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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의 대형 뮤지엄에 가면 어김없이 그리스·로마관이 있다. 그들의 문화적 뿌리가 그리스·로마시대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시관을 가득 채운 풍부한 유물 중엔 와인과 관련한 것들이 많아 늘 반가운(!) 마음이 들곤 한다.
와인의 역사는 그리스·로마시대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중요한 역할을 한 건 로마다. 로마가 지금의 서유럽·남유럽·동유럽은 물론 서아시아와 북부 아프리카(*줄리어스 시저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와 밀당하고 사귀고 그러던 시대다)까지 영토를 넓히면서 원래 이들 나라에 있던 와인 재배 기술을 배우고 가져온 거다. 무엇보다 이를 토대로 와인을 더욱 발전시켜 아예 자기네 문화로 만들어버려 로마인의 주식이 ‘빵과 와인’이 됐다.
아무리 먹을 게 많아도 우리 한국사람에게 주식인 밥과 김치·국이 중요하듯, 로마의 문화적 유산을 물려받은 서양인들에게 와인은 아무리 식문화가 다양해져도 중요하고 일상인 음식이란 얘기다. 나 같은 와인 마니아에겐 서구권에 자리잡은 와인의 이런 입지가 반가울 뿐이다. 하하!
그래서 뮤지엄에 가면 딱히 정치나 역사에 관심이 없더라도 와인에 대한 애정으로 왠지 그리스·로마시대관을 친숙하게 둘러보게 된다.
와인은 술 중에서 유일하게 떡하니 신(GOD)이 있는 술이다. 바로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그리스)와 바쿠스(로마)다. 시대에 따라 이름만 다르지 같은 신이다. 그리스·로마신화 속 바쿠스는 술의 신이자 풍요와 생명의 신이다. (와인은 생명수 맞지) 1961년에 동아제약에서 만든 피로회복제 ‘박카스’도 바쿠스에서 따 온 이름이다.
실제로 로마시대 와인은 식수이자 피로회복제 기능을 했다고 한다. 수질이 좋지 않아 배탈 등 병이 걸릴 수 있었기 때문에 발효 과정에서 미생물 외에 다른 균이 죽고 알코올 성분이 있는 와인이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또 포도를 발효한 만큼 당분과 각종 산화성분이 들어 원기를 불러일으키는 효과도 있었다.
일반 시민은 물론 전쟁을 앞둔 군인들에게도 와인을 마실 것이 권장됐고, 와인 없이 물만 주는 게 죄인들에게 주는 벌의 한 종류였다고 한다.
당시 와인은 굉장히 거칠고 걸쭉한 시럽같은 형태라서 반드시 물을 타서 희석해서 마시는 게 국룰이었다. 물에 타지 않은 와인을 그냥 마시는 건 미개인이나 하는 짓으로 비난받았다. 물과 와인 비율은 때와 장소에 따라 달라졌지만 아무튼 지금 레드와인인 14도 안팎의 도수보다는 훨씬 낮았을 거다.
뮤지엄에는 당시 와인에 섞인 포도찌꺼기들을 거르는 여과기(strainer, 이 단어를 뮤지엄에서 처음 알게됐다)를 비롯해 와인과 물을 섞는 데 쓰였던 아주 큰 단지인 크레이터(krater), 여기서 와인을 떠다가 시종이 옮길 수 있게 만든 크기의 오이노초에(oenochoe)나 암포라(amphora)가 굉장히 많이 전시돼 있다. 항아리 모양의 이 용기들은 당연히 흙으로 구워진 것들인데, 최근엔 그때 와인 맛이 더 좋았다면서 오크통이나 스테인리스통이 아닌 흙으로 만든 통에서 와인을 발효하고 숙성하는 생산자들도 있다.
그리스·로마시대 와인이 특별한 건 귀족들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 토론을 하는 데 반드시 있어야 할, 필요조건이자 충분조건이었다는 점이다. 토론·좌담회를 뜻하는 심포지엄(symposuim)이란 말의 어원이 바로 ‘함께 마시다’란 뜻이다. 고대 그리스에서 와인을 마시며 토론을 했기 때문이다. 위대한 철학자 플라톤의 저서 『향연』의 원제 역시 symposion. 와인 마시기가 곧 토론이자, 철학의 장이었던 셈이다.
미국에 연수 온 나는 그 시대 귀족들과 비슷하다. 노동(회사일)에서 해방되고 보니 이제야 삶은 무엇인가, 행복은 무엇인가, 예술은 무엇인가…등 잡생각을 포함해 온갖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돈 걱정없이 이런 인문 토론을 하며 사는 삶이야말로 인간다운 삶이라고 확신한다) 물론 그때 귀족들은 부자고 나는 돈을 못 버니 거지나 다름없다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지만. 또르륵.
와인 마니아로서 그리스·로마시대의 와인 문화가 마음에 드는 건 당시에도 과도한 음주를 ‘아주 형편없는 짓’으로 여겼다는 점이다. 앞선 글에서도 말했지만 난 술을 핑계와 변명삼아 취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이성을 놓아버리는 걸 세상에서 가장 혐오한다.
보스턴 뮤지엄에 전시된 와인 단지 아래서 발견한 설명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아테네의 시인 에우불로스(Euboulos)는 와인의 신 디오니소스가 한 말이라며 이렇게 적고 있다.
“나(디오니소스)는 분별있는 사람을 위해 3잔의 와인만 준비한다. 첫 번째는 건강을 위해, 두 번째는 사랑과 기쁨을 위해, 세 번째는 숙면을 위해서다. 세 번째까지 다 마시면 현명한 사람은 집으로 돌아간다.”
정말 맞는 말이다. 건강과 사랑과 기쁨, 숙면이야말로 와인이 주는 최고의 행복이다.
이후엔 경고의 글이 이어진다.
“네 번째는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어서 악한 행동이 나오고, 다섯 번째는 고성을 지르게 되고, 여섯 번째는 무례하고 욕설이 나오고, 일곱 번째는 싸우게 되고, 여덟 번째는 기물을 부수게 되고, 아홉 번째는 우울해지고, 열 번 째는 광기가 나오고 인사불성이 된다.”
어떤가. 지금의 음주에도 꼭 들어맞는 말 아닌가. 와인의 신조차도 세 번째까지의, 즉 와인이 주는 긍정적인 효과만을 자신이 자부하고 관장하는 영역이라고 규정하고, 그 이후에 벌어지는 일은 인간 니들이 알아서 책임지라고 경고한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알코올의 힘에 구차하게 기대 잘난 척과 상대방에 대한 험담, 평소 서운했던 것, 자기 연민과 불만, 화, 객기와 허세를 늘어놓는 사람과는 절연하는 게 맞다고 본다. 그런 사람은 술, 특히 와인을 마실 자격이 없다. (술버릇이 그렇다면 그냥 혼자 집에서 마시길)
술은 긴장감을 낮추고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어 굳어진 혀를 풀어준다. 그래서 상대에 대해 고맙다는 말, 칭찬하는 말,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말, 내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말, 세상과 사물이 가진 아름다움에 놀랍다는 말, 딱 거기까지를 표현하기 위해 마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평소 사는 게 힘들어 짓지 못했던 미소를 짓고, 긴장에 갇혀있던 마음의 감동을 눈물로 표현하기 위해 마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와인은 그 어떤 술보다 여기에 적합한 술이고, 그게 내가 와인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