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산 서재

by 이상역

글은 사유의 창조물이다. 사유는 주변의 사위가 고요해야 왕성해진다.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밤에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듯이 소설이나 詩도 낮이 아닌 밤을 지나 동이 틀 때 생명의 소리를 얻는다.


전업 작가가 쓴 책을 읽다 보면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집필을 위한 창작활동에 몰두한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최근 우리나라 문단을 이끌어 가는 소설가나 시인들이 수도권이나 강원도에 서재를 마련해서 집필활동에 전념한다는 소식을 방송에서 보곤 한다.


문학이 살아나야 국민의 삶이 풍성해지고 나라가 번성한다. 글은 조용한 곳에서 온몸으로 부딪혀야 하는 면벽이다. 글은 철저한 사색과 관조를 통해서 나온다.


생업의 주업은 따로 있고 부업 삼아 글을 쓴다면 좋은 작품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용한 곳에 가서 산책도 즐기고 글도 쓰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다. 더불어 서재까지 갖추어진다면 바랄 것이 없다. 하지만 그런 것을 기대하기란 까마득한 일이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는 별도로 확보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안방은 나와 아내가 사용하고 나머지 방은 아이들이 사용해서 집에서 무언가를 쓰려면 거실밖에 이용할 수가 없다.


사람은 일상을 떠나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다. 아파트 거실에서 TV를 시청하거나 라디오를 청취하면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그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도 들을 수밖에 없다. 집안의 백색 소음에 정신이 빠져들면 마음이 산란해지고 무언가 써보겠다는 의지도 사라진다.


삶의 숲을 벗어나야 자신이란 거울의 본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다. 그런 곳에서 하늘을 올려다보면 우주라는 틀 속에 자신이 존재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지구에 홀로 선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삶의 수준이 높지도 못하고, 돈도 별로 없다. 남들처럼 전원주택도 없고, 더군다나 강원도나 북한강 변에 서재조차 마련할 수 없다. 그저 바람 따라 시류 따라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사는 하루살이 신세다.


불교에서 공(空) 사상은 인간을 포함한 일체 만물은 직접적 원인인 인(因)과 간접적 원인인 연(緣), 즉 인연에 의하여 생겨나고, 인연에 의하여 변할 뿐, 고정 불변하는 실체가 없다는 것이 불교의 교리다.


불교의 교리는 사람이 태어나는 것은 구름 한 조각이 일어나는 것이고, 죽음은 구름 한 조각이 사라진다는 뜻이다. 결국 사람은 태어남도 죽음도 없다는 것이 공의 논리다.


불교의 철학적 뜻은 깊게 알지는 못하지만, 가끔은 나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고 싶다. 나이가 들어서가 아니라 인간의 본질적인 습성이다.


사람은 본래 단독자다. 홀로 지구라는 행성에 왔다가 때가 되면 지구를 떠나야 한다. 그런 삶의 과정에서 나를 찾지 못하고 가는 삶이 과연 진실한 삶일까.


내가 사는 곳에는 쉴 공간이 없어 휴일에 사무실을 종종 찾아간다. 이곳은 젊은 시절 인생의 승부를 걸고 도전해서 얻은 자리다. 사무실 뒤편에는 관악산이 앞에는 청계산이 가로막고 있다.


아무도 근무하지 않는 휴일에 사무실을 찾아오면 마음이 열리면서 고독한 공간으로 변한다. 이곳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서재다. 사람도 함부로 들어올 수 없고, 외곽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나 들여보내지도 않는다.


그리고 술 한잔 마시고 술주정하는 사람도 없고, 트럭을 몰고 다니며 무엇을 사달라고 외치는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서재란 글을 쓰거나 책을 읽으며 사색을 통해 생각을 정화하는 곳이다. 관악산 밑에 자리한 서재를 찾아오는 횟수가 잦다 보니 점점 낙이 되어간다.


적막한 서재에 앉아 가는 세월을 노래하며 마음을 정리하다 보면 지구에서 꿈틀대며 살아가는 삶의 원초적인 힘을 얻는다.


가끔 나를 만나고 싶을 때, 찾아가서 머무를 곳이 그립다. 그나마 휴일에 이곳을 찾아와서 사유를 즐기는 것에 마음의 위안은 된다.


오늘도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고 생각의 바다를 헤매는 중이다. 집에 있었으면 소파에 앉아 가족과 TV 채널을 돌려가며 이야기나 나누었을 텐데. 소소한 일상을 접고 서재에 나와 오늘을 생각하고 내일의 삶을 그려본다.

먹고사는 일에서 벗어나 서재에 앉아 글이나 쓰면서 살아가는 길은 없는 것일까? 비록 내가 소유한 서재는 아니지만 다른 사람과 삶의 한 자락을 공유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에 충만감이 차오른다.


하루를 정리하고 서재를 떠나면 파노라마와 같은 삶의 한 주가 마감된다. 내일부터 이곳은 다시 삶의 전쟁터로 바뀌면서 업무와 부딪치고 세상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


국가에서 언제까지 사무실을 서재로 빌려줄지는 알 수가 없다. 그날이 올 때까지 시간이 날 때마다 서재나 찾아와서 인생의 시름이나 달래며 글이나 쓰고 싶다.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소유한 것은 아니지만 어깨를 기댈 수 있는 서재나마 간직하고 산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든든하다. 이런 서재나마 가슴에 껴안고 산다는 것이 행복이고 축복받은 삶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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