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가 끝날 때쯤
“추도사를 쓰지 않았다면 시간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잊었을 것이다.
삶을 한 편의 영화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더 의미 있게, 더 재미있게 만든다면 멋진 삶을 설계할 수 있다.
“영화 속 캐릭터가 이렇게 행동한다면, 나는 이 캐릭터를 좋아할까?”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본다면 더 깊은 인생의 지혜를 찾고 더 멋진 인생을 경험할 준비가 된 것이다.
운명은 우리의 스토리를 쓰지 않는다. 적어도 전부는 아니다. 스토리는 스스로 만들어가야 한다. 비전을 세우고 조금씩 플롯에 작은 스토리를 보태야 한다. “
-<되는 사람>, 도날드 밀러
<되는 사람>의 책장을 덮고, 갈등에 빠졌다.
이번주부터 읽는 책들은 저자가 써보라고 한 리스트, 하라고 한 일들을 모조리 해보자고 결심했는데.
하필이면 나에게 추도사를 써보라고 하는 책을 읽어 고민이 많아졌다.
추도사를 필히 쓰게 하려고 한 이 집요한 저자는 다른 이들의 추도사까지 무려 3장이나 참조로 넣고, 마지막에 특별 부록으로 <나를 위한 추도사>라는 제목 하에 공백 1장까지 친절하게 넣어두었다. 추도사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햐지?
아래는 저자의 추도사 중 일부를 발췌한 글이다.
“돈은 죽기 전까지 20여 권 이상의 책을 썼으며, 회고록, 경제 경영서, 자기 계발서, 소설은 물론 구스힐에서의 삶을 다룬 시집을 발간했다.
돈은 에멀린에게 사랑과 안식처를 제공했고 좋은 본보기가 되었다. 언제나 아내를 지지했고 가족에게 받은 선물 같은 사랑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
추도사를 쓰려고 하니 어디선가 갑자기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이 물밀듯이 내려왔다.
‘어제 빨리 집에 들어오라는 엄마 전화에 대체 왜 짜증을 냈을까?’
오만하게 잊고 살았던 것이다. 나를 위하는 사람들의 애정과 관심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말이다. 그러다가 죽음을 생각하고선 순식간에 미안하다는 감정을 느끼는 스스로에게 염증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의 추도사 첫 문장은 다음 문장으로 시작한다.
“오만하게 가족의 사랑을 당연시했던 것에 미안함을 표합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오만함까지 사랑해 준 가족에게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추도사 다음 문장은 아무리 고민해도 생각이 안 났다.
책상을 벗어나 거실 소파로 나가 육포를 질겅질겅 뜯어먹었다. 사람이 저작활동을 하면 머리가 잘 돌아간다고 했다. 턱이 아플 정도로 육포를 씹으며 뭐라고 나오겠지 싶어 내적 질문을 쉴 새 없이 던졌다.
‘작가가 되고 싶어 브런치 작가를 신청하지 않았더냐. 그렇다며 작가는 왜 되고 싶어 했지? 어떤 책을 쓰고 싶은데?’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신입사원 3개월 차 때부터이다. 회사에서는 내 목소리를 못 내니, 혼자 집에서라도 글로 내 목소리를 내보자는 것이 시작이었다.
초반의 글들은 이런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그 망할 놈이 내가 일처리 하는 게 답답하다며 모니터에 이어폰을 집어던졌다. 내가 신입이라고 다른 망할 놈은 내 전화는 일부러 받지도 않는다 등. 심판의 글이었다. 눈 떠보니 글 속 나는 굉장히 불쌍한 피해자 그 자체였다.
가치있는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자기주체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을 써야겠다고.
추도사의 두 번째 문장이다.
“총 5권의 책 중 두 번째 베스트셀러의 모든 인세는 보육원에 기부했습니다. 그녀가 10년간 봉사활동을 다녔던 보육원에.”
추도사에 사랑하는 사람의 얘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사랑 관련해서는, 퇴근길 지하철 1호선에서 눈물 콧물 쏙 빼며 읽었던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빼놓고 생각할 수는 없다. 구차하게 덧붙여 말하자면 원래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니다. 그런 내가 책의 다음 문단을 읽고 눈이 잠시 마카롱이 될 정도로 울었다.
“잘 듣게. 오토. 만약 내가 집에 있는 아내에게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자네가 아내를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녀에게 이렇게 전해 주게.
내가 매일같이 매시간 그녀와 대화를 나누었다는 것을. 잘 기억하게. 두 번째로 내가 어느 누구보다 그녀를 사랑했다는 것. 세 번째로 내가 그녀와 함께했던 그 짧은 결혼생활이 이 세상의 모든 것, 심지어는 여기서 겪었던 그 모든 일 보다 나에게 소중한 의미를 갖는다는 것을 전해 주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수용소에서 빅터는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자신의 아내와 계속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의 육신을 초월해서 더 먼 곳까지 간다는 것을 깨닫고 말이다.
추도사의 세 번째 문장이다.
“나라는 사람 그 자체만으로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 결혼했습니다. 나의 모든 꿈을 자신의 꿈처럼 여겨준 남편 덕분에,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었습니다.”
“추도사 작성은 자기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 그 이상으로, 삶의 견인력을 높여주는 전략이자 계획이다.
이제 당신의 마음은 추도사에 적은 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