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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인 Jun 24. 2023

결혼하지 않으면 철없는 중년이 되는 걸까.

-40대 싱글 미국 1년 살기-

싱글이라고 무작정 속 편한 건 아니다.

20~30대엔 ‘남들은 다 짝이 있는데 왜 나는 없을까’ ‘난 참 못났나보다’ ‘사회에서 나만 이상하게 보이면 어떡하지’ ‘이것도 참 부모님께 불효다’…주로 이런 생각으로 우울하고 힘들어했다.     

하지만 40대를 넘어서니 더 이상 주위에서 나를 ‘결혼시장의 참가자’로 여기지 않게 됐고, 사회의 잣대를 의식해서 오는 스트레스는 많이 사라졌다. (써놓고 보니 좀 슬프네?) 간접 경험을 통해 결혼이 환상이 아니란 걸 알게 됐다. 혼자 잘 노는 성향과 성격 덕에 결혼을 하지 않아도 꽤 잘 살 수 있겠구나, 위안과 확신(!)도 갖게 됐다.     


문제는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는 점이다.     

 

“이렇게 혼자 살다가 영원히 철이 안 들면 어떡하지?”

“결혼을 못(안)해서 늙어 죽을 때까지 지독히 이기적인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아이가 아이답지 않아도 별로지만,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건 훨씬 볼썽사납다. ‘어른다움’에 대한 정의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 남을 더 잘 이해하고 포용하며 ▶갑자기 맞닥뜨리는 사건에 침착하게 대응하고 ▶ 나 하나 챙기기 급급하지 않고 남도 챙길 줄 알고 ▶ 화나고 억울한 일이 생겨도 화르륵 반응하지 않고 참을 줄 아는…. 이런 게 어른이 지녀야 할 자세라고 생각한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코커수목원(Coker Arboretum)'에 놓인 나무의자. 조용히 책을 읽거나 쉬어가기 좋다.

조직에서도 40대가 되면 관리자의 위치로 향하게 된다. 일에서든 태도에서든 윗사람과 아랫사람에게 ‘어른다운’ 모습을 보이는 게 맞다.  


일이야 그럭저럭 익숙해진 면이 있다. 그런데 고백하자면 나의 마음상태, 마음가짐은 크게 변한 것 같지가 않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참을 뿐, 여전히 20~30대에서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소녀같다, 그런 게 아니라…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모든 게 내 중심이란 거다.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건 아닌데 ‘내 생활만 신경쓰면 되는’ 환경에서 나오는 한계 같은 거다.      


당장 주위의 기혼자들을 보면, 결혼-시댁 또는 처가-임신-출산-육아 등 큰일들을 줄줄이, 지속적으로 겪으면서 다른 사람을 챙기게 된다. 좋든 싫든 멀티태스킹 능력이 높아질 수밖에 없다        


절대로 모든 싱글들을 일반화하는 게 아니다. 다만 나의 경우는 기혼자들보다 멀티태스킹이 안 되는 느낌을 받는다. 기혼자들은 아이(들)의 건강과 일과·학교과제·입시까지 챙기며 일하는데 나는 부모님과 내 일 챙기기에도 벅찰 때가 있다. 스트레스받는 지수로 보면, 기혼자들 캐파(capacity)의 절반도 못 미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사람은 주어진 환경에 따라 능력치가 단련되고 오른다는데 난 평생 ‘1인 가구’의 울타리 안에 캐파가 한정되는 건가.      

‘다양한 변수’에 취약한 것도 문제다. 내가 열심히 이 만큼의 일을 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겨 어그러지거나 충분히 평가받지 못하는 상황을 참지 못한다. 참긴 참는데, 분노 게이지가 훨씬 크다. 한 마디로 크게 억울해하는 거다. 내가 밤새 공부해서 90점짜리 답안지를 냈는데 왜 87점이 나와!? 뭐 이런 거다.      


반면 기혼자들은 ‘내 의지대로 안 되는 일들이 언제든 생길 수 있다’ 는 데 더 익숙한 것 같다. 인생의 철이 든 셈이다. 그래서 인풋 대비 아웃풋이 예상과 좀 다르더라도 ‘그러려니’하며 싱글들보다는 덜 속상해하는 것같다.

