그렇죠." 대답을 하고 나니 아침 뉴스가 생각났다.

"주임님은 옛날에 사형을 실제로 할 때 근무하셨죠?"

"그렇지. 너무 예전이긴 하지만."

"어땠어요? 확실히 효과가 있었나요?"


김주임은 오른손으로 까칠한 아래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그렇긴 했지. 당시에 지하에 집행장이 있었는데, 사형이 있는 전날에 청소를 했거든. 그러니까 사형수들이 지하에 근무자들이 청소하러 가는지 엄청 살폈지. 그냥 정리라도 하러 가는 날에는 지들끼리 새색시처럼 조용했다."


그렇구나. 사형이야 마지막이 1997년이니 근무경험이 오랜 교도관이 아니고서야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근무자님. 한국이 때문에 고생 많으십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


김주임과 대화를 나누며 걸어 나가는데 접견을 간다고 나온 한 수형자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오랜만에 접견이네요, 요즘 잘 지내요?"

"죄짓고 들어온 놈이 너무 잘 지내면 되겠습니까."


주임의 인사에 그는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너스레를 떨었다. "먼저 나가겠습니다." 그는 고개를 숙여 공손히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쟤도 사형수인데 한국이랑 180도 다르지." 김주임은 수형자의 등을 보며 내게 말했다.

"그렇네요."

"저런 애들은 어차피 못 나갈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냥 정을 붙여버리거든. 교도소를 자기 집이라고 생각해. 그러니 오히려 생활을 잘하지."


팀사무실로 돌아오니, 계장들도 시찰을 쓰며 인상을 찌푸렸다.

"장한국. 명령 떨어지면 내가 지원할 거다."

무슨 명령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계장님. 교회 다니지 않습니까."

"민준 씨, 솔직히 저런 놈이 나중에 가석방이라도 돼서, 나가면 어찌할 것 같아요?

내 장담하는데 또 사람 죽입니다. 다시 들어오기 전에 얼마나 일반 시민을 괴롭히겠어요?

수형자한테 일 년에 세금이 3100만 원이 들어요. 그런데 쟤가 식판 깨고, 반찬 던지고 아프다고 약타먹고, 뭐예요. 얼마나 돈을 쟤는 더 쓰겠어요. 안에서는 저러고 나가면 문제인데. 내가 앞장서서 애국합니다. 애국."

옆에서 주임도 거들었다.

"맞습니다. 진짜 장한국 v로그라도 한번 찍고 싶다니까요. 판사님도 보시고 국회의원도 봐야 돼요. 인권인권 하는데 내 백퍼 그 사람도 한 달만 같이 일해보면 우리 편일 걸요. 이런 거 찍어서 국민도 알 권리가 있습니다."


나는 그 둘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사형수라고 다 수형생활을 못하는 것은 아니다. 반성하는 사람도 있고 오히려 규정을 잘 따르는 이들도 있다. 이런 수형자에겐 대게 교도관들도 더 잘 대해준다.

 장한국 같은 사형수는 어떠한가? 기사를 통해 간접적으로 아는 것과 직접 체험하는 것은 다르다. 솔직히 직접 본다면 상상이상.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장한국은 문에 부딪혀 다쳤다고 거짓말하며 외부진료를 보내달라 한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은 불가능하다, 매일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니까.


그가 내일은 변할까?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라 오히려 너무 뻔한 답을 내릴 것만 같다. (분명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지만......)


답은 없다.

알지만 지켜야 하는 신념이란 것도 있고,

몰라서 믿어야 하는 인간의 유한성도 있다.

날이 추워지고 바람에 낙엽도 흔들린다.

내게는 정의란 것도 이처럼 명확히 보이지 않고 흔들리고 있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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