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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앙카 Jul 15. 2023

사막을 달리다. 그리고 머물다.

이카(Ica)의 오아시스 와카치나 (Huacachina)

 언니가 왔다. 1년 만에 만남이었다. 내가 페루에 있는 동안 언니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겪었고, 그 시간과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지구 반바퀴를 돌아 내가 있는 이곳까지 왔다. 나와는 다르게 해외여행이라고는 태국 신혼여행 밖에 안가 본 언니가 슬픔을 가득 안고 이 멀리까지 왔다. 언니가 보냈던 일상과 정반대로 흐르는 이곳에서의 여행은 내가 언니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위로였다.




 우리는 페루의 사막 도시 이카(Ica)로 향했다. 이카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차를 타고 4시간 반 정도 가야 한다. 남아메리카와 북아메리카를 이어주는 판 아메리카나 하이웨이를 타고 달린다. 이 도로를 따라 달리면 오른쪽에는 태평양 바다가 왼쪽에는 끝없는 모래 언덕을 볼 수 있다. 실제로 이 길을 만나면 참으로 척박하고 메마른 느낌이다. 이렇게 넓은 땅에 아무것도 없다. 페루의 버려진 땅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다. 문득 이곳을 개발하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 더 잘 사는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거친 돌산과 끝없이 이어지는 모래 언덕 위로 짓다만 건물 한두 채가 보인다. 저런 곳에 사람은 분명히 살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내 바람에 흩날리는 옷가지가 보인다.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떻게 생계를 유지하는 것일까. 이 길을 지나가며 페루의 안타까운 빈부격차를 다시 한번 마주했다.



사막 위를 달리자, 버기카


 버기카를 타기 위한 장소로 이동을 했다. 사막을 즐기기 위한 관광객들이 적지 않았다.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와 투어에 필요한 물건을 파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사막을 달리기 때문에 선글라스나 고글이 필수였다. 아이들은 선글라스가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아이들용 선글라스를 구입해 씌어줬다. 꼬맹이들도 선글라스를 쓰니 꽤 그럴싸했다. 버기카를 난생처음 봤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그 어떤 차들 중에 가장 거대하고 단단했다. 사막에서 달릴 수 있게 개조해 만든 차량이라고 한다. 아이들은 각기 다른 디자인과 멋을 내는 버기카들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버기카를 골랐다. 우리는 어린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일행과 섞이지 않고 우리들끼리만 이용하기로 했다.  

 

 안전벨트를 매고 달릴 준비가 되자, 버기카는 요란한 굉음을 내며 사막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사방천지 모래 언덕이 펼쳐졌다. 점점 스피드를 내며 질주하기 시작하는데 아이들은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어릴수록 겁이 없다고 아이들은 나보다 무서운 기색이 전혀 없었다. 사막의 모래 언덕을 따라 올랐다가 급하강을 반복하고 무한질주를 한다. 시원하게 모래 바람을 갈랐다. 우리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알 수 없었다. 운전기사가 가는 대로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다.


 '우어~어어~'나는 버기카가 곡예를 부릴수록 심장이 콩알만 해졌다. 아이고 하느님! 우리 엄마 아빠.. 나랑 언니랑 애들 없으면 큰일 나는데... 여기까지 와서 다 죽는 거 아니야? 아찔한 생각을 하지만, 설마 달리다가 엎어지기야 하겠냐며 쿵쾅대는 심장을 부여잡았다. 그 대신 모래 바람을 가르며 눈앞에 펼쳐진 광활한 사막을 온몸으로 느끼려고 했다.  


 얼마만큼 달렸을까. 가장 높은 곳에 멈춰 섰고 운전기사는 잠시 내려 사막과 함께 사진을 찍으라고 했다. 하늘과 맞닿은 이카의 사막. 저 멀리 바다도 보인다. 사막 한가운데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다.



모래 언덕 위에서 샌드보드


 아이를 한 명씩 앞에 태우고 높은 모래 언덕에서 썰매를 타듯 내려가는 것이다.  그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이루 말할 수 없다. 썰매를 타고 내려갈 때 입을 절대 벌리면 안 됐는데, (모래가 입 안으로 다 들어간다) 소리가 저절로 나오니 입을 벌렸다 다물었다 하는 사이에 벌써 아래까지 다 내려왔다. 신발, 옷 구석구석 모래가 가득 들어가서 언니와 나는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반면 아이들은 재미있다고 한 번 더 타자고 애원했다. 맨 아래서 꼭대기까지 올라가는데 '딱 한 번 만이야' 약속하고 샌드보드를 들고 낑낑대며 올라왔다. 샌드보드를 타고 내려가는 재미는 있지만 다시 올라가는 것은 나이가 드니 좀 힘들더라. 젊은 관광객들은 스릴 있고 재미있는 맛에 다양한 포즈를 취해가며 즐기는 모습이었다. 점점 강한 태양이 더 뜨겁게 느껴졌다.  



 와카치나 오아시스

 사막에 오아시스라니. 내 평생 오아시스를 만나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다. 사막 한가운데 떡하니 오아시스가 있었다. 내 상상 속의 오아시스는 사막 한가운데 한줄기 물줄기 같은 것으로 굉장히 작았다. 하지만 와카치나 오아시스는 그보다는 훨씬 컸다. 남편은 와카치나는 '우는 여자'라는 뜻인데 두 가지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며 이야기해 주었다. 하나는 어떤 공주가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 남자가 전쟁에서 죽어서 슬퍼 흘린 눈물이 모였다는 설이다. 또 하나는 어느 여인이 오아시스에서 목욕을 하는데 어떤 남자가 알몸을 훔쳐봐서 수치심에 달아나다 오아시스 인어가 되었다는 설이다. 그 어느 것이든 나에게 사막의 오아시스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신비로웠다.



 오아시스 주변으로 야자나무가 둘러싸고 있었고 수영과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오아시스에서 수영이라니 상상도 못 해봤다. 자연을 있는 그대로 즐기는 페루 사람들은 정말 놀랍다. 아무것도 없을 줄 알았던 그곳에 작은 상점과 레스토랑들이 많았고 우리 집이 맛집이라며 관광객들을 부르기 바빴다. 아기자기하고 소박하지만 살아 숨 쉬는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버기카 투어와 샌드보딩을 마치고 더위를 식히기에 최적의 장소. 와카치나 오아시스에서 시원한 맥주 한 모금 들이키기 위해 가장 맛있어 보이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잠시 휴식을 취했다.


 작은 배를 타고 오아시스를 건너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너무 타고 싶어 해서 작은 배를 탔는데 노 젓는 청년과 함께 노를 저으며 오아시스를 완벽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오아시스에서 수영을 하고 휴식을 즐기는 사람들

 사막과 오아시스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호텔로 돌아갔다. 최고급 호텔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피스코 사워를 한잔 했다. 언니가 페루가 좋다고 한다. 언니가 행복한 것만으로, 그것만으로 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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