그럴 때 보면 ‘너는 화도 안 나? 그 정도 화내고 마는 거야?’라고 다그치고 싶다가도 ‘와, 참 침착하다…어른같네’ 이렇게 좀 대단해 보이기도 한다.     


여기서 이해심이란 이슈가 등장한다. 말초적인 예지만 버릇없는 아이들을 대할 때를 보자. 나는 주중 녹초가 돼 일하다가 주말에 친구와 모처럼 카페나 식당에 갔을 때 ‘난 이 돈을 내고 즐길 자격이 있어’란 의식이 강해졌다. 그런데 옆 자리에 아이들이 큰 소리로 울거나 장난치며 뛰어다니거나 소리지르면 스트레스 지수가 수직상승한다.

아이를 낳아 길러본 적이 없으니 ‘우리 아이도 저럴 때가 있었지’ 같이 엄마의 마음과 이해심 버튼이 작동 안 하는 거다. 대신 ‘좀 쉬려니까 하필이면 저런 가족 옆에 앉게 됐네’ 라는 원망과 불쾌한 마음이 튀어나온다.

(싱글) 친구와 실컷 툴툴거린 뒤 돌아오는 길엔 ‘이 나이 먹어서 애들 떠드는 것도 못 참는 나는 참 이기적이구나’ 씁쓸한 기분이 든다.     

'캐롤라이나 극장'에서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발레공연을 보고 있다.

기혼자들이 결혼에서 비롯된 상황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는 싱글로 사는 단출한 환경에 익숙해지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세상의 모든, 심지어 친척들의 결혼·육아·시댁 이슈에도 관심이 거의 없다. 나와 상관도 연관도 없는 딴 세상 얘기 같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겉과 속이 따로 논다. 직장 동료들이 아이 때문에 조퇴하고, 휴가를 바꾸고, 피치 못하게 일에 더 신경쓰지 못하는 게 못마땅하다. 머리로는 무조건 가족과 아이가 우선이라는 걸 알면서도 속으론 100% 까지는 공감하지 못하는 거다.     


더 솔직한 마음은 이제 결혼 축의금도 그만 내고 싶고, 돌잔치도 그만 가고 싶다. 10만원 돈이 아까운 것보다 ‘너무 축하해요~~!!’라고 말하면서 그만큼 축하하는 마음이 안 들어서다. 그냥 덤덤하고 아무 생각이 없다. 그래서 매번 내가 거짓말쟁이가 되는 기분이다.  

    

난 이렇게 위선자처럼 늙게 되는 걸까. 겉으론 기혼자들을 이해하고 저출산 시대에 아이 양육을 최우선 가치로 두지만, 속으론 불평하고 피해의식을 느끼고…그렇게 살게 되는 걸까.

한 가정의 남편과 아내, 아빠와 엄마인 사람들 눈에 나라는 사람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인생의 쓴맛 단맛을 모르는 사람으로 보일까. 한해한해 흐를수록 이런 고민이 생긴다.

이제 어딜 가나 눈앞에 놓인 '하나의 와인 잔'이 익숙하다.

어쩌다보니 싱글로 살게 됐고 요즘 세상에 혼자 사는 게 딱히 불편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다만 점점 나이가 들어갈수록 ‘성숙’이란 고민이 치고 올라온다. 나이에 안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 이쁘지?‘하는 것처럼, 영영 아이처럼 굴까 봐 걱정된다.


그나마 이런 문제점들을 인식하고 있다는 게 희망적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적어도 나아져보려고 노력이라도 할 수 있을 테니까.

좋을 때는 뭐든 크게 문제가 안 된다. 부디 힘들 때, 어렵고 스트레스받는 일에 부딪혔을 때 좀 더 어른스럽게 말하고 행동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뚜렷한 방법은 잘 모르겠다. 그저 어떤 상황이 닥칠 때 내가 부족한 점을 끊임없이 떠올리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고, 좋은 책을 읽고, 현명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은 것에도 감사해보려 한다. 그러다 보면 오래된 집처럼 옛 모습 그대로인 마음의 테두리도 조금씩 넓고 깊어질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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