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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롱이 Dec 11. 2022

제주도 첫끼는 무조건 이걸 드셔야 합니다

코소롱호면서 쪼지롱허고 잘도 맛있수다

여러분~ 들어는 보셨나요


그 이름 접짝뼈국


내가 제주도 상륙 첫 끼로, 이 음식을 선택한 이유는 이 접짝뼈국이 제주도의 전통음식이기도 하지만, 이 식당이 아직 관광객이 잘 모르는 현지인 맛집이라 서다.(지금은 이때보다 많이 알려진 듯 하지만 아직도 타 맛집에 비해 덜 알려진 편이다)


나도 앞으로 근무할 병원 직원이 자기 비밀을 내주듯, 은밀히 알려줘서 알게 되었다. 현지인 맛집이라니!


급히 차를 세우고 가게를 찾아갔다.

떨어진 곳에 차를 대고, 한산한 골목길을 걸어간다.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디지?

다시 또 도로변으로 가보면 화려하고 큰 광고판도 없이 하얀색 글씨로 가게. 이름이 적혀있다. 찾았다.


역시는 역시나다

식당은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맛집의 기운이 흘러나왔다.

건물 밖을, 군데군데 세월을 짐작할 수 있는 벽돌들이 끼워져 있고, 빛바랜 분홍색 페인트칠을 한 무심한 외관.


그런 거 있지 않나.

우리는 너를 찾지 않는다. 찾는 것은 너다.

우리는 자신 있다. 아는 사람만 와라. 이 느낌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메뉴판이 다시 확인시키듯 말을 하는 것 같다

-여기 맛집 맞아요


자그마치 단일 메뉴

소문난 맛집만 실현 가능하다는 그 간소함이란!


난 짧은 단어에서 오는 큰 감동을 느낀다


운이 좋았나. 들어가니 딱 자리 하나가 빠졌다.

난 소라가 껍질에 들어가듯 그 사이로 쏙 들어가 앉으니, 식당 사장님께서 와서 물었다.


"혼저 옵서."(어서 오세요)

난 눈치 빠른 사람처럼 흡족해하며 시원하게 대답했다. 이 정도 센스는 있다구

"네."

사장님인듯한 아저씨는 한번 나를 힐끗 보더니 다시 바삐 사람들에게 고기를 퍼주고 계셨다. 잠시 기다리니 주방으로 가셔서 행주와 물을 가지고 오셔서 내 자리를 한번 더 닦으며 말씀하셨다.


"머시킬꺼 마씸?"(무엇을 시키겠습니까)

"네? 아 접짝뼈국 하나만 주세요."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는 시간은 언제나 가슴이 몰랑몰랑해진다. 대기가 너무 길어져 애태울 때도 있지만, 곧 나올 음식을 상상하며 식당의 온기를 느끼는 시간은 소중하다.

이 식당에서도 음식도 나오기도 전에  제주도 사투리로 주문을 받는 사장님을 통해, 진정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내가 제주도에 왔긴 왔구나


말에서 오는 독특한 언양과 이질감은 불편하기보다는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는 감성을.자아낸다

그리 오래 기다리지 않아 음식이 나온다.

기본 찬으로 상추,고추,콩나물,무생채,김치,갈치속 젓을 주셨다.



갈치속젖은 많은 갈치 내장을 소금에 절여서 숙성시킨 젓갈인데 제주도에서 식당 가면 으레 김치처럼 많이 나와 찾아보니, 이 갈치란 놈의 대표 주산지가 제주도란다


갈치는 또 바다 밑바닥에 사는 저서성 어류인 데다가 해류의 온도를 따라 돌아다녀 제주도 연안에서는 그물도 쓰지 않고 채낚이로 낚아 올려 신선하니 맛이 좋다고 하니 왜 제주도에 갈치 식당도 많고 고깃집에서 갈치속젖을 많이 주는지 알만하다.


젓갈에 정신이 팔린 사이에 드디어 오늘의 주인공이 등장하셨다.


접짝뼈국


접짝뼈란 것은 앞다리뼈와 갈비뼈 사이의 뼈를 말하며, 이 뼈를 푹 고아 사골국물을 낸 뒤 메밀가루를 뿌린 국물 요리가 접짝뼈국이다.


그릇을 빤히 들여다보니 색깔은 우윳빛처럼 진한 뽀얀 국물이었고, 우리가 흔히 먹었던 곰탕과 유사한데 외관상으로는 크게 구별이 가지 않았다.

급히 그 차이를 알아보려고 한입 먹으려 하는데, 대접을 한 그릇 더 놓으신다.


