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방을 나누어 쓰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다. 셰어하우스는 자신의 방과는 별개로, 공용 부분이 있는 임대주택을 말하는데 인테리어 등 디자인성이 있는 건물이 젊은 층에게 인기가 있다고 한다.
집값과 전셋값이 비싸다 보니 불편을 감수하고 공동생활 하면서 공유와 교류를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셰어하우스다. 임대를 구해서 비싼 보증금을 내는 것보다 초기비용이 저렴한 월세로 이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어쩌다 세종에 내려와서 외국에 나가는 사람의 집 전세를 얻어 살다가 계약기간이 끝나고 방을 셋이 나누어 쓰는 셰어하우스에 월세로 들어와 생활하게 되었다.
세종은 청사라는 특성상 청사에서 평생 근무하는 사람이라면 집을 구해서 살겠지만 인사이동으로 잠시 홀로 떨어져 지내는 사람은 보증금과 경제적인 형편상 셰어하우스를 얻어 생활하는 사람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그간 혼지 지내다 셋이 방을 나누어 쓰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다 보니 좀 불편할 줄 알았는데 불편함을 잘 모르겠다. 각 자의 생활 패턴이 달라서 그런지 서로 부딪히는 일이 별로 없어서다.
다른 방에 사는 사람은 현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와 방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를 통해서나 어느 방의 사람이 집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아니면 욕실로 가거나 먹을거리를 찾아 냉장고를 뒤지는 소리로 방에 있는지 알 수가 있다.
셰어하우스는 거실에 나가 TV를 시청하지 않는 한 서로 인사를 나눌 시간조차 없다. 각자 출근하고 퇴근하는 시간이 다르고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다르다 보니 일주일에 얼굴 한 번 정도 마주친다.
셰어하우스가 좋은 점은 혼자 지낼 때는 청소하기가 번거로웠는데 방을 나누어 쓰다 보니 청소할 것이 별로 없다. 사실 혼자 지낼 때 제일 귀찮고 싫은 것이 청소다.
아무리 작은 집이라도 쓰레기를 버리고 구석구석 청소하는 것은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다. 따라서 집 청소도 아무 때나 할 수가 없고 마음 잡고 날을 잡아서 해야 한다.
청소기로 방이나 거실을 청소하는 것은 쉽지만 싱크대나 화장실과 같은 물이나 매일 쓰는 곳은 청소가 쉽지 않다. 청소기는 서서 쭉쭉 밀고 다니지만 싱크대와 화장실은 손으로 일일이 닦고 문지르는 작업을 해야 한다.
셰어하우스가 청소하기 좋은 점은 다른 사람이 사는 방에는 들어간 수가 없어 내가 사용하는 방과 화장실만 청소하면 끝이다.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샤워하고 나서 화장실은 간단하게 문지르고 닦으면 그만이다.
셰어하우스의 특징은 방문을 닫아버리면 그 사람이 자는지 무엇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렇게 지난 한 달간 독신 아닌 독신으로 살아보니 이런 삶도 꽤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이곳에서 생활이 길어지면 전세를 얻는 것도 고려해 보겠지만 몇 달밖에 남지 않아 부득이 셰어하우스를 구해서 생활하는 신세지만 그나마 셰어하우스가 원룸보다는 나은 것 같다.
원룸은 홀로 생활하는 장점은 있지만 공간도 좁고 생활 도구도 적어 고독할 수밖에 없다. 셰어하우스는 다른 사람과 함께 공동생활을 해서 그런지 원룸에서 느끼는 고독함보다 덜 느껴진다.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누군가를
바라볼 수 있었을 때는
고독은 가끔씩 찾아오는
멋스러운 사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의 관심이 없고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는
외로움과 고독은
내 전부를 접수한다. (이정순, '고독')
시인의 말처럼 삶은 곧 고독이다. 고독은 누군가가 바라봐주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느낄 때는 덜하지만 누군가가 바라봐주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파도처럼 몰려온다.
사람은 고독을 통해 성장하고 성숙해지듯이 고독한 생각이 들거나 생활에 고독함이 느껴질 때는 어떻게 그 고독의 난관을 헤쳐나가느냐에 따라 하루하루의 생활이 달라진다.
원룸이나 셰어하우스 생활이나 고독이 찾아오는 것은 비슷하지만 셰어하우스가 덜한 생각이 든다. 고독이란 홀로 있음에 따른 외롭고 쓸쓸함이다. 사람은 본래적으로 고독하게 태어났다.
비록 누군가가 바라봐주지 않는 셰어하우스 생활을 하고 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고독을 멋스럽게 극복하는 것도 삶의 의무다. 그것이 나를 바라보며 사는 사람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생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