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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평택의 쿼카 Feb 25. 2023

180만 원짜리 가방을 훔친 남자



  

“딸! 매장에 경찰 와 있어서 나중에 전화할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설마 엄마가 보이스피싱에 당한 건가? “엄마 난데 나 핸드폰 고장 나서... 편의점에서 상품권 좀 사다 줄 수 있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고 얼마나 강조했는데. 보이스피싱 범죄자 수법 시뮬레이션을 통한 그간의 교육이 소용이 없었던 것인가. 그토록 신신당부했던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별 건 아니고, 신상 가방 하나가 없어져서 경찰에 신고했어. CCTV로 다 같이 돌려보고 있는데, 글쎄 누가 훔쳐간 거 있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정말 다행이다.



“얼마짜리 가방인데? 누가 훔쳐갔는데?”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매장에 들어올 때부터 나갈 때까지, 매장 직원분에게 친절하게 이 옷 입어봐도 되냐, 저 옷은 언제 나온 것이냐 물어봤다고 한다. 안경을 쓴 평범한 이 남자의 한 가지 특이한 점을 꼽으라고 하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방을 훔친) 동일한 브랜드로 상의, 하의, 신발, 가방까지 꾸몄다는 것. 직원 분은 ‘딱 봐도, 우리 브랜드 처돌이네.’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처돌이는 어떤 것에 쳐 돌아버릴 정도로 팬이라는 뜻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아무리 그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꾸미기는 쉽지 않다. 나이키를 아무리 좋아해도, 나이키 모자에, 티셔츠, 조거팬츠, 운동화에 마지막으로 나이키 가방까지 매고 싶지는 않은 것처럼 말이다. ‘인간 나이키’가 되고 싶지는 않다.  



“그냥 우리 브랜드에 미쳐있는 사람인 줄 알았어요. 당연히 저 손님은 뭐라도 사고 나가겠구나 싶었죠.” 나였어도 직원처럼 생각했을 것이다. 원래 우리 브랜드를 좋아하니, 내가 별로 영업을 하지 않더라도 저 사람은 구매할 것이다 생각하면서.



내가 직원이고, 그 사람이 고객이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에 대한 경계심은 당연히 제로. “이건 언제 나온 거예요? 이건 세일 안 하나요? 저건 신상인가요? 남녀공용인가요?” 연속적으로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닌, 이미 다 알고 왔다는 표정으로 매장을 둘러보는 손님. 기껏해야 한다는 질문은 답정남처럼 ‘46 사이즈랑 48 사이즈 고민 중이긴 한데... 46 사이즈가 낫겠죠?’처럼 답이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질문... 그리고선 다시 혼자 매장에서 열심히 고민하다가 기억에서 손님을 잊어버릴 때쯤, 계산대로 쓱 와서 “저, 이거 살게요!” 하며 한 손에는 이미 카드를 들고 있는 손님.




그가 훔친 가방은 23 SS 신상 가방으로 남녀공용 제품. 가격은 180만 원.





“아니, 180만 원 가방을 훔칠 가치가 있나? 4-500만 원도 아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내 월급에 180만 원 가방은 적어도 넉 달은 모아야 살 수 있는 가방이다. 내 월급의 프레임으로 보면 부담스러운 가방이지만, 절도의 프레임으로 보았을 때... 180만 원은 너무 적은 금액이었다. 빨간 줄이 그어질 리스크를 안고 180만 원 가방은 너무 적은 게 아닌가? 쓰다가 돼 판다고 생각하면 100만 원도 안될 텐데....’ 에르메스나 샤넬 가방정도는 훔쳐야 갖고 있거나 되팔 때 남는 게 있지 않나?’



이런저런 생각을 할 때쯤 엄마가 cctv영상을 usb에 담아달라는 부탁을 했다. 경찰에 보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USB로 옮기기 전, 도난당하는 시점의 영상만 뽑아달라고 하셨다.


어머니이시자, 우리 집의 사령관님의 말씀은 어기면 안 된다. 다른 일은 제쳐두고 이 일부터 해야 한다.