잠깐 잠깐만요. 사장님 난 분명 일 인분 시켰는데 잘못 주신가 봐요. 급한 마음에 사장님께 말씀드리려는데, 내 마음을 아셨는지 하나는 서비스라고  말씀하신다. 혹시, 이쁜 나만? 이란 발칙한 생각으로 옆 테이블들을 곁눈질해보니 역시나 다들 2그릇씩 놓여있다.

그래도 이런 혜자스런 1+1 행사가 있나.

이것이 제주도의 인심인가 싶다, 밥 한 그릇을 먹어도 든든히 먹고 가시라는 마음이 깃든 그릇이다.

제주도에 오자마자 도심의 각박함을 달래주는 따끈한 인심에 내 마음도 이미 뜨끈뜨끈해지고 있다


그래도 진짜 죄송합니다. 저는 양으로 승부하는 사람이 아니라서요. 맛에는 냉정합니다.

국물부터 먹어보겠습니다.

나는 따뜻한 물수건에 손을 닦고, 숟가락이 넘치도록 국물을 한가득 퍼서 입에 덥석 물었다.


아. 이건

직 인 다
('끝내주다'의 경상도 방언)


그래도 제주도니까

어설프게 공부한 제주도 사투리로 맛을 표현하자


코소롱호면서 쪼지롱허고 잘도 맛있수다
(고소하면서도 짭조름하면서 엄청 맛있다)



우리 독서모임 회원이신 유쾌한 반초 님이 드셨으면 분명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 같다.


"분홍님 여기 진짜 도저히 안 되겠어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잡으려고 이렇게 맛있는 건가요? 여긴 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아요. 제가 신고할까요? 너무 맛있어서 사람 잡는 곳이 있다고? 말씀만 하세요"


나는 국물을 한 모금 더 맛보니 떠오른 곳이 있다.


해운대 해리단길에 있눈 <나*하마*게츠> 라멘집이다.

라멘을 좋아하는 내가 해운대에서 최고로 평했던 곳이다. 처음 갔을 때 목조차 컬컬해질 정도로 깊은 감칠맛은 첫 입에 나를 사로잡았지만 자리가 없을 정도로 인기가 더 많아지고 너무 짜거나 진해서 먹기 불편했다는 소수의 리뷰가 달리자 맛은 변했다. 좀 더 대중적인 맛으로.

그게 식당에게는 바른 선택인지, 많은 사람들은 더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난 아쉬웠다. 내가 느꼈던 처음 강렬함은 사라지고 여느 곳에서 느낄 수 있는 곳이 된 것 같다.

괜히 소중한 장소를 하나 잃은 것 같은 느낌

제주도에 와서야 잃어버린 그 진한 감칠맛을 느끼니 감회가 새롭다


국물을 먹었으니 이번에는 고기를 먹어볼까나

국반 고기반의 대접에서 어렵지 않게 고기를 펐다.


큰 깍두기 처럼 잘라놓은 고기가 보기 좋다. 고기라면 자잘한 것보다 이렇게 듬직한 식감을 줄 수 있는 게 좋지 아니한가?

외관은 이미 합격

이제 실속을 보기 위해 씹었다.

팡팡팡 파라바라 팡팡팡

요즘 핫하다는 블랙핑크 멤버들이 단체로 뛰어나와

입 안의 고기들을 세차게 손바닥으로 치고, 육즙들이 불꽃처럼 팡팡팡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꿈처럼, 함박눈처럼 사라진다.

육즙을 내어주고 스르르 입속에서 사라진 내 고기들

이 녹진함과 부드러움이라니.....


난 결국 이 커다란 대접 2그릇을 다 먹고야 자리를 떠나 숙소로 들어왔다.


조용한 밤

아직도 따뜻한 배를 만져가며 방 한편에 놓인 캐리어에서 책을 찾아 다시 읽어본다


돌이켜보면 그런 음식 곁엔 특정한 사람과 특정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음식을 맛보며 과거를 떠올린다는 건, 그 음식 자체가 그리운 게 아니라 함께 먹었던 사람과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건지도 모른다. 그리운 맛은, 그리운 기억을 호출呼出한다.
- < 언어의 온도, 이기주 지음 > 중에서


난 천으로 만든 필통에서 분홍색 포스트잇과 연필을 꺼냈다.

그리고 이렇게 적어 책 첫 장에 붙여놓았다


-어쩌면 난 음식이 그리워 기억을 호출할 것만 같다  From.1월, 춥지만 따뜻한 겨울 어느 날




다음 편은 이제 드디어 집을 구하러 다닙니다 ㅠ

제주도 집 구할 시 팁을 알려드릴게요


에피소드 : 분홍(제주도 편)

1편 : 갑자기 여의사가 제주도로 간 까닭은?

2편 : 태연은 제주도 푸른 밤을 부르며 아파했을까

3편 : 제주도 첫끼는 무조건 이걸 드셔야 합니다(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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