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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코 Dec 15. 2023

희망을 찾아서 도망가는 이야기_<한국이 싫어서>

한국이 싫어서, 장강명, 민음사

왜 한국을 떠났느냐. 두 마디로 요약하면 '한국이 싫어서'지.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 무턱대고 욕하진 말아 줘. 내가 태어난 나라라도 싫어할 수는 있는 거잖아.

- 한국이 싫어서 中


나는 희망이라는 단어에 별 감흥이 없었다. 희망이라는 표현을 종종 쓰긴 했지만, 입바른 소리와 함께 쓰는 텅 빈 단어라고 생각했다. "희망을 잃지 말고 더 노력해 봐", "희망을 찾아 떠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닭살이 돋았다. 참 무책임하고 편리한 단어이지 않은가?


그렇지만 최근에 취준이 생각보다 잘 풀리지 않아 막막한 시기를 보내면서, 막막한 현실을 버티기 위해 필요한 것이 이 진부한 "희망"이라는 걸 느다. 왜 온갖 소설에서 희망을 이야기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


<한국이 싫어서>도 청년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예전 책이긴 하지만 요즘같이 팍팍한 시기에 다시금 눈에 들어와서 읽게 되었다. 일단 대략적인 줄거리는 한국에서의 삶에 지친 청년 계나가 행복을 찾아 호주로 떠나고자 하는 이야기다. 금융회사에서 일하다 현실에 지쳐 퇴직한 20대 후반의 계나는 호주로 떠난다. 호주에서 고생을 한 뒤 한국에 돌아와 남자친구인 ‘지명’과 재회하지만, 그와 한국에서 안정적인 삶을 살며 만족할 수 없음을 깨닫고 다시 호주행을 택하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찾아 떠난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개막작으로 이 책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 <한국이 싫어서>가 소개되었는데, 장건재 감독은 이 작품을 '희망 찾아 도망가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다. 이 표현이 인상 깊어 원작 소설을 찾아보기는 했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현실을 혐오하며 도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삶의 태도를 지양한다. 탈조선이라는 표현도 좋아하지 않다 보니, 희망을 핑계로 한 계나의 도망 끝에 행복이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 의문으로부터 시작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이 소설을 쓴 장강명 작가를 알게 된 건 <표백>이라는 소설을 통해서였다. 그는 결핍을 가진 주인공들의 방황을 통해 현실을 고발하는 소설을 많이 썼는데, <표백>이라는 작품이 자책만 하며 인생을 좀먹지 않기를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설이었다면, <한국이 싫어서>는 사람마다 원하는 삶의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일깨워주며, 나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기를 바라는 소설이었다.





밥을 먹는 동안 나는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 한국이 싫어서 中


특히 행복을 돈으로 비유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 다르다고 말하며, 성향 차이에 따라 사람의 유형을 '자산성 행복 추구형'과 '현금 흐름성 행복 추구형'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자산성 행복 추구형'은 행복의 금리가 높아서 뭔가를 이루기 위해 현재의 행복을 미루더라도 훗날 이를 성취했을 때 돌아오는 행복감이 크기 때문에 견딜 수 있지만, '현금흐름성 행복 추구형'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한 순간을 자주 만들어내면서 삶을 견뎌야 한다고 말한다.


이 비유를 보고 최근 종영한 드라마 <무인도의 디바>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무인도에 고립되었을 때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언젠가 섬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만 매달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순간순간 파도에 휩쓸려온 쓰레기로 이것저것 필요한 도구들을 만들며 작은 성취를 즐기고, 손틈 새로 비치는 햇살에 기뻐하며 현실에 몰입했기 때문이었다.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잊을 수 없었다면 분명 버티기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앞으로 무인도에 고립된 것 같은 막막한 기분이 들 때, 희망을 잃지 않되 때로는 사소한 성취의 기쁨으로 현실의 답답함을 잊기도 하면서 버텨보려고 한다. 잘 버텨서 언젠가 막막한 현실을 벗어날 기회가 왔을 때, 이를 덥석 잡아 빛날 수 있는 순간을 만들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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