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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Feb 12. 2023

나를 쓰게 하는 것들

엄마의 갱년기가 나를 또 쓰게 만든다.




갱년기가 온 엄마가 밤에 잠이 오지 않아 미치겠다며 나를 붙잡고 우셨다.


“병원 가서 갱년기 약 먹고 호르몬치료받으면 돼, 심각한 거 아니야”. 담담하게 내뱉고 내방으로 들어와서는 갱년기 치료로 용하다는 산부인과를 여기저기 찾아보다가 마음이 심란해져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부모님을 대할 때 가장 크게 변한 부분은 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해 <과몰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엄마의 갱년기를 나이 45세-55세에서 볼 수 있는 전신적 노화현상으로 보지 않고, 그녀의 삶을 갱년기의 원인으로 여기는 것이다. 밖에서는 회사일, 집안에서는 청소, 요리와 육아 등 부불노동 (unpaid work)을 몇 십 년간 하면서 얻은 것이 갱년기가 아닐까 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마음이 심란해질 때 글을 쓰면 해방감을 얻는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나를 쓰게 하는 것들>에 가족 이야기가 들어가기 시작했다. 설명할 수 없는 슬픔과 찬란한 모양을 가진 각종의 감정들이 글을 만나면, 정리된 캐비닛에 그 감정들이 차곡차곡 담기는 느낌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불쑥 튀어나 나를 혼란스럽게 하지 않고, 내가 보고 싶을 때 언제든 가서 열어보고 다시 닫을 수 있게 말이다.







맞벌이 부모님을 둔 외동인 나는 혼자인 것에 늘 익숙해야만 했다. 그러나 아무리 해도 유년시절에 외로운 것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차라리 동생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저녁 왕뚜껑 라면도 같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 텐데, 근처에 할아버지가 계셨더라면 이렇게 멍하니 엄마 아빠만 기다리고 있지 않을 텐데. 밤 열 시쯤 퇴근 후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부모님한테,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 줄 알아? “ 하며 눈물이 가미된 큰소리를 치곤 했다. 그리곤 억울해했다. 이렇게 어린 중학생이 혼자 밥 먹고 자고 기다리는 것이 맞냐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그 누구보다 나를 혼자 두고 싶어 하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에서 일하다가 어린 내가 갑자기 건 전화에 매 번 가슴이 철렁했을 것이고, 회사를 때려치우고 싶다고 생각하던 중 핸드폰을 열어 사진첩에 들어가 내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그리곤 꾹 참았을 것이다. 그렇게 열 번 중 아홉 번 정도 꾹 참다가, 집에 와서 한 번 정도 힘든 티를 냈을 것이다. 그 한 번에 내가 거침없이 다가가 그들에게 외롭다고 징징거린 것이다. 부모라면 매 순간 품고 다니는 자식에 대한 죄책감 파트 영역을 마구 잡고 흔들면서 말이다.  




학교 졸업을 거쳐 취직을 하여 커리어를 쌓는, 사회적으로 보이는 어른의 조건을 하나씩 갖게 되는 자식을 보며 부모님은 뿌듯해하셨다. 내가 한 발짝 더 성장하며 그들의 희생을 당연하게 밞으며 올라가는 동안, 우리 엄마, 아빠의 부모님은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져 가며 기력을 잃으셨다.



구순인 친할아버지가 쓰러지셔 급하게 인근 병원에서 수술을 받으시고 요양병원에 옮겨지셨다. 화장실을 다녀오니 1층 데스크 앞에 멍하니 앉아있는 아빠를 보았다. 동의 서약서가 앞에 있었다. 그 중 한 가지 동의란만 비워져 있었다.


갑자기 심정지가 올 경우, 의료진은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습니다. 동의하십니까?


요양병원에서는 대게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는다는 간호사의 설명이 있었다. 노인 환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하게 되면 갈비뼈가 부러지고 다시 숨이 돌아와도 곧 돌아가신다는 얘기였다.


<아니요>에 체크를 하고나선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다 썼다고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할아버지 좋아지실 거야. 이제 요양병원에 오셨으니. 배고프지? 저녁 먹으러 가자”



아빠는 배가 안 고프셨을 것이다.

설명하기 힘든 상실, 걱정, 미안함, 죄책감 모든 감정들이 함께 어우러져 큰 압력에 눌려 밥 생각도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걱정의 부담을 자식한테까지 나눠주고 싶지 않아서 내 어깨를 붙잡고 만두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나를 쓰게 하는 것들>중 가족이야기는 거의 대부분 미완성이다.


“쓰다가 막힌다는 것,

글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생각이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은유>


내가 아직도 생각이 무르익지 않은 철없는 외동딸이기 때문임을 잘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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