나 : “대체 언제 훔쳐가는 거야?”

엄마 : “이 시점이었던 거 같은데... 뒤로 더 가봐. 아니 앞으로. 뒤로 1시간. 아 너무 갔다. 쫌만 더 앞으로. 더. 더.”



대체 내가 왜 이걸 돌려보며 찾아야 하는 건지. 손가락에 쥐가 날 정도로 왜 앞으로 감기와 뒤로 감기를 반복해야 하는지 본격적으로 의문이 들 때쯤. “찾았다! 봐봐. 여기서 가방을 가져가잖아.” 매장에 다른 손님들이 찾아와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볼 때 즘, 신상 매대에 놓인 브라운 가죽 백을 쓱 보더니. 한 번 가방 끈을 감아서 품 안에 넣었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사라졌다.



그는 자신이 잡힐 걸 알았다면, 본인의 인생과 180만 원짜리 가방 중 또다시 가방을 선택할까?



차라리 그가 잡힐 줄 몰랐다고 생각하는 편이 내겐 편했다. 잡힐 줄 알고도 인생보다 가방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슬퍼졌기 때문이다.





소유의 프레임보다, 경험의 프레임 

인생책으로 꼽는 <프레임>에서는 이런 연구 결과를 말한다.



2000년 11월과 12월, 사회심리학자 밴 보벤이 이끄는 연구팀은 20대부터 60대까지 1,200여 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주로 가정 경제에 대한 의견 조사였는데, 설문 말미에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소유’ 자체를 목적으로 구매했던 물건 (옷, 보석, 전자 제품 등)과 ‘경험’을 목적으로 구매했던 물건 (콘서트 티켓, 스키 여행 등)을 한 가지씩 고르게 했다. 그런 다음 그 두 가지의 구매 물건 중에 무엇이 더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선택하라고 했다.



그 결과 경험을 위한 구매가 자신을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사람이 전체 응답자의 57%였고, 소유를 위한 구매가 더 행복하게 해 줬다는 응답은 34%에 불과했다. 이는 어떤 물건의 구매행위를 통해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것이, 소유 자체를 위해 구매하는 것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행복감을 안겨준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다.




2년 전만 해도 나는 소유 프레임 80% 경험 프레임 20%정도의 사람이었다.


소유 자체를 목적으로 예쁜 옷, 새로운 옷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뛰기도 했었으니까. 가격은 상관없었다. 가져야겠다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어 결국 소유해 내는 쾌거를 이뤘다. 소유의 대상은 옷에서 신발로, 신발에서 가방으로. 이러한 소유의 대상들은 귀티 나게 보이기 위한 물건들이었다. 귀티 나게 보이고 싶었다.



30권의 책 읽기를 돌파했을 때쯤, 글쓰기를 시작했다. 주말에 일어나 커피 한잔 하며 책상에 앉아 날 기다리고 있었던 책과 브런치 앱을 바라보며 강하게 스쳐 지나갔던 생각이 이제는 한 문장으로 뇌리에 새겨져 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쓸 때 가장 큰 행복감을 느끼는구나.”



행동 즉 경험이 나에게 더 밀도 있는 행복감을 주는 것이었다. 새로 산 트위드 재킷은 출근하려고 입을 때에만 반짝. ‘아 이 옷 정말 잘 산 것 같아. 잘 어울리네’의 일시적인 만족감만 줄 뿐.



경험에 의한 행복은 아예 다른 차원의 영역이었다. 가슴에서부터 벅차오르는 듯한 기쁨처럼.



지금의 나는 소유 프레임 30%, 경험 프레임 70%의 사람이다. 억지로 소유 프레임의 비중을 줄이려 하지 않아도. 이 순간,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소유 프레임은 줄어가고 있다.



부디 180만 원짜리 가방을 훔친 그 남자가 경험의 프레임을 많이 가질 수 있길. 소유물로 전전하는 삶이 아니라, 행복감을 느끼는 경험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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