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이면 페루에서 아이들이 즐겨 먹었던 치차 아이스크림이 생각난다.
낮시간 집에서 한가로이 빈둥빈둥거리는데 밖에서 나팔소리가 들려온다. 우리나라 두부 장수가 종소리를 울리며 두부를 팔듯, 아이스크림 아저씨가 나팔을 불며 지나가는 소리다. 아이들은 나팔 소리가 들리면 베란다로 달려 나가 유리창에 머리를 대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나팔 소리가 어디서 들려오는지 귀를 쫑긋 세우다. 해님이 그려진 노란 우산 아저씨의 아이스크림을 찾은 아이들은 손을 흔들며 소리친다.
"Señor! aqui! aqui!" (아저씨! 여기요, 여기!)
눈이 마주친 아저씨는 우리 집 앞으로 가겠다는 신호를 보낸다. 서둘러 동전지갑에서 동전을 꺼내어 아이들과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고 기다린다. 빨리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른다. 마트에서 비싸고 맛있는 초코초코한 하겐다즈 아이스크림을 사서 먹기도 하지만, 아이들은 해님이 그려진 노란 우산 아저씨의 막대 아이스크림이 제일 좋단다.
노란 우산에 해님이 그려져 있는 아이스크림 카트는 페루 곳곳에 돌아다닌다. 사람들이 많은 공원, 바닷가, 학교 앞, 마트 앞, 길거리등 어느 곳을 지나든지 볼 수 있다. 100년 넘은 전통 있는 페루의 국민 아이스크림이라고 들었다. 공원에서 두 아이들과 한바탕 신나게 놀고 나면 어느새 우리에게 가까이 와 있는 노란색 우산 아이스크림 카트를 발견한다. 아이스크림 회사의 슬로건처럼 말이다. (Cerca de ti : 당신 곁에) 어김없이 아이들은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조른다. 아저씨는(어느 날은 총각, 어느 날은 아주머니)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 메뉴판을 보여주며 물어본다.
"무슨 맛 줄까?"
"치차 주세요!"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맛은 보라색 치차맛 아이스크림이다. 치차 맛은 꼬마들에게 인기가 가장 좋다. 간혹 다 팔려 없을 때도 있다. 아이들은 보라색 맛 치차 아이스크림, 나는 노란색 맛 마라꾸야(maracuya) 아이스크림을 한 입 문다.
아이들과 나는 레스토랑에 가면 물 대신 꼭 시키는 음료가 있다. 바로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음료)'와 후고 데 마라꾸야 (Jugo de maraguya :마라꾸야 주스)다. 치차 모라다는 보라색 옥수수로 만든 음료인데 계피향과 달달한 맛이 나는 새콤달콤한 한 맛이다. 아이들의 치차 사랑은 페루아노 저리 가라 할 정도다. 시원하게 슬러쉬처럼 얼음을 갈아 넣어 주는 곳도 많아서 아이스크림 먹듯 즐겨 먹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식혜와 수정과, 미룻가루가 있는 것처럼 페루에도 국민음료, 전통음료가 있다면 '치차 모라다'일 것이다.
치차 모라다(Chicha morada)
페루 자주색 옥수수와 파인애플, 계피, 레몬, 향신료를 넣고 약하게 끓여 만든 청량음료다. 안데스 산맥에서 기원한 이 음료는 슈퍼푸드 리스트에 올라와 있을 정도이다. 건강에 좋고 면역력 강화, 염증을 감소시키는 치차 모라다는 남녀노소 모두가 좋아한다. 아이 반 행사 날에 필요한 음식이나 재료를 하나씩 맡아서 준비해 온다. 현지 엄마들은 집에서 핸드메이드로 만들어 오지만 외국인 엄마인 나는 마트에 가서 오가닉 치차 모라다를 사갔다. 마트에서 파는 치차도 아주 맛이 좋다. 만드는 것이 어렵지 않다며 레시피를 열심히 설명을 해 주던 페루 엄마의 얼굴이 떠오른다.
후고 데 마라꾸야(Jugo de maracuya)
페루는 한국에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과일들이 많다. 마라꾸야 주스는 식당 종업원에게 추천받아 맛을 보았다. 처음 맛을 본 순간 나의 최애 페루 과일 주스가 되었다. 신맛과 단맛이 입안을 상큼하게 감싼다. 뜨겁고 더운 남미에서 마라꾸야 주스는 그 시원함에 더위를 날려 보내 준다. 페루에 처음 온 사람들에게 나는 꼭 이 마라꾸야 주스를 맛보라고 한다.
후고 데 그라나디야 (Jugo de Granadilla)
그라나디야는 겉은 단단하지만 손으로 윗부분을 까서 숟가락으로 그 안의 개구리 알 같은 씨앗을 퍼 먹는다. 말캉말캉하고 끈덕진 모양과 촉감이지만 그 맛은 정말 달달하다. 씨앗을 오독오독 씹는 맛도 제법 재미있다. 이 과일을 갈아서 만든 그라나디야 주스도 이색적이다.
잉카 콜라 (Inca Kola)
페루사람들은 잉카콜라를 마신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코카콜라를 제친 것이 잉카콜라라고 한다. 노란색 콜라인데 우리나라 파인애플과 박카스를 섞은 듯은 맛이다. 페루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잉카콜라를 주문하면 그들의 눈빛에서 무언가 뿌듯한 자부심 같은 것이 느껴지곤 했다. 페루인들은 잉카문명의 자부심을 노란색 잉카콜라에서도 느끼는 것이 아닐까?
잉카콜라와 왕만 한 튀긴 옥수수알
아이들이 사랑한 보라색 치차 모라다와 내가 사랑한 후고 데 마라꾸야. 알록달록한 페루의 맛이 그리운 날인다.
사진 출처: trillist/ comidas peruanas