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글을 써놓고 아름답게 느끼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도 자신이 쓴 글에 대하여 미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아름다운 산문을 만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마음의 유혹이다. 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요즈음 고목의 향기가 서린 그늘에 앉아 멋진 산문이나 읽으며 세상사 온갖 시름을 잊고 싶다.
유장한 노래는 가수의 목소리조차 곱고 그런 노래를 들으면 여운이 오래간다. 글도 마찬가지다. 글에서 따뜻한 마음을 만나면 마음이 맑고 밝아지면서 오래도록 향기로 남는다.
종종 자신의 마음을 진솔하고 담담하게 표현한 멋진 산문을 만날 때가 있다. 그때는 숨소리조차 거추장스럽게 다가온다. 내가 읽고 싶은 산문은 우리가 즐겨 부르는 대중가요처럼 마음이 절로 동하는 그런 글이다.
어떤 글은 읽으면 읽을수록 머리가 멍해지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게다가 작가가 의도한 마음을 도무지 알 수 없을 때는 글을 읽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진다.
자신의 온전한 마음과 정신을 글에 담담하게 표현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마음을 강조하면 글이 추구하고자 하는 경계를 벗어나고, 진솔하게 다가가고자 하면 마음이 따라주지를 않는다.
글은 써놓고 다시 읽을 때마다 미완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어딘가 허전하고 부족한 느낌이 든다. 글로써 사람의 인격을 완성할 수도 없고, 문장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대변할 수도 없다. 단지 미완으로 태어나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작가의 진실한 노력만이 있을 뿐이다.
한 문장으로 다른 사람의 심금을 울리고, 울음을 토해내는 멋진 산문을 쓰고 싶다. 글을 쓰는 경지가 어떤 수준에 도달해야 그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 세계가 그립기만 하다.
따뜻한 봄소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마음을 유혹하는 멋진 산문을 자주 만났으면 한다. 자신이 추구하는 삶을 진지하게 써 내려간 글.
소소한 삶을 진실하고 솔직하고 담백하게 써 놓은 글. 그런 글을 만날 때면 마음이 기쁘고 사람이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표도 줄어들면서 잔잔한 감동과 미(美)적인 세계로 빠져든다.
프랑스의 몽테뉴는 『에세』에서 자신의 인간적인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약점까지 모두 섰다고 한다.
그런 글이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까지 읽히는 것은, 글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글을 자주 만나고 싶다. 좋은 글이 되려면 시대를 뛰어넘어 보편성을 추구하고 진솔한 자기 고백이 뒤따라야 한다.
글은 쓰기 전에 자기비판과 시대의 아픔과 자신의 온전한 정신세계를 성찰해야 하는 책무가 따른다. 글을 쓰기 위해 펜을 드는 것은 진실에 대한 소명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야 한다.
몽테뉴는 『에세』를 20년간 썼다. 그는 글을 쓰면서 나름 원칙을 정했다. 자신이 쓴 글은 절대로 수정하지 않는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쓴 글을 끊임없이 퇴고하게 마련이다.
몽테뉴는 자기가 쓴 글을 수정하지 않은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신의 마음과 사상이 변해가는 것을 읽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어떤 자세와 마음으로 글을 써야 아름다운 마음이 배어 나올까? 지금의 모습을 진실하게 표현하고 그에 대한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일까.
나이가 들어갈수록 살아가는 일이 점점 꼬여만 가고, 현재의 자리에서 자꾸만 다른 자리로 달아나는 꿈을 꾸게 된다. 이런 어중간한 마음에서 진실함이나 솔직함이 배어 나올 리는 없을 것이다.
그동안 삶을 살면서 겪은 기쁨, 사랑, 실패, 좌절, 슬픔, 이별 등의 감정을 진솔하고 솔직하게 표현해 보고 싶다. 그 길도 다르게 보면 멋진 산문을 쓰기 위한 밑거름이자 지름길이다.
남은 생애 동안 틈틈이 감동과 여운이 남는 아름다운 산문도 만나고 잔잔한 글을 써서 독자를 유혹하는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