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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상역 May 09. 2024

친구 딸 결혼

고향에서 개구쟁이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와는 초중고도 같이 다니고 군대까지 함께 근무한 후 나는 객지로 나오고 친구는 고향에서 회사를 다니는 바람에 서로 헤어졌다.


그러다 친구가 사십 대 초반에 저 세상으로 떠나갔다. 친구를 고향의 산자락에 눈물을 흩뿌리며 묻어준 것이 엊그제인 것 같은데 친구의 아들이 자기 여동생 결혼 소식을 전해왔다.


구의 아들과 딸은 자라면서 몇 번 봐온 터라 고향에 성묘를 온 친구의 아들을 만났을 때 나중에 애경사가  있으면 반드시 소식을 달라고 부탁했더니 그것을 잊지 않고 고맙게도 알려준 것이다.


물론 나도 딸이 결혼할 때 친구의 아들에게 소식을 전했다. 고인이 된 친구와는 고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성장했지만 막상 친구의 아들과 딸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별로 없다.


친구의 아들과 딸은 친구가 고향에 묻히고 나서 대전에 가서 산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사람의 관계는 친한 관계도 당사자가 없으면 인연이 끊어지고 자손과 인연을 이어가것이 힘들다.


친구의 가족과 살아생전에 자주 얼굴도 보고 이야기를 나누었다면 애경사 소식을 전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친구와는 인연을 넘어 친척관계라서 그나마 친구의 아들과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친구의 아들과는 내가 아저씨 뻘이지만 친구와 가깝게 지내던 터라 친구의 아들과 딸이 어디서 어떻게 성장해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에 친구의 아들에 신신 당부했었다.


그렇다고 친구의 딸 결혼식에 가서 내가 특별하게 도와줄 것은 없지만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남은 아들과 딸이 어떤 인생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가서 눈으로 확인도 하고 보고도 싶었다.


내가 그렇게 해야 할 의무는 없지만 친구를 위해서라도 그 자리에 참석해서 친구를 대신해서 친구의 딸 결혼식을 축하해 주고 축복받는 행복한 모습을 보고 친구에게 전해주고 싶어서다.


우리는 세상을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만날 수 없는 것을 아쉬워한다. 반면에 세상에 남겨진 사람은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하는 소소한 것들은 머릿속에서 서서히 잊어가며 살아간다.


친구는 초등 시절부터 덩치가 좋아 육상 선수도 하고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자전거 선수로도 활동했다. 학창 시절에 그토록 건강했던 친구가 회사에 다니면서 몸이 좋지 않은 모습을 고향에서 몇 번 본 적이 있다.


그 이후 홀로 지내게 되면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어느 날 자기 집 화장실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다른 사람을 통해 전해 들었다.


사십 대 초반에 그 소식을 듣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어서 몇 번씩 되물었던 기억이 난다. 개구쟁이 시절부터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자랐는데 서로 직장이 엇갈리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안부 한번 제대로 묻지 못하고 이승을 떠나보낸 것 같아 미안한 생각이 든다.


고향에서는 친구뿐만 아니라 친구의 부모님과 누님까지 세상을 떠났다. 친구 부모님이 세상을 떠난 후 친구의 집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친구 누님과 동생들은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살아가고 있다.


친구는 고향에 논과 밭이 좀 있어 부족한 것 없이 살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가족이 해체되었다. 지금도 초등 친구들과 친구를 상여에 메고 산자락에 올라가서 묻어주던 일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친구여!


자네 딸 결혼은 걱정하지 말게나. 내가 다음 주말에 친구의 딸 결혼식에 참석해서 친구 대신 결혼을 축복해 주고 잘 살아가라고 토닥토닥 등을 두드려주며 격려해 주고 오겠네.


그리고 친구는 그곳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소식이 궁금하다네. 자주는 아니더라도 가끔씩 꿈에라도 나타나 안부라도 전해주게나. 그나마 자네는 고향의 산천이라도 지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나는 정든 고향을 떠나 타관 땅을 떠돌며 낯선 비바람을 맞아가며 풍찬노숙을 벗어나지 못하는 신세라네. 언젠가 나도 자네를 따라 고향에 가는 날 서로 만나 술이나 한잔 나누며 회포나 풀어보세. 친구야!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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