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어든 뱃살만큼 체력은 올라간 덕분인지 산책을 하고 싶어졌다. 세상은 내 인식밖으로 부지런히 걸어 다녔는지 어느새 날이 덥다.
집에서 찬장에 있는 텀블러를 꺼내 커피를 내렸다. 냉장고에서 동그란 얼음도 가득 채웠다. 마음이 충만해진다. 좋은 날이다. 삶이란 행복을 향해 나가는 여행이다. 여행이란 좋은 순간이 많지만 그것을 준비하는 의 어려움도 같이 동반된다. 그렇기에 오늘처럼 마뜩한 날도 흔하지 않고 그렇기에 감사한 날이다. 난 오래간만에 출항하는 오래된 배처럼 힘차게 해운대 해변가를 지나서 청사포를 다녀왔다. 점심시간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잘 빨린 가벼운 반팔로 갈아입었다. 지금부터 낮잠을 한숨 자고 책을 읽어야지. 더없이 완벽한 계획이다. 콧노래가 절로 난다. 침대에 누워서 머리맡에 잔잔한 노래를 틀었다.
순간 쿵 쿵 쿵, 소리가 난다. 뭐지, 어디서 공사를 하는 건가. 그러기에는 너무 규칙적이긴 한데. 흡사 일정한 간격으로 고무망치로 내려치는 것 같다. 조금 있으면 괜찮겠지란 생각에 기다렸다. 30분이 넘어섰다. 똑같은 강도로 오랫동안 내려치는 소리. 이건 사람이 내는 게 아니다. 원체 부끄럼도 많고 나서기를 좋아하는 성향은 아닌지라 참을 수 없는 소리를 더 참으려 노력했다.
쿵 쿵 쿵, 1시간 30분이 지났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파트 문을 열고 위층과 아래층을 가봤다. 복도 전체가 울리고 있어 집을 특정할 수 없었다.
2시간 가까이 지났다. 고민고민하다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죄송한데 이상한 층간소음이 계속 들립니다."
나는 작은 목소리로 말하자, 약간 당황하는 목소리로 관리실에서 답했다.
"그게... 옆라인에서 나는 소린데 20X호라예. 밑에 어린이집 있는데, 몇 번 찾아갔는데 말 입니다..."
옆동이라고? 이렇게 우리 동 전체가 울리는데?
여러 번 이야기해도 계속 이런 소음을 낸다고?
내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말이 나왔다. 나는 우물쭈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더 캐묻지 못하고 전화를 끊고 1층으로 내려갔다. 밖으로 나와 옆동으로 걸어가기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쿵 쿵 쿵, 하는 굉음이 들려왔다. 우리 동만 오르락내리락했으니 진원지를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옆동은 밖까지 그곳에서 울리는 소리가 무슨 휴대폰 판매점처럼 퍼지고 있었다. 궁금한 마음에 그곳으로 걸어가 봤다. 공사장처럼 소리는 벽면들을 부딪치며 귀를 때리고 있었다. 나는 너무나 명확히 울리는 그 집 앞에서 섰다. 이 정도 큰 소리로 내는 소리는 무슨 기계를 설치한 것이 확실해 보였다. 초인종을 누르기가 무서워졌다. 사실 이 정도면 뭔가 내가 알 수 없는 표정의 사람과 반응이 나올 것이라는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내려오자 1층에 있는 관리실 아저씨께서 안에 앉아있기도 힘든지 나와있었다.
나는 놀란 표정으로 소리가 나는 그 집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아저씨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씀하셨다.
"이거 내가 몇 번이나 올라가서 초인종 눌렀는데, 나가세요! 하고 소리 지르면서 문도 안 열어줘. 1층 어린이집에 보복이라는데, 나오질 않으니 말을 할 수가 있나 싶네."
역시나. 내가 어차피 초인종을 눌러도 새된 소리만 들었겠지. 그 집도 사정은 있겠지. 그래도 자신이 괴로우면 다 같이 죽어보자, 이런 대응에 한숨이 나온다. 아버지가 살아생전 뛰어다니는 아이들의 층간소음에 심했다. 올라가서 부탁을 해볼까 하던 내게 말씀하셨다.
"효롱아. 나는 괜찮다. 아이들이 뛰어다녀 사람 사는 느낌이 나 더 좋아. 애기들이 건강해 보여서 다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